[장서 산책] 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
[장서 산책] 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04.10 16:5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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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낯선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다룬 자기계발서이다. 지은이 말콤 글래드웰은 토론토대학교와 트리니티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현재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이다. 감수자인 김경일은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옮긴이 유강은은 전문번역가이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파악하는데 사용하는 첫번째 도구는 '진실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이다. 진실기본값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이 정직하다고 믿는 경향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진실기본값 모드에서 벗어나려면 '계기(trigger)'가 필요하다. 약간 미심쩍은 정도나 의혹은 계기가 될 수 없다. 처음 품은 가정에 어긋나는 증거가 결정적인 것으로 밝혀질 때만 비로소 진실기본값 모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침착한 과학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천천히 증거를 모은 뒤에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우리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일단 믿고 본다. 그리고 의심과 걱정이 점점 커져서 해명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믿는 것을 멈춘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파악하는데 사용하는 두번째 도구는 '투명성(Transparency) 관념'이다. 투명성은 행동과 태도, 즉 사람들이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방식에 대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창을 제공한다는 관념이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거나 그와 소통하지 못하거나 그를 제대로 이해할 만한 시간이 없을 때, 우리는 행동과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만난 낯선 사람의 내면과 태도가 불일치할 때는 투명성 관념을 적용할 수 없다. 히틀러는 내면과 태도가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1938년 9월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독일로 가서 히틀러를 만났다. 히틀러는 양손으로 악수를 건네며 체임벌린을 환영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대접을 한다고 믿었다. 세 번의 회담 결과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대부분 따뜻하고 열정적인 악수를 하는 경우에 실제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함과 열정을 느낀다. 하지만 히틀러는 다르다. 그는 정직하게 행동하는 부정직한 사람이다.  

내면과 태도가 불일치하는 예로서 블랙아웃 상태에서의 행동을 들 수 있다. 술을 마신 사람의 혈중 알코올 농도 0.15정도의 수치에서는 해마가 기능을 멈추고 기억형성이 중단된다. 그러나 이 사람의 전두엽과 소뇌, 편도체는 정상적으로 기능을 지속할 수 있다. 술이 취했을 때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블랙 아웃 상태에서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어떤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블랙아웃에 빠졌는지를 분간하기란 정말 어렵다.

타인을 존중하려면 한쪽 당사자가 자신의 욕망을 누그러뜨리고, 자기 행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검토하며,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 말고 다른 일에 관해 생각하면서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이런 계산을 하기가 너무도 어려워진다. 우리가 낯선 사람과의 조우에서 자기 자신이 되기(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고 분명하게 나타내기)를 바란다면, 인사불성으로 취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파악하는데 사용하는 세번째 도구는 '결합'이다. 결합이란 어떤 행동이 아주 특정한 상황 및 조건과 연결된다는 사고이다. 우리는 '특정 방법과 연결되는 행동'을 하고 '특정 장소와 연결되는 행동'을 한다.  특정 방법, 특정 장소와 연결되는 행동의 극단적인 예로 자살을 들 수 있다. 

1962년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영국 시골의 작은 집에서 런던으로 이사했다. 실비아는 평소에 자살에 집착했다. 자살에 관해 글을 쓰고, 자살에 관해 생각했다. 다른 어떤 위험하고 힘겨운 활동에 관해 말하는 것과 똑같은 어조로 자살에 관해 이야기했다.  

실비아는 자살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아무 방법으로나 자살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결합의 요지다. 그는 딱 맞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추운 2월의 밤에 실비아에게 딱 맞는 방법이 부엌에 있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일산화탄소가 나오는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날 밤 실비아는 수건과 행주, 테이프를 꺼내서 부엌문 틈새를 막았다. 가스오븐을 틀고 머리를 오븐 안에 넣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비아 플라스가 30살에 목숨을 끊은 1962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5,588명이 자살했다. 그 중에서 2,469명(44.2퍼센트)이 실비아 플라스와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그때까지 일산화탄소 중독은 영국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주요한 방법이었다. 다른 어떤 것(약물 과다복용이나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등)도 비슷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다.

특정 장소와 연결되는 자살과 관련해서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의 불가해한 전설이 있다. 1937년에 개통한 뒤 이 다리는 1,500명이 넘는 사람이 자살한 현장이었다. 세계 어느 장소도 그 정도 기간에 그토록 많은 자살을 목격하지 못했다.

결합 이론은 금문교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나? 만약 자살 방지 구조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막는다면, 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떨어지기 전에 걸린다면 큰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다리에서 자살하는 것이 가로막힌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뛰어내리러 이동하지 않는다. 자살하려는 결심은 그 특정한 다리와 결합된다.

심리학자 리처드 사이던은 1937년에서 1978년 사이에 금문교에서 뛰어내리려고 시도한 515명을 추적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 515명 중 불과 25명만이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자살 시도를 계속한 것이다. 어떤 순간에 금문교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바로 그 순간에 그 다리에서만 뛰어내리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금문교를 관리하는 지자체 당국은 결국 언제 자살 방지 구조물을 설치하기로 결정했을까? 다리가 개통되고 80년도 더 지난 2018년이다.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 다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비정하고 냉혹하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이 어떤 장소와 그렇게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해에 걸쳐 교량 관리 당국은 자살 방지 구조물 설치를 지지하는지 정기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물었다. 답변지는 대체로 두 범주로 나뉘었다. 찬성하는 쪽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 경험이 있어서 자살의 심리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들이었다. 나머지(사실상 다수)는 결합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실시한 전국 단위의 어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3이 금문교에 자살 방지 구조물을 설치하면 다리에서 죽으려고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식으로 자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혀 잘못된 생각이다. 자살은 결합된다.  

우리가 낯선 사람과 조우할 때 저지르는 오류, 즉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오류와 투명성의 환상은 낯선 사람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오류들에 또 다른 오류를 덧붙이는데, 이 때문에 낯선 사람과 겪는 문제가 위기로 확대된다. 우리는 그 낯선 사람이 움직이는 배경이 되는 맥락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의 원제는 Talking To Strangers(낯선 사람에게 말걸기)이다. 감수자인 김경일 교수는 우리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취해야 할 자세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우리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점을 인정하자. 서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인공지능보다 못한 판결을 내리는 수많은 판사들 중 하나가 되고 만다. 이는 현대 심리학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와도 맥을 같이 한다.

"가장 쉽게 속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모르면서 안다고 거짓말하는 사람, 즉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기억은 의도와 소망에 부합되게 각색되며 그 결과 무수히 많은 것들을 놓치기 때문이다." 판단과 의사결정에서의 사후확증편향 연구로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오른 바루크 피쇼프의 말이다.

둘째,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사람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고 어떤 세상으로 가려 하는가도 봐야 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은 내가 가정하고 있거나 추론해낸 그 사람의 품성이나 가치에 기반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내 앞에 왔느냐와 나를 떠나 어디로 가느냐가 더 결정적이다.

심리학이 200년 가까이 인간을 연구한 결과의 흐름 하나를 말콤 글래드웰은 한 문장으로 절묘하게 묶어낸다. "인간은 현재의 느낌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그토록 긴 과거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끝내려 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이다.

셋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낯선 이와의 대화를 잘못 해석해서 곤경에 처하고, 바로 그 때문에 그 대화를 했을 때 자신이 적절하게 대응했는가에만 관심을 가졌다. 자신과 상대방이 그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한 상황에 있었던가를 고려한 경우는 없었다.

여기서도 현대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전제 하나를 되새겨볼 수 있다. "타고난 기질, 능력, 성품 그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황이다." 인지심리학자 아트 마크먼의 말이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낯선 이를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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