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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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환수
  • 승인 2019.02.09 0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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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에 관한 일기예보가 일상화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 뿐만 아니라 이웃한 경계국가들의 미세먼지 정도를 가늠하는 수치까지 제시하며 경고성 협박을 수시로 일삼고 있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아예 집에서 나다니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 일쑤다.

  공기층의 오염정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얼마간 기간이 경과하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조차 없는 막연한 협박과 엄포는 공포심과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하다.지구의 기후변화로 이해해야 하나 아님,지구의 생태오염으로 여겨야 하나 헷갈리지만 누구하나 이에 대한 거시적 분석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주류 언론들은 자국의 미세먼지 발생에 대한 오염원의 원인을 매우 단순화해서 발표하기 일쑤다. 기껏해야 열병합 발전소나 이웃한 국가들의 공기층이 오염된 탓이라고 떠넘기기 급급한 분석안만 제시한다. 과연 그럴까. 그 것이 정답일까 의문스럽게 고민된다.

  우리는 산업혁명이후 기술(과학)적 세계관이 중심이 된 사회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기술적 세계관이란 근대 모너니티의 사조를 탄생시킨 주요한 철학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 사조의 특성은 지구 자연을 인간중심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발판으로 여겼으며 이에 반하는 것은 비인간적 것으로 평가해 무용한 가치로 간주했다.

  그리고 지구 품속의 화석연료를 활용한 움직임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이를 통한 기술적 발전을 진보이거나 문명적 혜택이라고 명명했다.

  수억 년부터 최근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까지 지구의 생태학적 유지 보존은 그닥 문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세 인간들에게 온존한 형태로 대물림 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산업혁명의 기술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근세인류는 과학적 탐구와 연구라는 핑계를 앞세워 지구 생태계를 끝없이 괴롭히고 짓이겨 지구적 유산을 피폐하게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륙적으로 학살하는 짓을 서슴없이 감행했다.

  땅은 석유자원을 퍼낸다는 구실로 곳곳을 뚫어 아물지 못하는 상처의 흔적을 만들었고 바다에는 온갖 쓰레기와 원전의 방사능 세척 수질을 쏟아 부어 수산생물의 터전을 위협했다. 그리고 맑은 하늘은 오존층의 파괴가 목전에 임박했고 그 경고의 메시지는 인간에게 먼저 미세 먼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위험천만한 환경요인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극단의 자연적 경고를 애써 외면하고 기상 캐스터의 메시지에 매달려 공기청정기와 외출을 자제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안위만 보살피려 하는 소극적 대응에 골몰하고 있다.

  자동차로 특징지어진 현대 문명의 이기는 안락함을 선사하는 대신 돌이 킬 수 없는 기후적 재앙을 예고 하고 있다는 상상에 미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은 비단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이에 덧붙여 유엔이 발표한 지구 온난화의 상승온도가 이미 2도에서 4도로 수정 발표한지 오래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쉽게 입에 담으려 하질 않는다. 살면서 죽음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심리와 다름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불어 닥칠 자연적 재앙은 천재가 아니라 지구에 살며 문명의 혜택만을 쫓는 인간들이 저지른 인재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