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스펜서
[영화 이야기] 스펜서
  • 김동남 기자
  • 승인 2022.04.0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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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영화

「다이애나 비」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꼭 한 가지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배우가 그녀의 역할로 캐스팅 될 것인가? 왜냐하면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화제작자들도 누구를 주연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엄청난 고민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드디어 「다이애나 비」를 맡을 배우가 결정되었다. 「크리스틴 슈트어트」라고 미디어에 떴을 때 누구는 의외였다고 하고 누구는 괜찮을까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놓았지만, 예상외였다. 다이애나가 빙의한 것처럼 신들린 그녀의 연기에 칭찬 일색으로 도배된 기사들을 보고 나도 맘 편하게 극장으로 달려갔다.

「다이애나 비」그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것은 관심과 사랑의 발현이지 질투의 감정이 아니었다. 품격과 아름다움과 지성까지 갖춘 그녀가 받아 마땅한 대접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녀에게 닥친 왕실로부터의 무관심과 지나친 간섭, 찰스의 외도로 이어진 불행한 결혼 생활과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사흘 동안의 이야기이다.

가장 행복해 보이는 여성의 가장 불행한 시간을 그린 「스펜서」. 그녀가 떠난 지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별처럼 반짝이다가 유성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존재이며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녀의 본명은 「다이애나 스펜서」. 영화의 제목이 다이애나 비가 아니라 스펜서인 것을 보면 평범한 인간 다이애나 스펜서에 초점을 맞춘 것이란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 디테일한 묘사와 재미를 더하기 위해 허구의 인물도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의 오프닝에는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자막이 뜬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이애나가 다시 살아온 듯 탁월한 해석과 연기로 열연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화보 같은 영화의 장면들로 인해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 영화를 위해 주연배우는 다이애나의 습관과 말과 내밀한 행동 등에 대해서 엄청난 자료를 모으고 연구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니, 다이애나가 빙의했다는 표현은 과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홀로 차를 몰고 약속된 장소로 향하는 다이애나가 길을 잃어 버리자, 길가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나 어디에 있는 거죠?’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은 한 여자의 혼란스럽고 고독함이 묻어나는 장면만으로도 비극이 예상된다. 미래는 없고 과거와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다이애나의 대사처럼 한 개인의 자유를 사유하고 운용하기에 왕실의 삶은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왕실 저택의 집사인 그레고리 소령은 지속적으로 시계를 보면서 분 단위로 다이애나의 일정을 관리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을 뿐더러 집사는 수시로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며 디저트시간, 식사시간을 체크한다.

자유분방하게 자란 스펜서에게는 왕실의 삶은 화련한 감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파파라치를 피해 옷을 갈아 입을 때마다 커튼을 쳐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 그녀는 절단기로 커튼을 잘라버리고 왕실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몸무게를 재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 화장실에서 구토까지 일으킨다.

마침내 그녀는 일탈을 결심한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다이애나 비가 아닌 스펜서로 살고 싶었던 그녀.

두 아들을 데리고 왕실을 떠나 드라이브를 하며 평소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햄버거와 치킨을 주문하고 템즈강에서 아이들과 맘껏 자유를 누리지만, 장차 다가올 큰 불행을 예고하는 것 마냥 처연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누구나 알고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우리가 몰랐던 다이애나의 고통스러운 감정과 안타까운 시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우리는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고 유대감을 느끼며 따라만 가면 되는 영화였다. 굳이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1도 필요없는영화라고 하면 더 적합한 표현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만약에 그녀가 찰스와 결혼하지 않고 유치원교사로 살다가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그녀는 훨씬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지 않았을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정답을 찾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