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의 발자취를 찾아서(상)
사명대사의 발자취를 찾아서(상)
  • 김정호 기자
  • 승인 2022.03.0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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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
표충각내 사명대사 존영. 김정호 기자
사명대사 존영(표충각). 김정호 기자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시 승병(僧兵)을 일으켜 일본군에 항전했던 승병장(僧兵將)이다. 사명대사를 찾는 발길은 제일 먼저 표충비각을 찾았다. 표충비각은 경남 밀양시 무안면에 있으며 경남 유형문화재 15호이다.

표충비각. 김정호 기자
표충비각. 김정호 기자

표충비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조직하여 왜군을 무찌르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왜군에게 끌려간 3천 명의 조선 포로를 귀환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 1544~161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2년 남붕선사(南鵬禪師)에 의해 건립되었다.

높이 4m, 너비 1m, 두께 54.5cm인 이 비석은 일반 비석과 달리 비석의 몸체를 검은색 대리석으로, 받침돌과 머릿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석의 옆면과 뒷면에는 표충사(表忠祠)의 내력과 함께 사명당을 비롯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1520-1604)과 기허대사(騎虛大師) 영규(靈圭, ?~1592)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표충비는 표충비각 안에 안치되어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표충비각은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비신에서 땀을 흘린다고(汗出) 한다. 비각 옆 안내판에 의하면 1894년 11월 19일 동학농민운동 7일 전 3말 1되를 한출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11월 18일까지 30여 회의 한출을 기록하고 있다.

홍제사. 김정호 기자
홍제사. 김정호 기자

표충비를 관리하고 예불하는 사찰은 비석 좌측에 있는 홍제사(弘濟寺)다.

또한 표충각 안에는 중앙에 사명대사. 우측에 서산대사, 좌측에 기허대사 존영을 모시고 있다.

홍제사 3층 석탑. 김정호 기자
홍제사 3층 석탑. 김정호 기자

홍제사 앞마당에는 최근에 조성한 듯한 3층 석탑이 있으며, 표충비각 앞 마당에는 잘 손질된 향나무가 한그루 있다. 이 향나무는 무안리 향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19호)로서 사명대사의 큰 공을 기리기 위하여 표충비와 함께 심은 나무이다. 이 향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퍼지도록 원줄기를 자르고 곁가지를 다듬어 마치 녹색 양산을 펼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높이 1.5m, 가슴 높이 들레 1.1m이다.

무안리 향나무. 김정호 기자
무안리 향나무. 김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