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2)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2.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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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계란노른자 같은 분임에는 틀림이 없을 거구먼요!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뿌듯하게 행복했다
수나라의 군대를 일거에 수장시켜 물리친 살수대첩의 보 같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구절양장 같은 인생의 고갯길 중 또 한 고비를 무난히 넘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돌팔이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의술에 신이 도왔다 여겼다. 손가락 끝에 찍힌 간장물 지식에 관세음보살님이 무한한 자비를 내렸다 싶어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죽어가던 아이가 되살아난 것은 할머니 자신이 지닌 재주보다 아기가 지닌 복이라 여기고 있었다. 감골댁의 성화에 화가 복으로 변함에 감사하는 할머니와는 달리 감골댁은 여전히

“대단해요! 성~ 님! 그 급박한 중에 언제 그런 것까지 알뜰살뜰 살펴보고요! 그건 형님이 전문가라 그런 거구요! 그러고 보면 나도 영천댁 얼라 살리는데 한 몫 한건 틀림없지요? 호호호!”하고 웃더니

“근데 성님은 참말 말을 쉽게 하는 것 같네요! 말이라서 그런가요? 그걸 단박에 알아내는 것도 그렇고, 치료를 끝내는 것도 그렇고, 아무튼 우리 성~님은 참말 용해요! 우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계란노른자 같은 분임에는 틀림이 없을 거구먼요!”

“맞아 감골댁 자네가 살린 거나 진배없지! 자네가 호들갑으로 서두르는 통에 골든타임에 맞게 도착했으니까 말이야! 근데 나가 없으면 안 된다고? 언제는 인간이 악마의 탈을 뒤집어 쓴 괴물이라며! 까딱 일이 잘못 되었으면 마녀로 몰려 돌에 맞아 죽던지, 불에 타 죽어야할 귀물(鬼物)이라며!”하며 할머니가 감골댁을 향해 눈을 치켜뜨자 늦가을 들판으로 무서리가 내린 듯 가슴이 서늘해진 감골댁이

“아따 성~님은! 인제 그만 하이소! 그 세월에 이자 뿌지도 않았습니까? 성~님이! 무슨 마녀에 돌에 맞고 죽고, 불에 타 죽기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끔찍스럽소! 그리고 개과천선까지는 몰라도...! 하여간 주책없고 방정맞은 요~런 요 싸가지 없는 주둥아릴랑은 아예 쳐 닫고 살 잖수”하더니 느닷없이 오른손을 들어 입을 때리는데 “찰싹”하고 이는 소리가 여간 찰지지 않다. 깜짝 놀란 할머니가

“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내가 뭐랬다고 이러나! 내가 말을 잘못 했나 보네! 늙으면 주책이라고 다 내 잘못이네!”하며 급히 손목을 잡아 저지하자

“성님이 잘못하기는 무슨 잘못을! 하여간 내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크게 보인다고 없는 허물을 일삼아 긁어 담는 요런 요~ 싹퉁-바가지 같은 주둥아릴랑은 작살나게 맞아도 싸요”하며 재차 손이 움찔하는데 기겁을 한 할머니가 부리나케 감골댁의 손목을 잡아 저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즈음 감골댁은 입에서 말이 근질근질할 때면 물그릇부터 찾았다. 물그릇에서 물을 한 모금 물고는 우물우물 생각에 잠긴 다음 꼭 할 말만 몇 마디 어렵게 입을 연다.

할머니의 당부대로 영천댁은 늦은 저녁에 들려 약을 받아갔고 다음날 조반이 끝나기가 무섭게 삽짝을 들어서고 있었다. 먼저 알아본 누렁이가 호들갑으로 오두방정을 떠는 통에 온 동네 사람들 전부가 알아볼 지경이었다. 전날 같았으면 몸을 낮추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몸을 사렸을 영천댁이다. 한데 오늘은 보무도 당당하게 마당 가장자리를 에둘러 한하게 웃으며 들어서더니

“형~님! 집에 계셨네요!”하는데 영천댁의 오른손에는 계란꾸러미가 들여 있었다. 싯누런 짚으로 꼬아 만든 계란꾸러미에는 방금 낳은 것으로 보이는 계란들이 고만고만하게 자리 잡고 앉았다. 계란 중에는 칠칠맞지 못한 암탉이 낳았는지 군데군데가 거뭇거뭇한 것이 닭똥이 묻었던 자국도 더러더러 보인다. 평소 닭을 키워 봤으면 하던 할머니는 보는 것만으로도 참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개 중 서너 개를 약간의 물과 함께 사발에 풀고는 실파를 송송 썰어 얹어 밥이 뜸이 들 즈음에 밥솥에 넣어 계란찜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모처럼 만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간하게 간을 한 계란찜이란 생각에 가장 먼저 아버지와 고모가 생각났다. 두레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뿌듯하게 행복했다. 가물거리는 호롱불도 축복하여 너울너울 춤을 추리라 여겼다. 밥알 세는 고모도 맛있게 먹으리라 여겼다. 숟가락으로 야들야들하고 보드라운 속살을 판다면 입안서 살살 녹을 지경이라 능히 먹을 수 있다 생각했다. 계란의 빈껍데기로는 쌀밥을 짓고 싶었다. 하얀 쌀을 뽀얗게 씻어 소금 간을 살짝 곁들여 계란껍데기의 우듬지의 조금 아래까지, 즉 2/3을 살짝 넘겨 채워 장작불이 사그라지는 위에 얹으면 절로 익어 밥이 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 노릇하게 익으면 껍질을 살살 벗겨 먹으면 별미처럼 기가 막혔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우울했다. 계란찜을 모르겠거니와 계란밥은 현재 고모의 건강 상태로 보아 무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값비싼 계란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란 생각만으로도 입 안 가득 침이 감돈다. 태연한 척 애써 군침을 감춰 일별하고는

“나가 있게 나 없게 나! 이렇게 대 놓고 나다니면 어쩌누! 내사 마 인자 두려울 게 없다 만서도 이렇게 대책 없이 나돌아 다니다가 동네 사람들 눈 밖에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간도 크게!”하는 할머니의 얼굴 위로는 영천댁을 염려하는 근심걱정이 뚝뚝 떨어진다. 평소에도 조신하지 못하고 털파리(곤충류 털파릿과에 속한 곤충을 이르는 말)모양 대책 없이 덜렁거리는 영천댁이다 보니 할머니의 염려는 오히려 당연했다. 할머니는 그런 영천댁이 할머니가 걸어온 전적을 밟지나 않을까 싶어 두려운 것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처럼, 내 남 일을 가리지 않고 이웃사촌으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소 외 당하는 비애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참담한 심정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차라리 할머니 당신이 당하는 것이 속 편하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세상을 향해서 화가 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야기꽃을 피워 웃던 이웃들이 어느 날부터 인가 하나같이 등을 돌려버린 것에 대한 반항 같은 것이었다. 상어를 만난 듯, 돌고래를 만난 정어리 떼처럼 한통속으로 어울려 밀어내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바늘 끝조차 들어갈 틈을 주지 않은 것에 분기탱천했다. 눈앞이 캄캄한 만큼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사람답게 태어나지 못한 고모에게 있음을 알고는 절망에 빠졌다. 강보에 쌓인 병든 자식을 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고모를 버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반항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심한 우울증이 찾아 들었다. 실어증에 걸린 듯 말조차 살갑게 입에 붙지가 않았다. 문 밖 출입 없이 방구석에 둥지를 튼 겪이 되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핑계로 할머니를 버렸다지만 고모를 위해서는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을 버린 꼴이 되었다. 스스로 위리안치의 죄인을 자처한 것이다. 그렇게 집안에만 쳐 박혔던 할머니는 이내 다른 삶을 택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것은 동네를 벗어나는 삶이었다. 무의미한 삶보다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의미를 두는 삶이고 싶었다. 그 물꼬를 트는 것으로 무당과 의원을 만나 고모를 치료하데 미력한 보탬이라도 되고자 의술을 배우는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글로써 쓰라면 소설 몇 권은 어림없다며 농담처럼 말하는 할머니는 남몰래 어지간히 눈물을 흘렸다.

한데 아직은 한창으로 젊은 새댁인 영천댁이 멋모르고 그 길로 접어드려 하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하고 간장이 녹아 내릴 지경이다. 그런 까닭에 대신할 수만 있다면 대신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가 곱다시 당하는 것이 수월하다 여겼다. 젊은 영천댁이 감당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냉혹하다 걱정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껏 바람 잔 호수면 같이 잠잠한 감골댁의 형상이 물을 가득 가둔 보(洑)같은 상태라 여긴 때문이다. 을지문덕장군이 수나라의 군대를 일거에 수장시켜 물리친 살수대첩의 보 같은 상태라 여긴 것이다. 보가 터지는 순간 감골댁은 쥐를 잡은 고양이가 앞발로 굴려가며 희롱하듯이 영천댁을 갖고 놀 것이라 여겼다. 지금껏 죽은 듯 지내오던 못된 성질머리가 이내 본성을 들어내리라 여겼다. 그 토네이도 같은 태풍의 바람머리 앞에 풍전등화처럼 영천댁이 서 있는 형국이란 생각이 들자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섬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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