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7)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1.1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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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할 때 비로소 사람답다 생각이 들었다
감골댁의 눈치를 보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모든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 하는 자초지종을 알던가 해야 가든 말든 하지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끝순아~ 너 못 본 그새 많이 컸네! 네 어머니를 닮아 본바탕이 있으니께 얼굴로 뽀얗게 살만 붙으면 이쁘겠다. 얘~”하고는 머뭇머뭇 생각에 잠겼다가

“끝순아 꿈을 꾸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잖아! 하나님도 이제 네 소원을 이루어 줄 거야! 이~ 아지매도 밤낮으로 기원해 줄께!”하며 입 부조나마 열심이다. 그런 말들이 흰소리처럼 입에 발린 소리인지, 진실을 담아 가슴을 울림통으로 마음을 축축이 적시는 소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그런 가운데 고모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발랄한 생기를 온몸으로 전해 받는다. 고모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기가 도는 것이다. 많이 웃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새로운 말을 접하는 것은 물론, 동네 소식을 포함하여 세상사 이야기를 덤으로 전해 듣는다. 비로써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서서히 녹아드는 기회를 갖는다.

늘 고독을 친구하여 산 탓인지 고모도 동네 아낙네들의 수다 속으로 빠져 드는 시간이 좋았다. 그 때 만큼은 별 세상을 맞는 기분이었다. 귀는 쫑긋 세우고 눈은 동그랗게 떠서 시간을 죽이는 것에 신이 났다. 길고 길었던 시간들이 종이 딱지를 접듯 차곡차곡 접혀져 깡총해진 기분이다. 썰렁한 빈 방, 길 잃은 파리 한 마리가 머리맡에 앉았다 날 때는 은연중 동무를 해 준다 싶어서 좋았다. 누구는 성가신 존재라고, 해로운 곤충이라고 손부채로 쫓아 버리거나 아예 죽여 버린다지만 고모에게는 그 조차 다정스런 친구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지독히도 고독한 시간이 아침 이슬처럼 사위고 어느 날부터 인가 사람들의 온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방안이 비좁도록 넘친다. 사람은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할 때 비로소 사람답다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를 고모가 함께 하고 있다. 왠지 모를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제야 이런 귀중한 시간이 왔나 싶다. 뒤늦게 굴러온 복처럼 찾아 든 시간이 고모에게는 마냥 소중했다. ‘후~’하고 불면 흔적 없이 날아가 일장춘몽으로 지워질까 두려웠다. 그런 까닭에 지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심취하여 열중이다. 은행에 다 달이 부은 정기적금을 이자를 더해 타는 기분으로 황홀한 기분에 빠진다.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해 미래를 꼽는 고모에게는 희망에 부푸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바람처럼 ‘휙휙’지나가는 시간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

“엄마 나는 머리가 나쁜 가봐! 돌대가리인 가봐! 하룻밤만 자면 다 잊어버려! 어제 성주댁 아줌마가 재미나게 뭐에 뭐라고 하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가 하~예! 잠이 원망스러워!”할 때면 할머니는 안쓰럽다는 듯

“이것~아! 이 어미는 돌아 앉으면 다 잊어버린다. 너는 그래도 머리가 좋은 편이야!”하고 다독여 올 때 고모는

“엄마! 진짜지? 나는 기억하고 싶은데 그게 그렀네!”하며 이불 밑으로 머리를 묻어간다.

할머니도 덩달아 좋았다. 그런 만큼 짧은 낮이 원망스러운 할머니다. 몇 번 돌아앉았다 싶으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밤이 찾아 든다. 먹물을 뿌린 듯 까만 하늘로 서러운 달이 뜨고 길을 알리는 등대처럼 별이 반짝인다. 그 희미한 빛을 기다렸다는 듯 동네 사람들은 미련 없이 돌아가 버린다. 더 있었으면 싶은데 돌아가 버린다. 그렇게 야속하고 조용한 밤을 맞으면 고모는 이불 밑에서 새로 접한 단어를 조용히 읊조린다. 그런 고모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는 고모가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비록 오밤중이지만 죄다 붙잡아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었다.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감골댁이 옆에 있다 보니 미련 없이 돌아가 버린다. 생각할수록 감골댁이 야속하다 싶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은 할머니다. 감골댁의 눈치를 보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모든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고모에게 말을 붙여주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한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혹여 몸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갖가지 약재가 집 안밖에 널렸다고 덧붙인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의 늦은 오후 나절 날이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을 둘러보는데 문득 감골댁이 그립다. 그즈음 감골댁은 할머니에게 있어서 악어와 악어새처럼 밉고도 고운 사람이었다. 곁에 없다 싶으면 조용조용 발걸음을 놀려 삽짝을 들어오는 갑골댁의 발걸음이 눈에 삼삼하여 그리운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삐죽삐죽, 들쑥날쑥한 싸리바자 위로 감골댁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친다. 굵은 상투 끝 같은 검은머리가 달랑달랑 고샅을 접어 온다. 오뉴월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세상 편하게 드러누웠던 누렁이가 벌떡 일어나 할머니를 대신하여 반갑다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때에 맞추어

“동~상 어서 오게!”하고 반가워하는 할머니와는 달리 감골댁의 모습이 전날답지 않게 한껏 상기된 표정이다. 황망지경으로 놀란 모습에 감골댁이다. 무언가에 심하게 좇기는 표정으로 헐레벌떡 삽짝을 들어서는 감골댁이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누렁이는 몇 번 ‘왈왈’거리는가 싶더니 선 자리에서 나와는 무관하지요? 어느새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눈은 끔벅끔벅. 코는 땅바닥에다 처박아 딴전이다. 그런 누렁이를 습관처럼 “저~리”하고 발길질을 내지른 감골댁이 약초를 매만지는 할머니 앞에 오기가 무섭게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성님~ 성~님! 퍼뜩 갑시다. 영천댁에 지금...! 지금 영천댁 얼라(어린아이의 방언)가 다 죽어 가니더! 예서 이럴 시간이 없니더! 일각이 촌각이고, 촌각이 일각이라 퍼뜩 가입시더!”하며 막무가내 손을 잡아끈다. 감골댁이 때 아니게 서두르는 행동에 뜨악한 표정의 할머니가

“아~ 이 사람아! 내가 의원도 무당도 아닐 진데...! 이 늙어빠진 할망탱구가 간들 뭘 어쩌겠나! 그러다가 또 일이 잘못되어 멀쩡한 생목숨이라도 끊어지면 뒷감당은 어찌하라고, 그 죄는 또 어찌 감당하라꼬! 그리고 보채기는 또 왜 이리도 보채 샀노! 좌우간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 하는 자초지종을 알던가 해야 가든 말든 하지, 또 필요하다면 이런저런 약재도 대충 챙기고...!”하며 치료란 말에 할머니는 마음에 썩 내키지가 않은 듯 딴전이다. 세월없이 뭉그적거린다.

이는 그간 할머니가 무당과 의원으로부터 어쭙잖게 어깨 너머로 배운 의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감골댁 가족의 횟배앓이 치료를 두고 동네 아낙네들이 심하게 치켜세우는 것에 늘 심적 부담으로 여겨 오던 터였다. 따라서 할머니는 한층 몸을 낮추어 움츠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영천댁 아이가 아프다며 불문곡직 가자고 한다. 선뜻 따라 나서기에는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고 종잇장처럼 얄팍한 지식이 곧장 들통이 날거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지난번 감골댁의 경우 소 발에 쥐를 잡는다는 속담처럼 천만다행으로 병명을 알아내서 치료를 했다지만 매번 그런 행운이 없다는 것이었다. 감골댁의 아이조차 감골댁이 죽을 상을 짓는 등 엄살에 휩쓸려 엉겁결에 따라 나섰던 것에 행운이 깃들었을 뿐이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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