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3.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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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바늘에 대물이 걸린 것 같아 손목은 묵직했고 찌르르하게 팔이 저렸다
눈초리가 왠지 섬뜩하여 가슴이 서늘한데 하늘로부터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도 산 것 같잖고, 먹어도 먹은 것 같잖은 불지옥 같은 생만 남았구나!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까마귀의 뜻밖의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할머니는

“그래 이놈아 미물인 주제에 어딜 감히 내 자식을 넘봐! 넘볼 걸 넘봐야지? 그간 넷이야 넷! 나도 이제 남은 것이라곤 악 밖에 없다. 그간 내가 무지해서 넷은 꼼짝없이 당했다지만 다섯까지는 어림없다. 오늘은 아예 네 놈이 죽던지 아니면 내가 죽던지 좌우당간 결판을 내보자! 나도 이제 살만큼 살아온 몸이다. 이 목숨이 지금 죽어진들 뭐에 아까울까? 하지만 우리 끝순이 만큼은 죽기로 어림없다”하고 일갈을 내지른 뒤 집어 든 지게작대기로는 하늘에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나머지 한 팔을 가제트의 팔처럼 길게 늘여 불식간 바지랑대를 움켜잡는다. 순간 빨랫줄 위에 널렸던 오방색의 빨래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때를 같이하여 까마귀도 이대로 마냥 당하고 있을 수만 없다고 여겼는지 대추나무의 우듬지를 박차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굼벵이를 향해 곤두박질이다.

급박한 찰나 할머니는 대나무바지랑대를 내리꽂는 듯 굼벵이를 향하는 까마귀를 향해 두 눈을 질끔 감고는 불쑥 내질렀다. 그러자 바지랑대가 쑥쑥 늘어나기 시작한다. 손오공이 휘두르는 여의봉처럼 길게 늘어난 바지랑대가 굼벵이를 향해 군두박질 치던 까마귀의 배를 정통으로 때렸다. 묵직한 울림이 흡사 낚시 바늘에 대물이 걸린 것 같아 손목은 묵직했고 찌르르하게 팔이 저리다.

동시에 ‘투~툭!’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까~아악!’하는 고통에 겨운 외마디 단말마를 내지른 까마귀가 하늘로 치솟는데 검은색 깃털이 하늘로부터 난분분 떨어진다. 할머니가 가만히 보니 그것은 까마귀의 깃털이 아니라 저승사자의 찢어진 망토자락이었다. 재차 할머니가 길게 늘인 바지랑대를 하늘 높이 휘두르자 패배를 인정했는지 까마귀가 꽁지를 보이며 달아나기 시작한다. 할머니도 웬만하면 이쯤해서 멈추었겠지만 이대로 멈춘다면 언제고 다시 올 거라 여겨 발본색원, 까마귀 뒤를 맹렬한 기세로 쫓기 시작한다.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끝에 왜병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것만이 후일이 평안하다는 논리에 따라 노랑해전을 펼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전에 굼벵이를 감추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 할머니는 방에다 들인 후 철저하게 문단속을 마친다. 그런 다음 삼국지의 명장 장비가 성난 멧돼지모양 장팔사모를 사납게 휘두르듯 바지랑대를 팔랑개비처럼 휘두르며 까마귀를 좇는다.

할머니가 까마귀 뒤를 좇는 중에 발이 아프다 싶어 내려다보며 자갈밭이고, 발이 따갑다 싶어 내려다보면 가시밭이고, 발이 뜨겁다 싶어 내려다보면 숯불이 이글거리고. 발이 차갑다 싶어 내려다보면 얼음 빙판 위다. 까마귀를 가장한 저승사자를 좇아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언덕을 넘고. 개울을 건너고, 산골짝을 헤매어 어디를 얼마만큼 쫓았는지도 모르게 할머니가 달려와 멈춘 곳은 안개가 자욱하게 서린 어느 강변이었다.

여기가 어딜까 싶어 둘려보는 할머니의 눈에 낡고 오랜 된 나룻배 위로 남루한 옷에 꾀죄죄해 보이는 면상의 늙은 뱃사공이 긴 장죽을 빼어 물어 앉았다. 나룻배의 고물로 성성한 백발을 대충 꼰 것으로 보이는 새끼 토막을 질끈 돌려 맨 할아버지가 앉았다면 이물에는 검은 망토에 바람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까마귀가 변한 저승사자가 원통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려 앉았다. 둘의 모습은 아주 심각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저승사자가 할아버지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그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하늘과 땅을 번갈아보고 앉았다. 뚫어진 배 밑바닥으로는 숨을 죽인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할아버지의 노여움은 대단해 보였다.

“네~ 네 놈이 그러고도 저승사자라 떵떵거려 허세를 부릴 수 있나! 쥐뿔도 없는 네 놈이 본분도 모르고 평소 잘난 척 거들먹거릴 적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줄은 진즉에 알았다. 이제 상제께 무어라 변명을 할 것인가? 빈 배로 돌아가는 나는 또 어떻고...!”하며 할머니를 돌아보는 할아버지 눈에 원망이 가득해 보였다. 할머니는 그 눈초리가 왠지 섬뜩하여 가슴이 서늘한데 하늘로부터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 목소리가 단지 옥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 아름답다고 여길 뿐인데 배의 고물과 이물에 올라앉은 늙은이와 저승사자는 죽음에서 구제를 받은 듯

“관세음보살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백골난망, 깊이 감사드립니다”하더니 밑 창 없는 배를 몰아 쏜살같이 안개 속으로 묻혀버린다. 이제 서늘한 백사장에 홀로 남은 할머니다. 어디로 가야 돌아가는 길인지 암담해진 할머니가 무작정 몸을 돌리려는 찰라

“그간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을 알고 있느니라! 앞으로도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 말고 열심히 살아가시게나! 원래 고생이란 것도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병의 일종으로 즐겁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것이 삶의 이치니라! 그런 까닭으로 고생을 고생이라 여기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덕을 베풀어가며 살아가시게나! 그런 가운데 화는 자연스럽게 복으로 변하느니라!”하는 인자한 말소리 끝에

“그간의 노고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내려주는 내 자그마한 선물일세! 치마를 펼쳐 받게!”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린다. 마음이 급해진 할머니가 폐백 때 시어머니가 던져주는 대추와 밤을 받듯 찢어진 치마를 활짝 펼치자 향긋한 복숭아 냄새를 풍기는 가운데 둥그런 물체 하나가 치맛자락 안으로 출렁거려 내려앉는다. 깜짝 놀란 할머니가 눈을 들어 좌우를 살펴보는데 하늘도 강도 사라지고 눈앞으로 가물거리는 촛불이 일렁인다. 그제야 할머니는 어사무사, 까무룩 든 잠결에 한바탕 꿈속을 헤매다 온 것임을 알았다.

“한단지몽도 아니고 별 요상한 꿈도 다 있구나!”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코끝으로 은은하게 복숭아 향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 늦은 가을, 이게 어디서 오는 향일까?”싶어 주위를 돌아보는데 봉창으로는 불그스레한 기운의 여명이 비쳐 든다. 문득 할머니는 요상 야릇한 꿈으로 인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모가 생각났다. 하지만 급한 마음과는 딴판으로, 고모의 생사가 궁금한 만큼, 할머니는 이불 들치기를 저어하고 있었다. 이는 고모가 머리까지 뒤집어 쓴 이불에서 그 어떠한 미동도 느끼지 못한 때문이다. 숨결이 잠들어 고요한 이불을 내려다 볼 때 할머니는 분명 첫째가 가던 그날의 새벽처럼 고모는 필시 죽어 있으리라 여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들일을 나가는지 새벽 공기를 뚫고 ‘삐그덕’하고 방문 열리는 소리가 인다. 이어 삽짝을 돌아나가는지 발자국 소리가 귀에서 점점 멀어지고 대신 개 짖는 소리가 먼 데서 들여온다. 뒤를 따라서 청솔댁의 수탉이 홰를 치며 새벽을 일깨워 길게 운다. 이대로 마냥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 싶은 할머니다.

‘삼종지도’라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하는 것이 여자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 역시 어머니를 대신한 험하고 궂은일을 피해갈 수가 없다. 만약의 경우 죽은 여동생의 시신을 삼베옷으로 곱게 감싸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 아버지에 주어진 책임이자 몫이라 해도 말이다. 지게목발 장단에 눈물로 얼룩진 상여가를 부를지라도 뒤를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할머니는

“사랑하는 내 딸 끝순아~ 이제 너를 위한 내가 할 일은 오늘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구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구나! 에~이구 남 못 하리! 핏덩이와의 줄줄이 이별일 때에는 뗄 정이라도 희미하더니 14년 동안의 미운 정, 고운 정을 가슴에 아로새긴 날들은 어이 돌아보아 눈물을 참을꼬! 살아도 산 것 같잖고, 먹어도 먹은 것 같잖은 불지옥 같은 생만 남았구나!”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고모가 덮고 있는 이불을 들추었다. 점차 드러나는 고모의 얼굴은 백지장 같다.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다. 이는 할머니가 이미 예상했던 바다. 그래도 이대로 제 아버지를 찾아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고모의 생사 여부를 알고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일망정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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