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1)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2.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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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막혔던 숨통이 트였는지 아이의 등이 들썩거린다
나는 그 복에 도움을 조금을 조금 준 것 밖에 없네!
감기가 유행할 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는 것이 상책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청솔댁이 없는 살림에 귀하게 태어난 손자의 무사안녕을 위해 있는 정, 없는 정을 내어 복을 지었건만 보람도 없이 창졸지간에 생명의 끈을 놓으려 하고 있다. 생때같은 손자가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저승사자의 손에 이끌려 이승을 떠나고자 안녕을 고하고 있다.

전생에 천벌을 받을 업을 그리도 많이 지었는가 싶었다. 만약 지었다면 할미가 갚아야할 업이건만 어찌하여 손자를 앞장 세워 빚을 독촉한단 말인가? 죄 많은 할미를 대신하여 갚는다고 꿈도 피워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물거품으로 사윈단 말인가? 진정 머리 위로 하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라 우러러 항변이다.

모든 정성을 떠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서 아장아장 기며 방긋방긋 웃던 아기다. 그런 아기가 말 한마디 못하고, ‘찍’소리 한번 토하지 못하고 죽은 듯이 사지가 늘어져 버렸다. 허옇게 튼실한 엄마 젖을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트림까지 했던 아기가 아닌가? 생시인가? 꿈속 인가? 분간이 안 간다. 사지를 늘어뜨린 아기의 입이 생시처럼 방실방실 웃는 듯도 보인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다 타버려 부스스 재만 흘러내리는 장죽 물부리의 봉오리를 입안 깊숙이 문 영천양반은 허공에 두 눈을 박아 습관처럼 ‘벅벅’소리 나게 빨고 앉았다. 사람이 오가는지 짐승이 오가는지 관심이 없다. 없다기보다 졸지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이목구비가 막혀버린 모양이었다.

묻고 자시고, 촌각도 지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인지경이다. 할머니가 영천댁의 품 안에 안긴 아이의 상태를 잠시 살피는가 싶더니 냉큼 받아 안더니 거꾸로 하여 토닥토닥 등을 두드린다. 영천댁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중인환시, 할머니의 동작을 유심히 바라볼 뿐 말을 잊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기를 뒤집어 등을 두드리길 서너 차례나 했을까? 축 늘어졌던 아이의 벌어진 입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덕석 바닥으로 ‘뚝’하니 떨어진다. 그제야 막혔던 숨통이 트였는지 아이의 등이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으~ 앙”하고 울음보를 터트린다.

죽어가던 아기의 생명줄이 일순 간 화들짝 돌아 온 모양이었다. 백짓장 같았던 얼굴 위로 화사한 생기가 도화 빛으로 불그레하게 피어난다. 저승길에서 저승사자의 손을 뿌리쳐 되돌아온 기쁨인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인지 어미인 영천댁 품 안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저녁으로 향해가는 하늘 아래서 울컥울컥 서럽다. 한참을 서럽게, 서럽게 울던 아기가 제 풀에 지쳐 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고개를 옆으로 까딱, 옆으로 까딱, ‘딸국’거린다. 딴에는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할머니가

“내가 이러면 주제넘을까? 이보시게 청솔댁! 너무 이 잡듯 며느리를 나무라지는 말게! 인자 죽을 염려는 붙들어 매어도 되겠네! 혹 경기(놀라서 일어남 . 또는 놀라게 하여 일으킴)를 할지도 모르겠네! 낭중에 며느리를 보내주게! 우리 집에 들려 경기하는데 듣는 약이나 받아가게! 그리고 영천양반, 영천댁아! 얼라를 키우다보면 별의 별일이 다 생긴다네! 내 꼬락서니만 봐도 알조가 아닌가? 이참에 좋은 경험했다 여기고 크고 작은 허물일랑 그저 한 눈 질끈 감아 덮어주고 서로 다독거려 어여삐 여겨 살게! 그러게 살을 섞고 사는 부부지간이 아닌가?”하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골댁은 궁금증이 도진다는 할머니를 졸라서 물었다.

“성~님! 숨이 꼴깍 넘어가서 죽은 듯 곱다시 늘어졌던 아기가 성~님! 손짓 몇 번에 멀쩡하게 살아나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곡예단의 눈속임 같은 마술을 보는 것 같아요!”하고 할머니를 졸랐다. 그런 감골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가

“자네는 뭐가 그렇게도 궁금한 게 많은가? 사람하고는!”하며 대충 추려서 내력을 들려주는데

내가 영천댁에 들려 가만히 보니 영천댁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난 뒤 덕석에 내려놓은 모양이네! 한데 근처에 작은 돌멩이들이 서너 개가 있었던 모양이야! 낮 동안 아이들이 모여 앉아 공기 놀이를 했던 모양이지! 그 중 하나를 집어서는 먹는 것으로 여긴 아이가 날름 삼킨 모양으로 목에 걸려버린 거지! 아이가 무슨 지각이 있는가? 아기들이란 다 그렇지 않은가? 한데 말이야! 원래 공깃돌은 다섯 개가 아닌가?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공깃돌은 네 개, 분명 하나가 부족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여겼지! 그런 와중에 공깃돌이 아주 작거나 큰 것이었으면 또 문제가 없었겠지만 적당한 크기라 목에 걸려 기도를 막아버린 게야! 불행 중 다행으로 그 공깃돌은 모난 중에 둥글었지! 그러다 보니 완전히 숨통을 막은 것은 아니었지! 그래 내가 이거다 싶어 엎어서 등을 두드리자 예의 공깃돌이 쉽게 빠져 나온 거야! 공깃돌이 영 둥글었으면 참말로 절단 날 뻔 했지. 아니 영 모난 돌이었다 해도 그리 쉽지 않았을 게야! 천만다행이지! 제 놈이 살 복이 있었던 게지! 나는 그 복에 도움을 조금을 조금 준 것 밖에 없네! 다 차린 상에 젓가락 한 벌을 얹듯 말이지! 그리고 그 놈이 제 살 복을 타고 났다는 것이 영천댁이 아이를 폭 감싸 안지 않고 목을 젖혀서 안았다는 거지! 알고 그랬는지 무의식중에 그랬는지 하여간 그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게 아기의 숨통이 실낱같이 트이고 있었다는 거야! 설령 그렇더라도 자네 말대로 촌각을 다투는 일이기도 했지!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만사가 끝장날 수도 있었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이를 두엇 키워 본 어미라면 그만한 일은 일반 상식인데...!, 영천댁은 그 아이가 첫 아이고 너무 귀하게 여기다 보니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지! 게다가 처음 당한 일이라 당황해서 그 지경이 된 거야! 청솔댁도 아이를 키워본 기억이 오래전이다 보니 마찬가지였을 거야! 옆에서 지켜보는 바둑이나 장기의 훈수라면 훤한데 막상 내 일로 코앞에 들이닥치니 이성을 잃어버려 우왕좌왕한 것 뿐이지! 하고 말을 마치자 귀를 쫑긋 세워 듣고 있던 감골댁이

“성님은 눈썰미가 어지간하네요!”하며 감탄해 마지않자 할머니는 아닌 게 아니라 셜록홈즈와 그의 조수 왓튼박사의 흉내를 낸 것 뿐이라 했다.

셜록홈즈와 왓튼박사는 상하 관계인 주종 관계 전에 친한 친구이자 지기였다. 소설 속에서 그들을 늘 추리를 하며 서로의 지식을 경주했다. 아침 출근 때 신발 등을 살펴 어디를 다녀 온 지를 알아맞히는 것이다. 가령 구두에 진흙이 묻으면 진흙탕이나 비가 내린 길을, 먼지가 묻었으면 신작로를 다녀온 것으로 추리를 하는 것이었다. 간혹 새의 깃털을 옷깃에 달아 오거나 나뭇잎 따위를 붙여 오면 벌써부터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을 배려해서 모르겠다는 척 머리 긁적긁적 어렵다고 너스레를 떠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왓튼박사는 온몸을 완전하게 변장을 하고 나타나 사건을 의뢰하는 손님처럼 굴었지만 셜록홈즈가 단숨에 알아보고는

“이보게 왓튼박사 나는 자네가 아무리 변장을 해도 내 눈은 속일 수가 없다네! 단숨에 알아본다네!”하고 말했을 때 왓튼박사가

“어떻게 알았는가?”하는 질문에 셜록홈즈는

“그거야 너무 나도 쉽지!, 자네는 말이야 아무리 완벽하게 변장을 했다 치더라도 자네의 그 큰 키 만큼은 어쩔 수 없지!”하고 웃었다는 거야!

말을 마친 할머니는 병자를 보살피는 사람은 병자의 주변 환경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가령 감기가 유행할 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는 것이 상책으로 꼭 가야 한다면 손수건 등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돌아와서는 예방 차원에서 손발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듯이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 기침을 한다면 이는 필시 감기인 거야! 병에도 따지고 보면 원인이 있는 기라!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 말이야! 하고는 숨을 깊게 쉬는 할머니는 나도 그렇게 주위를 세심하게 살핀 덕에 공깃돌 하나가 모자라는 것을 어렵잖게 알아차렸다네! 하고 가슴을 쓰는 할머니는 아직도 팔딱거리는 숨결만큼 심장이 ‘콩콩’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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