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4)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3.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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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빠는 반대편 젖을 성큼 내주는 영천댁이었다
너무 오래 묵혀두면 대들보나 서까래가 썩을 염려가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설악산 오세암으로부터 전해오는 전설을 접하고 나서는 더욱 신봉하게 되었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날 저녁, 가물거리는 호롱불 밑에서 할머니는 고모의 몸을 찬찬히 살폈지만 눈동자 외에는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모는 그즈음 아기를 가진 아주머니를 유독 좋아 했으며 젖을 먹이는 모습에는 넋을 놓아 본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속으로

“아직 여자로 제대로 영글지 못한 것이 마음만 앞서 애기가 갖고 싶은 건가? 이 어미도 네가 애기를 갖는 모습을 오매불망 보고 싶지만 어째 그것이 마음먹는다고 될 일인가?”하고 속으로 탄식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척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혹여 아기를 가진 아낙네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방으로 불러 들여 시간을 끌었다가 보내기 일쑤였다. 여차하면 밥을 짓고 가능하다면 잠까지 재워 보내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노력을 익히 알고 있는 영천댁은 아기가 젖을 보챌 때면 으레 할머니 집으로 달려왔다. 그럴 때면 고모를 무릎까지 불러 만져보라며 아기가 빠는 반대편 젖을 성큼 내주는 영천댁이었다. 아기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도 보답이려거니와 고모는 나이만 아기보다 많지 따지고 보면 정신연령이 아기와 다름없다 여겼다. 같은 동네 사람으로, 이웃 사촌으로 낼 수 있는 인정이라 생각한 것이다. 가끔 젖을 빨던 아기가 시샘을 해서 고모의 손을 밀어낼 때면 꼭 쌍둥이가 찰싹 달라붙어 사랑을 시샘을 하는 듯 여겼다.

칼로 도려낸 듯 외진 세월을 뒤로 하여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린 지도 수년이 흘러 고모 나이 14살을 맞은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계절은 가을이지만 그해 따라 시베리아 벌판서 발달한 한랭전선이 일치 감치 남하를 감행했는지 겨울철과 다름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설(小雪)을 막 지난 세찬 날씨에 거랑(시내)으론 살얼음이 사르르 내리 깔리고 들판의 나무는 죄다 나목으로 앙상하게 변해 세찬 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노루꼬리처럼 짧아진 하루해는 오후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서산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은 또 한해가 지나 쓸데없이 나이가 들어간다며 안개가 자욱한 듯 희미한 민경(거울)을 들여다 보다 간 홍안의 청춘은 간 곳 없고 거미줄이 얼키설키 주름투성이 늙은이만 남았다고 긴 한숨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늘어난 주름살을 하나 둘 세다가는 세월무상을 들어 투덜거렸다. 희끗희끗, 새록새록 남몰래 늘어나는 새치를 두고는 투덜거리는 딸내미를 불러다가 윽박질러 뽑는다며 부산을 떨고 있었다.

진즉에 바심이 끝난 들녘으론 떨어진 낱알마저 날 짐승 들 짐승들이 훑어간 뒤라 황량하기 그지없고, 바람 머리가 지난 들판으로는 밤새 내린 무서리가 하얗게 깔리는 날이 거듭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뚝뚝 떼어낸 수제비 반죽이 하늘에 올라 붙은 듯 먹장구름이라도 오락가락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싸라기눈이라도 내릴까 싶어 겨울 채비로 집 안 밖을 둘러보는 날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즈음 할머니도 겨울 채비에 더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 역시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쉬 쉴 수가 없는 것은 다분히 초가 지붕 때문이었다. 순번을 정해 이엉을 엮는 등 돌아가며 초가의 지붕을 새로이 이는 일로 분주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 또한 초가 지붕 일로 인해 밤이면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틀 후가 할머니의 초가를 이는 날이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그동안 묵었던 지붕을 싹 갈아서 이는 해이기도 했다. 그대로 겨울을 맞아 폭설이라도 내리면 지붕의 무게에 집이 무너질 수가 있어서 몇 년을 주기로 꼭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추녀 끝을 보금자리로 삼은 참새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너무 오래 묵혀두면 대들보나 서까래가 썩을 염려가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굼벵이들도 많이 상하리라 여겼지만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했다.

그 날을 대비하여 할머니도 나름대로 분주했다. 품앗이로 나선 동네 사람들을 위해 5일마다 서는 장을 맞아 음식 준비에 이런저런 궁리가 많았던 것이다. 내 집을 찾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음식으로 푸짐하게 차리려다 보니 머릿속이 자질구레한 계산 등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중뿔나게 차려보고 싶은 것이었다.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바쁘다는 성주댁을 구슬려 이미 기별까지 한 터였다. 혹여 군식구들이 불시에 들이닥쳐도 남을 만큼 넉넉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할머니였다.

모래만큼 들이닥친 날에 할머니는 건어물 등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음식 준비로 바쁘다보니 고모는 터부시하여 돌볼 사이가 없었다. 하기는 점심때까지 고모는 혼자서 잘 놀고 있었기에 태무심하기도 했다. 이윽고 바쁜 일이 대충 끝난 오후 늦게 방으로 들어온 할머니가

“방이 왜 이리 어둡노! 불이라도 좀 켜 잖고!”하며 이리저리 다황(성냥의 방언)을 찾아 호롱의 심지를 올려 불을 붙이고는 깜짝 놀라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할머니의 눈에 들어온 고모는 이불 속에서 온통 땀범벅으로 겨우 눈동자만 내밀어 끙끙 앓고 있었다. 지금껏 고모와 함께한 세월에서 할머니가 어느 하루인들 마음 편하게 산 날이 있었던가? 그런 날 가운데 오늘도 그런 하루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상태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고모는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냘펐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듯 시난고난 앓아오던 지병을 한 꺼풀, 두 꺼풀 허물을 벗듯 훌훌 벗어던져 하늘을 향해 고삐 풀린 영혼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분명 혼이 빠져나간 형상이었다. 끝순이의 혼불은 언제 어느 때 초가지붕 위로 올랐을까? 누구라도 끝순이의 혼불이 오른 모습을 본 사람이 있으면 좀 알려주질 않고?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한다고 달리질 것은 없다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좀 더 세밀하게 보살피지 못한 후회 뿐이고 세상을 향한 원망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급하게 해열제를 달이고 세숫대야에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물을 담아 수건에 묻혀 고모의 이마에 올리는 등 할머니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워낙에 자주 겪는 일이라 일머리가 풀어지기가 무섭게 일사천리였다. 응급처치로 대충 할 일이 끝나자 할머니는 수미단에 올라앉은 관세음보살상을 향해 두 손을 합장 후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천수관세음보살”하며 줄 창 관세음보살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처음 할머니가 신단을 차렸을 때는 무당의 사주를 받은 신을 받들어 모셨다. 하지만 현재는 그 때의 신단을 말끔히 치워 그 자리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었다. 할머니가 무당이 천거한 신을 고유제(告由祭)를 올려 이유를 사뢴 뒤 관세음보살을 모신 까닭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서양의 종교에 사랑의 신 비너스가 있다면 불교에는 자비를 근본으로 세상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이 있다고 어느 용한 스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난 후 부터였다. 게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부터 전해오는 전설을 접하고 나서는 더욱 신봉하게 되었다.

“다섯 살 꼬마가 폭설로 인해 산속 암자에 갇히자 관음전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엄마로 여겨 자나 깨나 암송 했다지! 그 결과 날이 풀려 사람들이 찾아갔을 때 죽은 오세의 어린 몸이 생시처럼 따스했다고 했다. 암자의 식량을 진즉에 떨어졌고 굶어 죽은지가 꽤나 되어 보였지만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가피로 내려앉은 듯 싸늘하게 식은 아궁이와는 반대로 몸은 생시인 듯 따뜻했다고 했지!”하는 전설을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할머니는 고모의 정신연령을 오세로 생각했고 그때 죽은 오세의 어린이는 보살핌이 없어서 불행을 맞았지만 고모는 곁에 사람이, 어미가 있어서 분명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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