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4.0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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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하던 마음이 봄 눈 녹듯 녹아내린다
하다못해 맹물일망정 입은 다셔야 한다는 것이다
절벽같이 거칠것이 없어보이던 가슴이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른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오늘 지붕은 이는 김천댁에게는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동네 아낙 몇 명을 보낸 할머니인 만큼 특별하게 마련한 자리이기도 했다. 또 이런 자리의 화해는 감골댁이 전문가라 동석을 시킨 것이었다. 할머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천댁은

“성~님! 내 알기로 성~님댁은 내일 지붕을 인다고 했다 아니요! 그럼 내일 새벽 댓바람에 몇 명이 모여 얼그럭 덜그럭 일을 벌려도 넉넉할 텐데! 왜 오늘부터 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떨어요?”하는 말에 속이 뜨끔해진 할머니가

“아~ 영천댁아~ 내일은 몇 년을 두고 겹치기로 얹고 또 얹고 해서 속이 썩을 대로 썩은 지붕을 죄다 걷어내면 걸금(거름)냄새가 천지에 진동인데 어떻게 음식을 장만하나! 음석마다 걸금 냄새가 배여 먹지도 못하게!”하고 임시방편으로 둘러 붙이는데 옆에 서서 지켜보던 성주댁도 감골댁도 속없는 영천댁의 말에 그저 손으로 입을 가려 ‘키득키득’웃을 뿐이다. 억지웃음에 어이없어하는 성주댁이

“저런 저~ 속없는 여편네 하고는!”하고 억지웃음일망정 때아니게 웃는 것으로 그간 ‘꽁’하던 마음이 봄 눈 녹듯 녹아내려 달리 화해는 필요가 없었다.

“순진한 건지, 영악한 건지! 하여간 팔푼이모양 저리도 속일 없을까?”하고 생각하는 감골댁이

“성주댁아 칠라닥팔라닥 천방지축인 영천댁을 데리고 육개장에 고깃국 끓이는 일일랑 자네가 알아 도맡아 하게!”할 때

“예~ 형님 그래야 겠네요!”하는 것으로 둘의 화해는 일단락이다. 이후 음식 장만은 할머니의 공덕과 고모의 변화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 가운데 더 없이 즐거웠다. 중간 중간 너나없이 고모의 변화를 살펴보느라 섬돌을 밟아 방으로 들락거리기에 바빴다.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의 시 ‘몽혼(夢魂)’의 한 구절로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을을 들어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문 앞의 돌길 반은 모래가 되었으리라)’라 궁금증을 빙자한 아낙네들이 번갈이 드나드는 통에 방문은 끊임없이 여닫혔다.

보다 못한 감골댁이

“환자라 앓아누운 사람 방을 어찌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들꼬? 찬바람 들어 덧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들락거려 쌓노!”하고 단속을 하고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는 이불을 무릎에 걸쳐 일어나 앉은 고모가 괜찮다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고모의 못난이 외모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떠나 인지된 상태였다. 더 이상 감추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평소에 비해 방안은 심하게 더웠다. 음식을 한다고, 요리를 한다고 아궁이마다 장작을 들이미는 통에 아랫목이고 윗목이고 간에 절절 끓는다. 게다가 고모조차 전에 없이 몸에 열이 나고 있었다. 방문을 닫는 자체가 고모의 갑갑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야 그나마 살만한 고모였다.

그리고 다음 날, 초가를 새로 이는 날을 맞아 할머니 댁으로 동네잔치가 벌어짐은 당연했다. 아녀자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고모의 얼굴을 보고자, 남정네들은 귀동냥을 하고자 객식구들이 마당이 비좁도록 찾아 들었건만 빈 입을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성주댁이 팔을 걷어 붙여 솜씨를 보태고 보니 오는 동네 사람마다 별미를 맛본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후로 접어들어 지붕 위로 마지막 이영이 오르고 용마루가 올랐다. 뒤를 이어 새끼타래가 올라 지붕 위에서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지자 일이 얼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욱 불어나고 있었다. 동네 조무래기들조차 입이 누리는 호사를 마다할리 없어 손에는 고구마전이나 배추전, 감자전 따위를 들고는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고샅을 누볐다.

결국 할머니가 생각한 이상으로,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결국 객식구들을 예상하여 넉넉하게 준비한 음식마저 이내 동이 났다. 그렇다고 떨어진 음식을 핑계로 동네 사람들의 입을 보얗게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 인심이 인정머리 없이 그럴 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맹물일망정 입은 다셔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떨어진 음식 따위를 보안하기 위해 부조모양 새로이 십시일반으로 급하게 조달된 음식 재료들로 제살 파먹기를 하고 있었다. 그 즈음 어디서 구했는지 돼지오줌보가 축구공으로 화해 질펀한 논밭으로 등장했다. 밀집을 꺾은 대롱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빵빵하게 부풀러진 돼지오줌보가 발길에 체여 공중으로 높이높이 치솟을 때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다. 그러던 중 배가 고프다 싶으면 마당가를 어슬렁거려 배를 불렸다. 어쩌다가 떨어진 음식부스러기 일망정 한 입을 얻어 걸린 동네 개들조차 신이 나서 덩달아 날뛴다. 그 중에 누렁이도 한 몫 거드느라 오두방정으로 노랗게 내달린다. 언제 끝날 줄 모르던 때아닌 잔치는 산 그림자가 산허리를 지나 꼭대기에 이르러 서야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네 사람들은 초가삼간을 이는 날에 이만한 소동은 동네가 생긴 이래 처음이라며 입을 모았다.

끝이 곧 시작이고, 시작이 곧 끝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시작도 끝도 같은 선상인가 보다. 할머니가 까마귀를 좇은 새벽녘을 기점으로 고모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끝인지 또 다른 시작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지금껏 정지했던 세포가 아메바의 활발한 운동처럼 전신에 깃들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까무잡잡했던 피부 밑으로 뽀얀 살결이 밀물처럼 밀려 오르고 있었다. 절벽같이 거칠것이 없어보이던 가슴이 하루가 다르게 방실방실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통나무같이 밋밋하기만 하던 골반이 눈에도 확연하게 펑퍼짐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박씨전에 등장한 박씨 부인이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듯 고모는 ‘일신 우 일신’, 날로, 날로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간 말로만 들어오던 진용일흥(眞龍逸興:진짜 용은 숨어서 일어난다.)의 실체를 보고 있는 듯 홀린 기분의 할머니는 꿈을 꾸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신묘막측의 쇼에 흠뻑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4년간 단 3㎝만 자라다가 5년째부터는 매일 30㎝를 자라 6주면 20m여의 성목이 된다는 모소 대나무의 쇼를 보는 것 같았고 17년 매미의 화려한 금선탈각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날로, 날로 건강을 찾아가는 고모는 할머니가 보기에도 특출한 미모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마는 넓지도 좁지도 않아 복을 갈무리한 듯 뽀얀 가운데 반들거렸다. 까만 눈썹은 초승달모양으로 유명화가가 정성으로 그린 듯 날렵하여 가슴이 탁 트이는 듯 시원스럽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걀상하니 해끔한 것이 은은하게 귀태가 흘렸으며, 양 볼은 복숭아 빛으로 발그스레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연중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얼굴 중앙으로 오뚝하게 솟은 콧날은 좌우상의 중심 지점에 비율도 적절하게 자리를 잡은 까닭에 스스로 도도해 보인다. 인중은 또렷한 것이 매끈하여 시원스러웠다. 입술은 도톰하면서 앵두 빛으로 붉어 사랑스러웠으며, 귀밑머리로부터 뽀얗게 흘러내리는 턱 선은 계란형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매끄럽다. 옥에도 티가 있다지만 모든 조화가 적절하여 어느 한 곳을 지칭하여 흠을 잡지 못할 지경이다. 맨 얼굴이지만 세안을 끝낸 것처럼 청초하여 해맑다. 게다가 부끄러운 듯 살포시 웃음 지을 때 드러나는 시리도록 새하얀 치아가 상대방을 자지러지게 하는 고혹의 미를 품었다. 과거 고모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환골탈퇴의 변화에 놀라움과 함께 감탄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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