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 원시인의 마스크는 언제 벗을까?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 원시인의 마스크는 언제 벗을까?
  • 김차식 기자
  • 승인 2020.06.05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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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역사를 5천 년에서 2만 년까지 끌어 올린 월성동 구석기유적
잠이 든 원시인을 형상화한 석상 조형물의 마스크는 언제 벗을까?
청동기시대 유물인 붉은간토기, 무문토기와 반달돌칼 등 대형 전시물 설치
‘깊은 잠이 든 원시인을 형상화’한 석상. 지난 달 16일 마스크는 시민들의 코로나19 경각심을 높이자는 의도에 착용. 김차식 기자
‘깊은 잠에 든 원시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에 코로나19 경각심을 높이자는 의도로 대형 마스크를 씌워 놓았다. 김차식 기자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상화로 일원(월배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유적들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달서구청은 2018년 3월에 선사유물 홍보 사업을 위해서 ‘거리 박물관'을 설치하였다.

박물관과 역사책에만 볼 수 있었던 달서구의 선사시대 유물들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쉽게 알리고 있다. 특히 유소년층을 위한 교육적인 목적으로 달서구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유물들을 선별하여 1대 10(20) 규모로 확대 스케일의 전시 조형물로 만들어 재탄생시켰다.

달서구청은 진천동 거리 곳곳에 이런 조형물을 전시하여 이 지역 전체를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홍보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사적 제411호 진천동 입석이 있다. 로또 맞은 동네라는 개념으로 선사유물들이 하늘에서 운석처럼 떨어지는 흥미로운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구석기~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선사유물이 발견된 것은 이 지역이 오래 전부터 정주 여건이 탁월한 곳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2만 년 역사가 잠든 곳’ 거리 박물관 팻말. 김차식 기자
‘2만 년 역사가 잠든 곳’ 거리 박물관 팻말. 김차식 기자

거리 박물관에는 청동기 시대 유물인 붉은간토기, 무문토기, 간돌칼과 반달돌칼 등을 재현한 대형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박물관과 문화재연구원 등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유물의 실제 모습을 최대한 구현하여 실제보다 10(20)배 크기로 키우고 재미있는 요소를 더했다.

대구 역사를 5천 년에서 2만 년까지 끌어 올린 월성동 구석기유적이 2006년 발견된 후 대구 역사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동시에 달서구 지역이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을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석상 조형물은 총 길이 20m, 높이 6m에 달하는 깊은 잠이 든 원시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월배 선상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선사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선사유적공원을 중심으로 조성된 선사시대 테마거리는 이 지역 일대를 선사시대 랜드마크로 조성하고자 하는 달서구청의 관광콘텐츠 사업이다.

사업의 기획과 디자인은 이 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광고기획자 이제석씨가 맡아서 진행하였다. 작품명은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이다. 이 지역만의 유구한 역사성과 그 상징성을 가진 ‘돌’ 이라는 소재로 작품을 표현하였다.

달서구에 묻혀 있는 많은 역사적인 가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재미있는 볼거리와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들을 더해, 달서구 지역의 가치를 가일층 높이고 싶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또, 달서구 지역의 선사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유구한 전통성을 이어 받아 소중한 역사와 문화자산을 미래세대에게 계승하기 위함이었다.

선사 전시물들은 기존 선사 테마의 홍보/예술품들과는 달리 예술가적인 상상력이나 외국 사례들의 모티브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실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인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다. 거리 박물관과 함께 선사시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 붉은간토기

진천역 3번 출입구에 설치된 대형 붉은간토기는 1:10 확대 스케일 모형으로 마치 하늘에서 낙하한 기법으로 지붕에 일부가 박혀 있다. 김차식 기자
진천역 3번 출입구에 설치된 대형 붉은간토기는 1대 10 확대 스케일 모형으로 마치 하늘에서 낙하한 것처럼 지붕에 일부가 박혀 있다. 김차식 기자

붉은간토기(홍도: 紅陶/단도마연토기: 丹塗磨硏土器)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표면이 붉은색을 띄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토기의 성형이 완료된 뒤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의 액체를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 문질러 소성한 토기를 말한다. 산화철은 고온에서 붉은색으로 발색되며, 토기의 표면을 갈면 광택을 띠게 된다. 바리, 대접, 접시, 항아리, 굽다리접시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되는데, 주로 집 자리 유적과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에서 다수 출토되며 주로 무덤의 껴묻거리(副葬品)로 출토되는 예가 많아 의례용으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출토지역: 대구 달서구 상인동/자료출처: 영남문화재연구원, 국립대구박물관, 두산백과

■ 반달돌칼

반달돌칼로 선사 유적물을 1:20 확대 스케일 모형. 김차식 기자
반달돌칼로 1대 20 확대 스케일로 만든 모형. 김차식 기자

반달돌칼(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은 곡식의 이삭을 따는데 사용한 수확용 도구로서 중국 신석기 시대의 양사오, 롱산 문화에서 처음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형태는 반달 모양인 것이 가장 많고 함경도지역에는 네모꼴, 충청, 전라도 해안지역을 포함한 남부지방에서는 세모꼴도 많이 만들어졌다.

돌 표면에 있는 구멍들은 손걸이 끈을 관통시켜 손과 돌날을 고정시킨 뒤 손목을 꺾어 곡식 등을 예리하게 자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달돌칼은 신석기 말에 등장하여 청동기시대 벼농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철기 보급으로 인해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출토지역: 대구 달서구 대천동/자료출처: 영남문화재연구원, 국립대구박물관

■ 간돌칼

간돌칼로 선사유적물을 1:10 확대 스케일 모형. 김차식 기자
간돌칼로 1대 10 확대 스케일 모형이다. 김차식 기자

간돌칼(마제석검: 磨製石劍)은 점판암이나 혈암 등의 돌을 갈아서 만든 칼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이며 마제석검이라고도 한다. 검 길이는 30Cm 내외의 것이 대부분이다. 긴 것은 60Cm 되는 것도 있으나 짧은 것은 15Cm 정도의 것도 있다.

청동기시대라는 명칭 자체는 금속재질이 이용된 시기임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금속제품이 일상생활에서 널리 이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금속은 귀한 재료였고 이를 가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따라서 금속제품을 꾸미거나 의기(儀器) 등 지배자의 상징물로 이용되었고,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는 등 일상적인 활동에는 돌로 만든 석기가 주로 이용되었다.

생활유적인 주거지에서 출토된 검들은 의기화된 돌검과 달리 날 부분에 사용 흔적이 있거나 부러진 것을 재가공한 흔적이 있는 것들도 있어 실생활에 사용된 돌검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간 돌검의 정확한 용도는 실용적인 칼의 기능뿐 아니라 계층 사회에서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기능이나 내세를 위한 의례적/종교적 기능 또한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규모가 큰 무덤과 주거지에서 주로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간돌칼은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었던 일상품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위세품(威勢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출토지역: 대구 달서구 대천동/자료출처: 영남문화재연구원,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 무문토기 구연부

무문토기 구연부로 선사유적 전시물을 1:20 확대 스케일 모형. 김차식 기자
무문토기 구연부로 1대 20 확대 스케일 모형이다. 김차식 기자

무문(無文)토기 구연부(口緣部)는 청동기시대에 주류를 이루는 무늬가 없는 토기로 일제시대 최초 유물 발굴 당시, 일제는 이런 형식의 토기가 청동기시대를 대표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름만 붙여서 ‘무문토기’라는 이름이 탄생하였다. 무늬없는토기는 순수 우리말로 고처 부른 것이다.

신석기시대에 유행하던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소멸하고 대신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의 무늬 없는 토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민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대체로 태토가 정선되지 못하고, 기벽이 두터우며,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졌기 때문에 흔히 적갈색을 띠고 있다.

기형(器形)의 측면에서 볼 때, 빗살무늬토기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납작바닥과 둥근바닥으로 뚜렷이 구분되는데 비해, 민무늬토기는 모두 납작바닥이며 그릇에 목이 달려 있는 토기가 많은 점이다.

벼농사를 주로 하고 청동무기를 만들게 된 변화된 무문토기 시대의 사회분위기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무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무늬를 만들지 않은 대신 용도에 맞는 여러 가지 형태의 무기를 만들었다.

▪ 출토지역: 대구 달서구 월성동/자료출처: 대동문화재연구원,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 무문토기

무문토기로 선사유적 전시물을 1:10 확대 스케일 모형. 김차식 기자
무문토기로 1대 10 확대 스케일 모형이다. 김차식 기자

무문토기(無文)는 청동기시대에 주류를 이루는 무늬가 없는 토기이다. 발굴 당시 석재의 압력에 의해 완전히 부서진 채 출토된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복원하였다. 청동기시대에 주류를 이루는 무늬가 없는 토기로 대체로 음식을 끊이고, 저장하며 담는 기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일제시대 최초 발굴 당시, 일제는 이런 형식의 토기가 청동기시대를 대표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저 이름만 붙여서 ‘무문토기’라는 이름이 탄생하였다. 해방 후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무늬 없는 토기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로 자리잡았다.

초기 형태는 모두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의 잔재가 남아 있어, 외래요소인 민무늬토기와 빗살무늬 토기의 고유한 요소가 결합되어 당분간 공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잔재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민무늬토기로 정립되는 시기는 서기 전 1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 출토지역: 대구 달서구 상인동/자료출처: 영남문화재연구원,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양구선사박물관

‘2만 년을 이어온 선사시대로 여행’ 안내도. 김차식 기자
‘2만 년을 이어온 선사시대로 여행’ 안내도. 김차식 기자
‘선사시대로’ 안내도. 김차식 기자
‘선사시대로’ 안내도. 김차식 기자
‘거리를 박물관으로’ 원시인 사진. 김차식 기자
‘거리를 박물관으로’ 교통표지판에 매달린 원시인. 김차식 기자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 거리를 박물관으로’ 안내 표시. 김차식 기자  소개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 거리를 박물관으로’ 안내 표시. 김차식 기자
‘거리를 박물관으로’ 주변 녹지와 수목. 김차식 기자
‘거리를 박물관으로’ 주변 녹지와 수목. 김차식 기자

대형 석상의 주위를 녹지와 수목 등으로 조성하여 지역주민들에게 쉼터 제공, 선사유적에 대한 탐방사업 활성화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으로 달서구만의 독특한 랜드마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진천역 지하철 내부는 유물 발굴 장면을 재현한 평면 그래픽(래핑)을 트릭아트 형식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예로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선사인(先史人)들이 살기 시작한 달서지역은 청동기시대 유물은 물론, 대구에서 유일하게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어 대구 삶터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선사시대로 탐방공원 코스는 선사유적공원(달서구 진천동 470-38), 고인돌소공원(달서구 진천동 713-14), 한샘공원(달서구 대천동 353-5), 선돌공원(달서구 월암동 431)가 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는 1월 19일 입국검역에서 분류되었는데 벌써 만 4달이 지났다. 전염병 전파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일상생활의 마비, 사회활동 위축 등 사태가 발생되었으며, 초·중등학교 개학도 몇 번에 걸쳐 연기됐다.

상화로에 있는 '2만년 역사가 잠든 곳' 원시인이 쓴 마스크는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하면서 시민들이 경계심을 늦추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는데, 흰색 천으로 만든 것으로 가로 3.5m, 세로 3.7m 크기이다. 마스크 씌우기 이벤트는 지난달 16일 했다는데 3주가 다가왔다. 언제 마스크를 벗겨 줄 것인지? 우리는 일상의 날이 빨리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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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명 2020-06-06 07:12:34
긴기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