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그리운 이름, ‘아! 아버지’
[어버이날] 그리운 이름, ‘아! 아버지’
  • 김차식 기자
  • 승인 2020.05.07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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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사랑과 성원으로 ‘송덕비’를 모교운동장에 제막
인생 삶은 한번가면 다시 못 오는 불귀의 객, 공수래공수거
인생 3막의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며 살아가야
삶의 터전 위에 사랑만이 소중한 보물
모암 김용준 교장 묘비. 김차식 기자
모암 김용준 교장 묘비. 김차식 기자

모암 김용준(慕巖 金瑢俊, 전 용암초등학교장, 1921년 5월~2004년 6월) 교장은 경북 성주군 용암면 기산2동에서 태어나 대구공립농림학교 4년을 졸업했다. 43년 7개월이나 후세 양성을 위해 교육에 봉직하시어 모교에서 정년을 했다. 퇴임 전에는 제자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모금으로 ‘송덕비(頌德碑)’를 모교운동장 옆 화단에 제막하였다. ‘평생을 교육에 몸 바쳐 제자를 위해 헌신하신 모암 김용준 선생님의 드높은 뜻과 공덕은 이 동산 이 고장에 장송처럼 푸르리라’고 송덕비에 새겨져 있다.

꽃은 해마다 그 꽃이겠지만, 사람은 해마다 그 사람이 아니로구나! 슬픔을 머금은 것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사랑스러운 아들, 딸과 수많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훌훌 먼 곳으로 떠나 유명을 달리 하였으니 하늘을 우러러보며 안타까운 마음 풀길이 없다.

유난히도 그해, 그날은 어느 때보다 찜통 무더위였다. 아버님을 마지막 보내드리는 날, 그 모두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은덕이 계셨던 것 같았다. 인생의 삶은 덧없이 짧고 너무나 허무하다는 어느 글귀가 생각나게 되었다. 83세에 노환으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인명은 하늘에 있다고 하되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어 가슴이 무거웠다.

아버지란 단어만 들어도 애틋하고 그립다. 필자가 대학시절 때만 해도 차랑차랑한 목소리, 평생을 같이 할 것 같았는데, 이제 그 모습은 사진과 녹음된 소리로만 들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세월은 흘러 2018년 1월17일 어머니와도 이별을 했다. 아버지 때와는 달리 유난히도 매서운 눈보라의 찬바람 속에서였다.

5월 한 달은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회상하고 감사했던 마음들을 추모해 보곤 한다. 세월 속에서 남긴 따뜻한 한마디 말씀도 되새겨본다.

후대에 가면 공해가 될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업적을 후학과 후손들이 기릴 수 있도록 묘소에 둘레석, 상석, 망두석과 비석을 어머니 장례식 때 제막했다. 이 지정(至情)을 굽어 살피시고 이승의 짧은 역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기쁨으로 고이 잠드소서라고 했다.

피천득의 시 '인연'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인연이란 말만으로 설렘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들은 놓쳐버린 인연은 아쉬워하면서도, 주변의 일상적인 인연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후회하게 된다.

모암 김용준 교장 송덕비. 김차식 기자
모암 김용준 교장 송덕비. 김차식 기자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공자의 말로 이순(耳順)이 왔나 했는데, 종심(從心: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을 향하고 있다. 머리는 백발이 되어가고 얼굴에는 주름이 끼어 가는 세월의 아쉬움을 느껴본다. 가엽고도 한심하게 우리 인생은 자신도 모르게 저물어 가고 있다.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가엽고 한심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인생은 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다고 하지 아니 했던가? 이 또한 인생의 허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했다. ‘하숙생’의 가사이다. 이 노랫말이 귀에 박히고 마음을 움직이며 쓸쓸한 기분에 빠져드는 날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가면 시원한 가을, 가을이 가면 또 추운 겨울이 찾아오고,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새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겠지만, 우리의 삶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 한다. 어찌 더 큰 마음의 파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아니 하였던가? 불교의식집 ‘석문의범(釋門儀範)’의 영가법문(永嘉法文)에 수록된 구절이다.  한평생 청렴결백하며 묵묵히 봉사, 정의로운 사회를 실천에 옮기면서, 만고풍상과 험한 가시밭길을 겪으셨지만 이제는 흔적만 여기저기 남겨놓고 떠나셨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재물을 탐하고 권력을 좇아도 결국 모두가 부질없기에 너무 아등바등 욕심 부리며 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두 분은 50여 년간 금실좋게 지냈다. 늘 우리들의 귀감이 되었다. 어머님이 질병으로 통원하실 때 혼자서 병원에 보내시는 것이 염려가 되어 당신도 꼭 동행을 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로부터 금술 좋은 노부부로 화제의 대상이였다.

하루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세상 사람이 반겨주는 아름다운 마음 속으로 가고 싶다. 아버지가 기원했던 세상, 미력하나마 정의롭고 밝은 사회 건설에 초석을 다짐하면서 남은 삶 동안 명랑한 사회를 위해 정성을 다 기울이고자 한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짧고 그 짧은 시간마저 일로 차 있다. 이런 허무한 인생에서 헛되지 않게 남은 삶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늦은 깨달음으로 실천하고 싶다. 죽음에는 순서는 없다지만 언젠가는 필자의 차례라 생각하면 남은 인생 3막의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며 살아가야겠다.

사람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구불구불한 길로 뒤덮는 아름다운 몸으로 익어간다. 살아가는 동안 내 육체는 가보지 못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안개 같은 삶의 터전 위에 사랑만이 남아 있는 소중한 보물이다.

“아! 봄풀은 다시 푸르렀는데, ‘아! 나의 아버지’ 그리운 이름은 부를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