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악산 중턱에 위치한 신라 고찰 '상주시 남장사’
노악산 중턱에 위치한 신라 고찰 '상주시 남장사’
  • 이흥우 기자
  • 승인 2021.05.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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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사찰
국가, 지자체 지정 문화재 많아
일주문은 조선 시대 건축물

진감국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곳 장백사에 머물면서 대찰의 모습을 띠다가 116년 각원국사가 남장사로 개명되었다. 고려까지 융성했으나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위축 되었으며, 사명대사가 이곳 보광전에서 수련하면서 선교 통합의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임란때 불탔으나 1635년 중창하였다.

노악산 남장사 일주문의 모습. 이흥우기자
노악산 남장사 일주문의 모습. 이흥우기자

봄철임에도 찾는 이 조차 드문 한적한 절 입구에 주차를 하고 아름다운 흙길을 걷다보면 다소 생뚱맞은 일주문을 마주하게 된다. 조금더 가면 극락보전이 있다 .이 전각은 원래 본전이었던 보광전에서 본전의 지위를 물려받았으나, 여전히 보광전이 본전의 위치임을 처음 찾은 초보 행락객도 쉬 짐작이 된다. 보물 제922호로 지정된 보광전의 목각탱과 보물 제923호로 지정된 관음선원의 목각탱, 보물 제990호로 지정된 상주남장사철불좌상이 있으며, 철불좌상인 비로자나불이 땀을 흘리면 병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일주문에 대한 해설 안내판. 이흥우 기자
일주문에 대한 해설 안내판. 이흥우 기자

​일주문( 一柱門)은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시기는 1889년(고종 26)에 다시 건립된 보광전(普光殿)보다는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잡석(雜石)으로 낮게 쌓은 축대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양쪽에 놓고 세웠다. 건물의 특색은 양쪽 기둥 앞뒤로 모난 기둥을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하나씩의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에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라는 편액이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로 쓰여져있다. 이 건물의 양식은 一자형에 정면 1칸(4m), 측면 1칸(2.6m)형태의 3평으로 전체적으로 건축 외형에서 균형감과 볼륨감이 있으며, 특히 구조적인 면을 고려한 까치발의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2116호로 지정(2021.2.17.) 되었다.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높이가 11m 정도의 대형불화로, 1776년(정조1)에 조선후기 대표 수화승인 유성(有誠)을 비롯해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23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제작했으며, 18세기 후반 불화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남장사 극락전의 사진. 이흥우 기자
남장사 극락전의 사진. 이흥우 기자

특히 남장사 영산회 괘불의 독보적인 학술적 가치는 괘불 제작 후 관내 기우제 행사 때 손상이 있어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했지만, 원래 채색과 장황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짜임새 있는 구성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석가여래는 화면 중앙에 압도적인 크기로, 좌우 협시의 중요 존상은 존격에 따라 상승감 있게 배치하고 사방에는 사천왕상을 두었다. 또한 용왕과 용녀를 등장시켜 모든 중생이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법화경의 핵심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존격에 따라 신체의 색을 달리해 강약을 조절한 점도 예술성 면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괘불의 복장유물은 총 3점으로 복장낭과 동경, 복장낭 보관함 각 1점이다. 현존하는 복장낭 중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보관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시는 괘불과 복장유물 일괄이 모두 전하고 괘불의 완성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조선시대 불교회화사와 불교의식 연구의 매우 중요한 사례로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범패 보급지인 유서 깊은 남장사의 영산회 괘불도와 복장유물이 문화재로서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국가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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