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연주되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모자이크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예수님을 비춰준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1시간 10분. 드디어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웅장한 석조 건물이 맞이한다. 내려서 둘러보니 기차역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건물에는 아예 3층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독일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라고 한다. 라이프치히는 유럽대륙의 한복판이라는 입지로 인해 중세 때부터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구시가지로 향한다.
도시의 규모는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다. 도시의 중심 마르크트 광장에는 16세기에 지어진 길다란 직사각형에 독특한 아케이드를 가진 우아한 건물이 눈에 띤다. 지금은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구 시청사다.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면 5분도 되지 않아 아름다운 흰색의 탑이 있는 ‘성 토마스 교회’가 나타난다. 1539년 마르틴 루터가 종신서원을 한 곳이며, 서양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가 25년간 지휘자로 근무하며 수많은 곡을 작곡하고 그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때마침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고 있었다. 하얀 기둥 사이로 붉은색 아치가 겹겹이 교차하는 높다란 천장을 울리며 번져가는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잠시 자리에 앉아 귀기울인다. 제대 뒤편 모자이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초록빛 옷을 입은 예수님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동시에 비춰준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감동이 밀려든다. 바흐가 한 생애를 바쳐 헌신했던 곳에서 듣는 오르간 음악이라니.
문을 열고 나오니 1843년 멘델스존이 건립을 추진했다는 바흐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 맞은편에는 바흐박물관이 있고 그가 사용한 악보, 편지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감상실도 있다. 이곳은 듣던 대로 바흐가 평생을 보낸 음악의 성지답다.
라이프치히에는 ‘성 토마스 교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유명한 ‘니콜라이 교회’가 있다. 이 교회에서도 바흐가 요한수난곡을 초연했다고 한다. 또한 동독 시절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동독의 민주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작은 기도 모임을 해 왔는데, 후에 이 일이 대규모 평화시위의 기폭제가 되어 1989년 독일통일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독특한 구조의 실내에는 종려나무잎으로 장식된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내 중심을 향해 걷다보면 ‘아우구스투스 광장’이 나온다. 광장을 중심으로 300년이 넘은 오페라 공연장 ‘오퍼 라이프치히’가 있고 마주 보이는 곳에는 ‘게반트 하우스’가 있다. 멘델스존이 종신 지휘자로 있었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명문으로 독특한 음색과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의 보금자리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높다랗게 솟아있는 신르네상스 양식의 ‘멘데 분수’가 보인다. 가운데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물을 뿜는 트리톤과 말들의 꿈틀거리는 근육이 곧바로 거리로 뛰쳐 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광장의 서쪽으로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푸른색 유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대학의 교회이자 강당의 일부로 2007년 재건축한 현대적 건물이다. 라이프치히대학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쾰른대학교에 이어 3번째로 오랜 명문으로 괴테, 바그너, 니체의 모교이며 노벨상 수상자도 9명이나 배출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도 이 학교 출신이다.
주말 오전이라 시내 도로에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자의 1/3은 여성인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성의 비율도 그만큼은 되어 보인다.
도시를 한바퀴 둘러보고 구 시청사 쪽으로 접어들어 1328년 뮌헨에서 문을 열었다는 바이에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바이에른 지방색이 물씬한 투박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다.
독일에 왔으니 매콤 짭쪼롬한 ‘커리 부어스트(소시지)’를 먹어봐야 한다면서 맥주와 함께 시킨 점심 메뉴는 눈물겹도록 푸짐하고 맛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네 끼를 부어스트를 연속해서 먹게 될 날도 있으리란 건. 독일 엄마표 밥심으로 속을 채우고 발길 닿는대로 걷는다.
날씨는 차지만 황사 없고 쨍한 오후가 되자 거리에는 사람들이 눈에 띠게 많아졌다. 아들과 둘이서 셀카를 찍으려는데 또 어디선가 중년부인이 나타나 사진을 찍어주고 슬며시 사라진다. 드물게 보이는 모자간 모습이라 그랬던가 보았다. 거리에 매달리듯 재밌게 설치된 동상 곁을 지나 크고 넓은 지붕 덮인 아케이드를 따라 걷는데 길가에 눈길 끄는 검은색 동상이 있다. 괴테와 메피스토펠레스가 함께 있는 동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붉은색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파우스트’의 배경이 되는 그 유명한 양조장 레스토랑 ‘아우어바흐 켈리’가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내부를 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쉽다.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수많은 손길로 발등이 반질반질해진 괴테의 발등만 만지고 돌아섰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쇼핑 아케이드들과 오래된 카페들을 기웃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5시에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예약해 둔 덕분에 느긋하게 도착한 공연장엔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모여든다. 정장을 갖춰입고 부부나 지인, 연인들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공연장으로 모여든다. 시니어층과 젊은 세대의 비중은 7대 3 정도. 압도적으로 시니어층이 많다. ‘돈 지오반니’는 1787년 모짜르트가 작곡한 오페라로 그가 작곡한 4대 오페라 중의 하나다. 스페인의 바람둥이 ‘돈 쥬앙’의 이야기를 극화한 오페라로 원작의 배경을 현대로 가져와 그가 벌이는 여성편력과 파렴치함, 그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줄거리다.
쌀쌀한 밤공기에 걸쳤던 외투를 로비에서 맡기고 공연장으로 들어선다. 불이 꺼지고 희미한 조명 아래 무대 위에는 3층짜리 건물로 실내가 다 비쳐 보이는 투명한 아파트가 서있다. ‘돈 지오반니’가 한 눈에 반한 여인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약혼자 행세를 하며, 그녀와 사랑을 나누려다 그녀의 아버지와 맞닥뜨리고 그를 살해하는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적나라하게 비친다. 이게 19금 영화가 아니라 오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오페라나 뮤지컬, 영화나 연극 할 것 없이 공연 모두가 동시대 사회상의 반영이라면 관객의 취향을 따를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 관객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예술도 결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
1막이 끝나고 30분간 휴식시간을 알리는 멘트가 들리자 관객들은 조용히 일어난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거나, 연회실로 꾸며진 작은 홀에서 칵테일과 음료 간단한 디저트를 나누며 담소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그들의 오래된 사교 문화인 듯하다. 그동안 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던 무대 아래 자리를 살펴보았다. 단원들이 연주하던 자리는 생각보다 비좁았다. 연주하던 악기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연주자들도 휴식을 취한다.
종이 울리고 2막이 시작되어 휴식시간까지 3시간에 걸친 공연은 끝이 났다. 돌아가는 길 멀리서 바라보는 ‘오페라 하우스’의 불빛만이 유난히 반짝인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유리창에 메뉴판이 붙은 베트남 음식점을 보는 순간 끌리듯 들어갔다. 뜨거운 국물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일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식당안은 북적였다. 베트남계 2~3세로 보이는 젊은친구 서너명이 서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독일에 살고 있는 베트남계 독일인일 것이다. 물을 것도 없이 쌀국수를 시켰다. 뜨거운 국물은 언제나 옳아서, 문을 열고 음식점을 나오는 순간 뺨에 와닿는 찬바람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드레스덴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