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독일④ 독일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함부르크(Hamburg)
[여행노트] 독일④ 독일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함부르크(Hamburg)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4.06.21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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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항구 도시
세계 각국 3천여 개의 회사와 96개국 영사관 자리
'디오라마'와 미술관 작품에 마음 빼앗겨
'슈파이어슈타트'(창고 지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창고 지구가 운하에 비치는 모습.
'슈파이어슈타트'(창고 지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창고 지구가 운하에 비치는 모습.

함부르크는 독일 제2의 도시이자 매력적인 항구도시로 독일인이 제일 살고 싶어 하는 곳이며 부자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가장 북쪽, 엘베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로 북해와 발트해를 통해 유럽 각지의 바닷길로 나가는 길목에 있다. 함부르크는 12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1세’로부터 무역특권과 사용료면제, 운항특권을 인정받으며 자유시(自由市)가 된다. 13세기에는 ‘한자동맹’(중세 북유럽지역 무역상인조합) 도시로 증권거래소와 은행이 설립되었으며 해상보험이 도입되었다. 이를 토대로 함부르크는 국제무역의 중심지이자 독일 최대 경제 중심지로서 상업과 무역, 문화 예술 교류의 메카가 된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3천여 개의 회사들이 수출입 거래를 위해 상주하고 있으며, 96개국의 영사관이 있다. 크루즈선이 드나들며, 훌륭한 박람회 개최지이고, 최대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미술관이 있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대도시 함부르크. 온화한 기후에 크고 작은 볼거리가 가득한 함부르크에는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보는 '란둥스브뤼켄.
바닷가에서 보는 '란둥스브뤼켄.

오후 늦게 도착한 함부르크에서 숙소에 짐을 놓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관문 ‘란둥스브뤼켄’(선착장)이다. 1839년 항구 모서리에 증기선 선착을 위해 지었으며 1907년에는 총 10개의 선착장이 있었고 도심을 연결하는 철도도 놓여졌다. 독일을 비롯해 동유럽 지역으로 가는 물류의 대부분이 함부르크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 동서독이 나뉘고 동유럽의 공산화로 물류가 반토막 나며 도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예전의 명성을 회복해 가는 지금은 관광지로, 여객선과 크루즈선이 입출항하는 터미널로, 매력과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해 질 무렵 육교 위로 올라가니 활기에 넘쳤을 거리는 잠잠하고 높이 솟은 교회의 첨탑들 사이로 마지막 빛을 받으며 ‘란둥스브뤼켄’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간다.

'앨프터널' 입구
'앨프터널' 입구

이제 발걸음을 ‘엘프터널’로 옮긴다. ‘구 엘베터널’이다.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로 1911년 개통했으며, 여객터미널 근처에서 ‘슈타인 베아리’ 지역을 연결한다. 건물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르면 24m의 지하로 천천히 내려간다. 어둑해진 낯선 도시에서 오래된 승강기를 타고 지하로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니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든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아늑한 터널이 나온다. 길이 426.5m의 해저터널로, 1911년 개통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술이었다. 폭이 좁은 관계로 지금은 보행자와 자전거 등이 통행하며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된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퇴근족으로 보이는 한 무더기의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와 터널로 들어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찾은 곳은 ‘하펜시티(Hafencity)’. 항구 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였으나 지금은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적인 건축물과 고층빌딩 등으로 대규모 상업 및 주거지구, 문화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쇠퇴한 옛 항만이 전통적인 문화와 현대적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도시로 거듭났다. ‘하펜시티’의 랜드마크 ‘앨프필하모니홀’을 찾아간다. 붉은 벽돌로 지은 옛 창고 건물 위에 초현대식 건물을 지어 올렸다.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과 호텔, 아파트, 카페 등이 있으며 건물 중앙에는 37m 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엘베강 강바람이 뺨을 때린다. 멀리 타워크레인과 유람선, 바지선, 크루즈선, 우뚝우뚝 솟은 멋진 빌딩들, 그 사이로 높다랗게 솟은 교회의 첨탑들, 다양한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층고가 높은 카페 '로스트리'. 방문객으로 가득하다.
층고가 높은 카페 '로스트리'. 방문객으로 가득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항만창고 시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파이어슈타트(창고 지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19세기 함부르크의 전성기에 지은 대규모 창고 건물 단지로, 붉은 벽돌을 이용해 지으며 한쪽은 물가, 한쪽은 도로에 닿도록 설계했다. 물류가 해로와 육로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실용적인 목적이었다. 당시에는 홍차, 커피, 향신료, 담배 등의 상품 보관에, 20세기 들어서는 카펫, 섬유, 전자제품 등의 상품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좁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건물의 그림자를 물 위에 드리우고 1.5km가량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천천히 거닐며 함부르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사진으로 남기기에도 매력적인 곳이다. 층고가 높은 오래된 건물엔 박물관, 전시장, 유명한 로스터리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고 함부르크의 명소 ‘미니어처 원더랜드’도 이 지역 끄트머리 건물에 있다.

'미니어처 워더랜드' 와 사무실 내부.
'미니어처 워더랜드' 와 사무실 내부.

세상의 모든 풍경을 만들어 놓은 ‘미니어처 원더랜드’를 보기 위해 함부르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오직 그곳을 보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온다. ‘디오라마’라 부르는 미니어처 세상을 보기 위해서. 호기심 많은 아이도 아니고 어른들이. 오전 9시 예약증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니 아직은 한산했다. 마주친 처음 장면은 바티칸시티. 눈에 익은 장면이 그대로 펼쳐진다. 성당의 기둥과 발코니의 교황과 신도들 표정까지도. 그야말로 디오라마의 세계였다. 테마별, 국가별, 랜드마크별로 구분되어 있고 디테일이 살아있어 현실로 느껴진다.

비행기가 격납고를 서서히 나와 이륙하는 활주로에는 차들이 지나가고 하늘 위엔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 굉음 사이로 사이렌이 울리고 순찰차가 지나가고. 그 모든 상황과 인물과 사물들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디테일이 섬세해 마법에 빠진 듯하다. 오감이 모두 반응하며 두뇌조차 실제라고 믿게 하는 놀라운 곳이다. 베니스, 로마, 라스베이거스, 모나코, 미국의 서부 시대, 경기장의 선수와 관중, 알프스의 협곡 열차, 북극해의 크루즈선. 분출하는 화산....

세계 각지의 도시와 장소가 시대와 상황에 맞게 재현되어 15분 간격으로 밤과 낮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디오라마’의 세계에 빠져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건 기본이다. 더 인상 깊은 건 유리창 넘어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모든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옆에서 핀셋으로 한 땀씩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간간이 어린이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관람객은 성인 남성이다.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소년들의 가슴속에 봉인된 채 살아온 꿈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01년 문을 연 이곳은 미니어처 덕후인 쌍둥이 형제 프레데릭 브라운과 게릿 브라운이 창업한 벤처기업으로 함부르크시와 은행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독일 관광청 자료에 의하면 현재 독일권역 제1위 관광명소다.

함부르크 시청사
함부르크 시청사

그림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부자의 도시 명성에 걸맞은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함부르크 미술관’(Kunsthalle)은 꼭 들러야 한다. 중앙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회화 작품을 수집한 미술관이다. 제대로 보기 위해선 한 달 살기라도 해야 하나 싶을 만큼 규모도 작품의 수준도 엄청나다. 북유럽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다. 방 하나를 한 화가의 작품으로 가득 채운 방들이 즐비하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연대별로 비교하며 작풍의 변화를 보는 재미도 대단하다.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보며 시간을 잊게 된다. 이번 여행 메이트 아들과 함께 입장해서 각자의 속도로 보고 3시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내가 눈에 띄지 않았는지 아들이 되돌아왔다. 아직 3번 방에서 작품에 빠져있는 내게 한마디 한다. 이 속도로 봐서는 엄마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는 볼 수 없을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나중에 43번 방에서 만나자고. 난 아직 3번방인데... 이럴 땐 마음 가는 대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렇게 마음을 ‘쿤스트할레’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미진한 채 헤어지는 건 사람만이 아니라는 때론 장소이기도 하고 마음에 닿는 예술 작품이기도 하며 도시 자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아름다운 구도심의 시청과 알트나 호수, 햄버거 원조 도시 뒷골목 푸드트럭에서 먹던 직화로 구운 햄버거의 맛, 야곱교회 예배시간에 울려 퍼지던 파이프오르간 소리, 로스터리 카페 매니저의 우아한 응대, 칠레하우스 안에 있던 북유럽풍 인테리어샵의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함부르크라는 도시와 함께 여행의 기억으로 묻혀갈 것이다.

*디오라마: 하나의 장면이나 풍경을 일정 공간 안에 입체적 구경거리로 구성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