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아들과 함께 떠난 난생처음 자유여행-독일①
[여행노트] 아들과 함께 떠난 난생처음 자유여행-독일①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4.05.28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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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에선 보이지 않던 세상의 틀
아들과 함께 길 떠나며 비로소 보여
바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일지도

                            

지난 음력설 성묘를 다녀오며, 핸들을 잡은 아들이 나란히 앉은 남편에게 4월에 회의가 있어 베를린에 간다고 말했다. 남편은 단박에 그 여행에 네 엄마랑 나도 동행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흔쾌히 “물론 되지요”라고 말했다.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물으니, 휴가를 쓰면 되노라 말했다. 순간 가슴이 뛰는 건 남편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패키지여행을 다니며 늘 자유롭게 다니고 싶던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문외한이란 점과 언어의 장벽이라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조건이 가로막았다. 아예 용기조차 나지 않던 자유여행 게다가 베를린이라니. 이따금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거의 독일의 서북쪽 끝단에 있던 베를린을 경유하는 코스는 잘 없지 않았던가.

다음날 서점 여행코너를 훑으며 리얼 독일 최신판을 사서 정독하고, 도서관에서는 빌려온 ‘베를린 기행'을 읽으며 미리 상상의 여행을 떠나본다. 받아놓은 날은 금세 다가온다는 말도 있건만 시간은 더욱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혹 무슨 변수가 있어 취소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함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소설 제목처럼 2주 후쯤 남편이 폭탄선언을 한다. 백내장 수술후 눈이 따가우며 피곤해지는 증상이 쉬이 없어지지 않으니, 여행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이 가라는 것.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와야 할 텐데 오히려 ‘둘이 떠나라’에 방점이 찍힌다. 혹 여행이 취소될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잘 알지. 아뿔싸! 그 순간 남편을 위로하는 말 한마디쯤은 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마 내친김에 남편으로부터의 자유조차도 원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두고두고 이 사건이 서운한 눈치다.

어쨌든 베를린 날씨를 검색하며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방을 쌌다. 드디어 출발. 짐을 챙겨 아들과 길을 나선다. 아들이 대학생 시절, 둘째 딸과 우리 부부(첫째 딸은 직장생활 중이었다)넷이서 했던 여행을 마지막으로 아들과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3남매가 미혼인 시절 함께 여행하거나, 그 후 그들 모두 가정을 이루고 대식구가 함께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낸 적은 있지만. 이제 내가 엄마였던 시절은 끝나고 세상의 판은 바뀌었다. 모든 건 아들이 리드하며 나를 세상 속으로 데려간다. 가까이 사는 아들은 바쁜 와중에도 가끔씩 집에 들르면 휴대폰이나 노트북, 디지털에 관한 소소한 일들을 해결해 줘서 그나마 ‘시민 생활’의 품위를 간신히 유지하고 살았는데. 세상 바깥은 통째로 디지털의 세상이니 내가 가진 지난 시절의 지식은 철 지난 잡지 같다.

드레스덴 중앙역. 강지윤 기자
드레스덴 중앙역. 강지윤 기자

휴대폰 하나만 손에 쥐면 세상의 모든 문이 열리고 세상으로 가는 지도가 펼쳐지며 클릭 한 번으로 필요한 날짜와 횟수에 맞춰 교통편의 예약이 가능하고 사람은 그 모든 시스템을 도와주는 보조의 역할이다. 물론 그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게 인간이긴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선 보이지 않던 커다란 세상의 틀이 아들과 함께 길 떠나며 비로소 확연히 보인다. 이게 바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 있는 좌표가 지구촌 어디쯤인지를 가늠케 하는. 그렇지만 어쩌랴 그래도 남아있는 내 생애 마지막 구간을 이렇게 디지털맹이라는 해소 불가능해 보이는 소외지역에서라도 살아가야지.

베를린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새벽 6시 반 부산에서 내항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다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스키폴 공항에 도착. 그곳에서 환승해 베를린에 도착하니 현지시각 밤 9시였다. 수속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는 차고 시렸다. 4월 말인데도 여전히 겨울 날씨였다. 아! 여기가 베를린.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도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회자하던 도시. 때론 비극적인 장소로 독일제국의 수도로 그리고 요즘 들어 가장 핫하다는 유럽의 수도 중 하나인 도시. 공항 인근에 숙소를 예약해 둔 덕분에 캐리어를 끌고 5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새벽에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데 거의 하루가 걸렸구나. 짐을 풀고 자리에 눕는다. 두 개의 대륙을 가로질러 가서 또다시 거꾸로 1시간 20분을 날아 온 곳.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두었던 도시로의 입성이었다.

베를린 장벽의 그라피티. 강지윤 기자
베를린 장벽의 그라피티. 강지윤 기자

다음 날 새벽 4시가 되니 저절로 눈이 떠진다. 눈을 떠보니 아들은 열심히 기차표를 예약하고 있다. 같은 지구별에서 나와는 다른 우주를 살고 있는 그들 세대가 경이롭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깨어난다. 6시부터 문을 여는 조식은 근사했다. 입안에서 와작 소리 내며 부서지는 갓 구워낸 크루아상부터 구수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잡곡빵. 각기 조금씩 향기와 빛깔이 다른 6종류의 짙은 풍미가 도는 천연 꿀. 고기 육수를 우려낸 맑은 콘소메 수프를 주제로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야채와 소스.... 그야말로 미각의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느낌이었다. 작심하고 독일 음식은 이렇다고 보여주는 것처럼 근사하고 정성스러운 첫 끼니였다.

여정의 시작은 라이프치히. 바흐와 바그너 멘델스존 슈만이 활동한 ‘음악의 도시’이자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동독지역이었으며 괴테가 쓴 ‘파우스트’의 배경 도시이기도 하다. 다시 짐을 싸서 라이프치히행 열차를 타기 위해 ‘베를린 공항역’으로 나간다. 거리에는 겨울 코트에 목도리까지 단단히 챙겨입은 출근객들이 바쁜 걸음으로 오간다. 9시 기차를 타기 위해 공항역으로 갔으나 들어오는 선로를 잘못 알고는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그 드넓은 공항역사에 온통 해독 불가능해 보이는 문자로 쓰인 안내문에 수많은 지역으로 나눠진 실핏줄 같은 선로를 초행의 여행자가 단박에 바로 알아맞히기가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이겠는가. 여행의 시작부터 기차를 놓쳤다는 사실에 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강지윤 기자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강지윤 기자

방금 떠난 열차를 보내고 ‘베를린 중앙역’으로 이동한다. 다음 열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주위를 둘러보노라니 한눈에도 여행객임을 알아본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베를린역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지상 3층에서 지하 4층까지 거대한 역사(驛舍)는 각층마다 유럽 각지로 떠나는 수많은 열차가 드나들고 선로를 따라 복합 쇼핑몰이 나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속을 드러내 보이는 거대한 하나의 도시다. 이번에는 무사히 라이프치히행 열차를 탔다. 객차에는 좌석만큼이나 빈 공간이 많았다. 바닥에는 거의 반쯤의 공간에 좌석 대신 자전거와 휠체어가 그려져 있다. 그렇구나! 다양한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구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던 헬멧에 간편한 복장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던 사람들의 모습도 열차 이용이 편리했기 때문이었구나. 10시 40분 라이프치히행 열차를 탔다. 창밖으로 나지막한 교외의 집들이 노란 유채밭과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휙휙 지나간다. 온통 그라피티가 그려진 건물들은 베를린 장벽에 그려진 1.3km가 넘는 그림들의 예고편일지도 모르겠다. 쌀쌀하지만 봄 정취 피어나는 들판을 기차는 서남쪽을 향해 달린다. 독일의 ICE는 우리나라의 KTX보다 한 템포 낮추어 달리는 듯 창밖의 풍경이 여유 있게 지나간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스페인에서 온 듯한 일가족도 연신 창밖을 내다보고 웃으며 속사포 같은 대화를 쏟아낸다. 금세 1시간 10분이 지나가고 ‘라이프치히’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이 깜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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