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화북 견훤산성을 가다
상주 화북 견훤산성을 가다
  • 김항진 기자
  • 승인 2019.04.0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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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화북면 소재 견훤 산성]
상주시 화북면에 있는 견훤산성

<삼국사기>에 따르면 견훤은 상주(尙州) 가은현(지금의 문경시 가은읍) 사람으로 867년에 태어났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원래 농사로 먹고 살다가 광계(光啓) 연간에 집안을 일으켜 장군을 일컬었다고 하며 견훤 자신의 성도 원래 이씨(李氏)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로 고쳤다고 한다.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진흥대왕(眞興大王)의 왕비인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숭부인(白 夫人)이다. 셋째 아들은 구륜공(仇輪公)이고, 그 아들은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이고, 선품의 아들은 각간(角干) 작진(酌珍)이다. 작진의 아내 왕교파리(王咬巴里)가 각간 원선(元善)을 낳았으니, 이 사람이 아자개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고,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이다. 5남 1녀를 두었는데, 그 장자가 바로 상보(尙父) 훤(萱)이고, 둘째 아들은 장군 능애(能哀), 셋째 아들은 장군 용개(龍蓋), 넷째 아들은 보개(寶蓋), 다섯째 아들은 장군 소개(小蓋)이며, 딸은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

”李磾家記云 眞興大王妃思刀 諡曰白 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 波珍干善品之子角干酌珍 妻王咬巴里 生角干元善 是爲阿慈介也 慈之第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尙父萱 二子將軍能哀 三子將軍龍蓋 四子寶蓋 五子將軍小蓋 一女大主刀金"

이같이 <삼국유사>는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에 대해 <이제가기>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계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아자개가 거병했다는 광계 연간은 서기로 885년에서 887년에 해당하며 889년에 '원종 애노의 난'이 일어나는 등 신라 각지에서 농민 반란이 속출하던 시기와 겹치며 아자개는 신라말기의 혼란을 틈타 일어난 지배계층의 성씨로 호족의 일원(6촌성, 경주 이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견훤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견훤이 아직 아기였을 때, 아버지가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어머니가 식사를 갖다 주려고 어린 견훤을 나무 아래 잠시 두었는데 그 사이 범이 나타나 견훤에게 젖을 먹이곤 했다는 설화적인 이야기만을 수록하고 있다.

견훤이 태어난 상주 가은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갈전 2리 아차(아채) 마을로, 문경에는 오늘날에도 견훤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남아 있다.

<제왕운기> (帝王韻紀)는 "새가 와서 덮어주고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고 읊고 있는데, 실제로 견훤이 태어났을 때 온갖 날짐승이 날아와 몇 년에 걸쳐 아이를 보호해주어서 마을사람들은 그 아이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는 전설도 전한다.

 

견훤의 출생 이야기

<삼국유사>의 <후백제>견훤 조에 다음과 같은 견훤의 출생담을 적고 있다. 전라도 광주(光州) 북촌(北村)의 어느 부호에게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자주색 옷을 입은 남자가 밤만 되면 딸의 방에 와서 동침하고 새벽이 되면 사라졌다.

딸이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자 아버지는 딸에게 밤에 그 남자가 다시 오거든 남자의 옷에 몰래 실을 꿰어 둔 바늘을 꽂아두라고 당부했고,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날이 밝자 아버지는 딸과 함께 실을 따라가 보았는데, 북쪽 담장 밑에 커다란 지렁이의 허리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밤마다 딸을 찾아온 남자의 정체는 바로 지렁이였던 것이다.

이후 딸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견훤이었다.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 이름하고 900년 후백제를 건국하여 완산군(完山郡) 즉 지금의 전주(全州)에 도읍을 정했다. 이때가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6년, 당(唐)은 소종(昭宗) 경복(景福) 1년이었다.

이러한 류 의 설화는 야래자 (夜來者) 형 설화로 분류되며,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에까지 흔적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의 함경북도 회령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누르하치아버지의 출생설화를 비롯해 일본 <고사기>의 오호타나네코(意富多多泥古), <일본서기>의 오오모노누시 신(大物主神) 신화, 서구의 에로스 프시케 신화가 대표적인 야래자형 설화로 꼽힌다. 가은읍 아차마을에는 견훤이 지렁이의 자식으로 묘사한 <삼국유사>의 설화와 관련해서 금하굴(金霞窟)이라는 이름의 동굴이 남아 있다.

 

상주의 견훤산성 이야기

경북 상주시 장암리의 북쪽에 있는 장바위산 정상부를 에워 싼 테뫼식 산성으로, 견훤이 쌓았다해서 견훤산성이라 불린다. 이 산성 뿐만 아니라 상주지역의 옛 성들이 견훤과 관계지어지는 것은 『삼국사기』에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 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장군으로 있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침공하다가 효공왕 4년(900)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이 산성은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산세와 지형을 따라 암벽은 암벽대로 이용하고, 성벽을 쌓을 필요가 있는 곳에만 성을 쌓았기 때문에 천연절벽과 성벽이 조화를 이룬다. 성의 4모서리에는 굽이지게 곡성을 쌓았는데, 동북쪽과 동남쪽으로 난 2곳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상주쪽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벽 둘레는 650m이고, 높이는 7∼15m이며, 너비는 4∼7m이다.이 산성은 보은의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쌓은 방법이 비슷한데, 정교하게 쌓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삼국시대 산성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