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명재를 찾아서
모명재를 찾아서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2.06.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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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2호선 담티역에 내려서 남부정류장 쪽으로 500여를 내려오면 두사충을 기리는 모명재(慕明齋)가 있다.

모명재. 안영선 기자

현재의 모명재는 1912년 경산객사가 헐리면서 그 재목을 사 와서 두사충의 후손들이 묘소 앞에 지은 것인데, 1966년 2월 건물이 낡아서 중수한 것이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에 남향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 기와집으로 두 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툇마루가 있다.

모명재라고 한 것은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고 대문에 달려있는 만동문(萬東門)은 '백천유수필지동(百川流水必之東)' 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이것 또한 근본을 잊지마라는 뜻이다.

모명재 기둥에는 이순신 장군이 지어 보낸 한시가 새겨져 있다.

北居同甘苦(북거동감고)-북으로 가기까지는 고락을 같이 했고

東來共死生(동래공사생)-동으로 오면 죽고 사는 것을 함께하며

城南他夜月(성남타야월)-성 남쪽 타향의 밝은 달밤 아래

今日一盃情(금일일배정)- 오늘 한잔 술로 정을 나누네

이 시를 읽으면 이순신 장군과 두사충의 우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 모명재 앞에 이순신 장군과 두사충이 일배하면서 정을 나누는 모습이 모형으로 만들어 져 있으며, 현재 충청남도 아산의 금성산 기슭의 이순신 장군의 묘자리를 두사충이 봐 주기도 했고, 후에 이순신의 7대손 삼도 통제사 이인수가 신도비를 남기면서 세대를 이어 왔다. 두사충의 묘소는 모명재 뒷산 형제봉 기슭에 있다.

기자가 답사를 가는날 대구문화제지킴이회 월 1팀회원 12명이(팀장 류병천) 문화재 보호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툇마루를 닦고 잡초를 뽑아 더욱 깨끗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화재지킴이 회원들의 활동모습. 안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