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Genocide) CVID
제노사이드(Genocide) CVID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2.04.11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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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의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의 'cide' 합성어
- UN, '특정 국민과 민족, 인종, 종교, 정치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절멸시킬 목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으로 정의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 부차에서 민간인 수백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을 제노사이드라고 천명하면서 국제사회에 대러시아 제재와 규탄을 호소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행위를 질책하면서도 제노사이드에 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급기야 유엔은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서 러시아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축출했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genos'와 살인을 뜻하는'cide'로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유대계 폴란드인 국제변호사 라파엘 렘킨(Rafael Lemkin, 1900~1959)이 1944년에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유엔에 의해서 국제법에 의한 '비인도적 폭력 범죄'의 용어로 채택됐다.

1948년 12월 유엔 총회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CPPCG)'을 채택하면서 '특정 국민과 민족, 인종, 종교, 정치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절멸시킬 목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제노사이드로 정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독일과 폴란드 등지의 아우슈비츠와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독일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제노사이드는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불린다.

제노사이드의 최대 피해자인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랍인을 살상하고 마을을 초토화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과 응징의 악순환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르완다 내전 중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쟁은 100여 일 동안 100만여 명이 희생되는 최단기간 동안 최대 규모로 발생한 제노사이드였다. 캄보디아 의 크메르 루즈 정권은 지식인과 교사 등 수백만 명을 학살했으며,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이슬람계의 보스니아인 수십만 명이 세르비아 군대에 의해 학살됐다. 가장 최근에는 미얀마 군부에 의해 이슬람교를 믿는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살상되기도 했다.

특히 소련과 러시아에 의한 제노사이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는 소련의 스탈린 정권에 의한 농작물의 강제 수탈로 일어난 대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2차대전 중 소련군은 포로로 잡은 폴란드 장교와 지식인 수천 명을 학살하여 벨라루스와 러시아 접경지인 카틴의 숲에 매장했으며, 러시아는 체첸과 조지아 침공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여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번 전쟁에서도 부차 이외의 여러 점령지역에서도 민간인 살상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노사이드는 주로 독재 정권에 의한 특정 대상의 타자화(他者化)와 비인격화(非人格化)로 야기되어 천재지변이나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증폭된다. 그러나 해당 정권이 몰락하지 않는 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최근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에 관해 완전하게 검증이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원칙을 견지해 나갈 것을 한국의 신임 윤석열 정부와 코드를 맞춘 바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인류의 생존과 공영을 위협하는 제노사이드를 CVID 원칙으로 지구상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전략 개발과 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