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야기] 양말골목을 찾아서
[골목이야기] 양말골목을 찾아서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1.07.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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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동 양말 골목을 찾아서

‘1,000개의 골목에 1,000개의 이야기’가 있다. 골목이 많고 그만큼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말이다.

한 때,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허나 지금은 그 모습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동네골목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아하’ 할 정도의 명물골목도 많았다.

진 골목, 수제화 골목, 약전 골목, 자동차부속 골목, 양말 골목, 인쇄 골목, 오토바이 골목, 공구 골목, 닭똥집 골목, 가방 골목, 야시 골목, 늑대 골목, 무침회 골목, 막창 골목, 카페 골목, 화훼 골목 등등. 하지만 이 골목들 또한 예전만 같지 못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골목들도 변하고 있다. 새로운 골목 상권이 형성되는가 하면 약화 및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상권도 있다. 대신동 양말 골목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대신동 양말 골목이라는 입간판    우남희 기자
대신 양말 골목이라는 입간판 우남희 기자

이곳 양말 골목은 2~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그 명성을 날렸다. 양말 골목의 시작은 40여 년 전, 남산동의 ‘원일상회’다. 공장에서 나오는 정치품을 가져와 손질해서 장사를 시작했다. 정치품이란 상품과 차품의 중간 제품으로 상품(上品)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다. 상품(商品)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주문이 쏟아졌고, 너도나도 남산동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점포가 턱없이 부족해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대신동까지 뻗게 되어 가게 수가 80여 개 되면서 대신동과 남산동이 양날골목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노호삼 대신동 양말 골목 상인회장(67. 천일상회 대표)은 “공장 직원으로 있다가 양말가게를 냈습니다. 요즘에는 영업에 전략이 필요하지만 그 당시에는 경험이 없어도 팔기만 하면 되니 재미있었어요. 점포 3칸을 사용하고 각각 1명씩의 점원을 둘 정도였는데 지금은 3칸을 저 혼자 운영하는데도 한가합니다. 남아 있는 가게가 남산동에 4곳, 대신동에 13곳 정도니 남산동과 대신동의 양말 명물골목도 옛말이 되었습니다”고 했다.

노호삼 천일상회 대표가 타 지역으로 보낼 양말 화물에 주소를 적고 있다   우남희 기자
노호삼 천일상회 대표가 안동으로 보낼 양말 화물에 주소를 적고 있다 우남희 기자

대진상회 박강자(63)씨는 “잘 될 때는 전국으로 보낼 화물이 하루에 7~8개였습니다. 한 번은 여수로 갈 것이 여천으로 간 적이 있었지요. 택배조회로 찾긴 찾았지만 돌아오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다시 물건을 포장해 보내는 일도 있었고, 외상으로 물건을 줬는데 돌아가셔서 물건 값을 떼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떼인 돈이 아마 집 한 채 값은 될 겁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박강자 대진상회 대표가 경산에서 온 손님에게 양말을 팔고 있다  우남희 기자
박강자 대진상회 대표가 경산에서 온 손님에게 양말을 권하고 있다 우남희 기자

박씨는 '처음에는 양말을 보온 기능으로 신었지만 지금은 패션 기능까지 한다'며 상자 안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양말을 꺼냈다. 꽃무늬가 있는 망사 양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몰랐을 양말들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도매상이라 하더라도 일반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의 업그레이드 된 디스플레이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자구책이 될 뿐 아니라 명물골목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