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한 바퀴, 도산서원(1)
안동 한 바퀴, 도산서원(1)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4.06.02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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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신문화의 성지 도산서원,
여행객들 발길 이어져
도산서원 전경. 박미정 기자
도산서원 전경. 박미정 기자

 

도산서원(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은 지난 2019년 소수서원 등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도산서당은 퇴계 이황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도산서원 입구. 박미정 기자
도산서원 입구. 박미정 기자

 

퇴계 이황은 1501년에 태어나 1570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시기는 조선 성리학의 학문과 문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져 나가던 때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조선은 전과 후로 나뉜다. 전의 조선은 고려 이후의 조선이고, 후의 조선은 조선의 조선이다. 전의 조선은 불교문화와 성리학 문화가 간섭된 조선이고, 후의 조선은 성리학 문화로서의 조선이다. 

서원으로 가는 숲길이 아름답다. 박미정 기자
서원으로 가는 숲길이 아름답다. 박미정 기자

 

도산서당은 전 조선과 후 조선을 나누어 놓을 변화의 역량을 만들어 나간 곳이다. 이곳은 서당 영역과 서원 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아래쪽은 서당 영역이다. 만년의 이황은 노구를 이끌고 편안히 드나들 수 있는 곳이면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공간을 찾았다. 그런 곳에 머물러 공부하면서 교육할 수 있는 집을 짓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바로 도산 남쪽 기슭이다. 

안동호에 떠 있는 시사단. 박미정 기자
안동호에 떠 있는 시사단. 박미정 기자

 

퇴계 이황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했다. 백운동서원의 운영과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했으며,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다.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오랜세월을 견뎌온 고목이 눈길을 끈다. 박미정 기자
오랜세월 풍파를 견뎌온 고목이 눈길을 끈다. 박미정 기자

 

또한 선조 8년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져 있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적지 324,945㎡, 건물 1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는 날이 장날, 대금 연주가 한창이다. 박미정 기자
가는 날이 장날, 대금 연주가 한창이다. 박미정 기자

 

6월의 도산서원은 푸름으로 가득하다. 주변에는 그 모양이 독특한 고목들이 발길을 잡는다. 긴 세월 비바람을 견뎌내고 계절을 풍류했을 고목을 바라보니 거목 퇴계 선생을 만난 듯 하다. 

임 대금 연주자와 함께. 박미정 기자
임성국  대금 연주자와 함께. 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