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극장 이야기] 가설극장과 변사
[영화 이야기, 극장 이야기] 가설극장과 변사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3.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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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TV도 없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 명절 끝자락 읍내 장터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조용하던 읍내가 들썩였다. 광목천으로 두른 맨바닥 극장이 장터에 들어서고 스피커로 유행가를 틀어댔다. 스피커에서 쉰 소리가 날 때까지 진종일을 틀어대도 누구 하나 소음이라고 항변하지 않는다. 소음이 어쩌고 인권이 저쩌고 할 소리도 할 줄 모르는 착한 백성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면민 여러분 여기는 합동영화사 선전반입니다.” 면면촌촌을 돌며 홍보를 나간다. 극장이 차려지면 다음 장날까지 닷새를 열었다. 홍보 트럭에 포스터를 붙이고 도로포장도 안된 신작로에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고 달려가면 동네 꼬맹이들이 뒤따랐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가솔린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트럼펫 소리가 구성지게 울리고 하모니카를 구성지게 불며 짊어진 북을 쿵쿵 울리면 가슴이 벌렁거렸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오실 때 꼭 손수건을 준비하시라~.‘검사와 여선생’을 모시고 오늘 밤 찾아뵙겠습니다.”

아코디언의 아련한 멜로디가 구성지게 울리면 상영 시간을 기다리느라 안달을 했다. 소리 없는 무성영화였지만 관객들은 변사가 힘차게 표현하는 “그랬었던 거디었~다” 식의 어투에 울고 웃으며 시름을 달랬다. 변사가 영화 분위기를 좌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해서 배우보다 인기가 더 많았다. 가설극장을 운영하는 식솔들은 천막에서 기거하지만 변사는 읍내 여관을 잡아주어 예우했다. 상영 기간 내 변사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여관 주위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변사 손이라도 한 번 잡는 날에는 열흘을 손을 씻지 않았다 한다.

대구 ‘시공관’에서는 외화 서부영화를 많이 상영했다. 영상이 닳은 필름 탓에 심심하면 끊겼다가 이어지곤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나기처럼 하얀 줄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화면 때문에 비가 내리듯 했다. 영사기가 돌아가다가 필름이 툭 끊기면 객석에서 휘파람을 불며 아우성을 쳤다. 이때 변사가 한마디 한다. “서부 사나이는 똥 안 누고 사냐 똥 누러 갔다.” 그러다가 또 필름이 끊기면 관중석에서 “돈 내놔라. 갈란다” 아우성을 쳤다. 변사는 “갈라믄 가거라 재미는 지금부터다” 하며 능청을 떨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변사의 권위도 있고 일종의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였다. 마지막 회 상영할 때쯤 변사도 지치고 졸음으로 눈꺼풀이 닫힐 무렵 “이때 서부 사나이 하나가 나타났던 거디었다” 하고 보니 두 사람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엉겁결에 “나타난 두 사나이는 케리와 쿠퍼였다”(개리 쿠퍼는 배우 한 사람)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 당시로는 호사를 누리는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