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현의 문학산책] 말 꼬리잡기
[방종현의 문학산책] 말 꼬리잡기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2.18 17: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言) 꼬리 잡기 (끝말 이어가기)
말(言) 꼬리 잡기 (끝말 이어가기)

컴퓨터는 세상과 통하는 나의 창구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의 창을 열고 이메일과 쪽지를 보는 일이다. 그다음은 인터넷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고 관심 있는 신문사의 사설을 읽고 가입한 카페에 출석 인사도 남기고 회원들이 올린 글에 댓글을 달기도 한다.

요즘에는 내가 가입한 카페의 꼬리말 잇기 코너에 푹 빠져있다. 말(言) 달리기 하는 곳인데 다른 이가 던진 끝말을 잡고 말머리로 이어가기이다. 말 이어가기는 초등학교 때 짧은 글 짓기를 연상하면 된다. 어부바-바이오-오렌지-지필묵-묵사발 이런 식이다. 상대방이 던져둔 끝말을 붙잡고 계속 이어가는 이를테면 말의 유희인 셈인데 회원들은 실명 대신 닉네임으로 올리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어선지 기상천외한 말들이 오간다. 닉네임 또한 의성어나 형용사도 사용할 수 있어 물레방아. 굼뜬 소. 군자 향. 동그라미. 바람의 언덕. 수선화. 혜원. 호수 같은 재미난 이름들이 많다.

한 회원이 퀴즈를 냈다. ‘달 밝은 밤에 대봉 군자 향(출제한 회원의 닉네임)이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 말고 갑자기 캄캄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선 모습을 여섯 글자로 묘사하시오!’라 운을 떼었다. 달 밝은 밤이라 했다가 갑자기 컴컴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지만 부상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자 반응이 좋았다. 제일 먼저 어떤 이가 ‘서울대 인문계 2021학년 수시 논술 문제 같다’ 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한 회원은 정답이라 하면서 ‘달 어디로 갔노’하더니 또 다른 이는 ‘달이 밝디 마는’이라고 하고, 뒤이어 ‘와이리 어둡노’, ‘멍청한 군자 향’, ‘상품에 눈멀어’라는 둥 다양한 답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약간의 사투리나 줄인 말도 통용되기도 하는 곳이어서 답이 다양하고 재미가 있다. 정답을 맞히려 애는 쓰는데 출제자가 요구하는 답은 없고, 보다 못한 한 회원은 ‘에고 측은하다’라고 여섯 글자 댓글로 약을 올리기도 한다. 댓글이 뜰 때마다 출제자는 정답이 아니라고 토를 달고 분위기를 달군다. 보다 못해 어떤 이가 이 문제는 스님이 화두(話頭)로 잡고 몇십 년을 용맹정진해야 풀릴 문제라 푸념을 하자 출제자는 회원들의 수준에 맞춰 출제를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게 출제하여 미안하다고 회원들의 지적 수준을 비하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도 누구 하나 화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곳이 이 코너이다.

드디어 한 회원의 답 "쓸데없는 사람" 이 문제의 정답이라며 며칠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말달리기는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답을 맞힌 이의 닉네임이 '바람의 언덕'인데 출제자는 굳이 '바람난 언덕'으로 발표한다. 그것도 말달리기 코너의 재미이기도 하다. 출제자가 의도하는 답이어야 하니까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익명성이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말의 유희를 느껴보고자 시작한 끝말잇기이니 다소 황당한 정답에도 그저 웃고 넘어가는 여유일 것이다. 끝말잇기가 시시콜콜한 말 따먹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고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고 순발력을 기르는 데 일조한다고 보면 순기능도 있다고 본다.

날마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세상, 인터넷!

오늘도 나는 새로운 세상과 통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