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현의 문학산책] 지공선사
[방종현의 문학산책] 지공선사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2.03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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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무료 탑승

              지공 선사

                                       방종현

지공 선사를 아시는지요?

불교에서 추앙하는 원효 대사. 사명 대사가 있고 초의 선사도 계시지요. 내가 말하려는 지공 선사는 그런 존경받는 고승대덕(高僧大德)이 아닙니다. 평범하게 한생을 살아가는 초로의 한 남자가 겪는 삶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지공 선사가 누구인지 밝히기 전에 회식할 때 술잔을 들고 외치는 주연(酒宴)의 건배사를 한 번 살펴봅니다.

단합을 위한 구호로 외치는 건배사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5․16 직후에는 ‘재건합시다!’가 많이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언뜻 들어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아주 다양한 구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청바지! 변사또! 개나발! 등 애매모호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행시 4행시 짓듯 앞머리 글자만 따서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청바지란? (청) 청춘은 (바) 바로 지(지금)이고 변사또란 (변)함 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라는 뜻이랍니다. 또 개나발은 (개)인과 (나)라의 (발) 전을 위해!!이고. 모든 것을 뭉뚱그려 너도 위하고 나도 위하고 모두를 위해 (위하여!)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수성구 복지 관련 단체에서 ‘희망수성’ 복지 한 마당이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주최 측에서 중고등학생 대표 대학생 대표 일반시민 대표 노인대표 등 4개 팀을 초청해서 복지에 대해 희망하는 바를 제안 하는 10분 스피치를 마련했습니다. 내가 실버 대표로 참가하여 노익장의 지혜를 활용하자는 취지로 말히고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서 내려가는 도중이였습니다. 사회자(T방송국 아나운서)가 잠시만 올라오라해서 어리둥절 연단으로 올라갔지요. 오늘 말씀하신 분이 문인이시니(프로필 보고) 이왕 오신김에 4행시를 한번 하자고 예정에도 없는 그야말로 곽중에 즉흥 이벤트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음... 뭘로 할까요?”하며 사회자가 뒤를 한번 휙 돌아보더니

“아 저거 어때요?”하며 이날 대회의 슬로건인 ‘희망수성’을 가리킵니다. 이 일을 어찌할꼬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1천여 명의 관중은 저 노인장 어떻게 받아넘길까 하는 표정이고 나는 순간 희망 수성의 ‘망’ 자를 보는 순간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랬다고 마음을 다잡는데 사회자가 대뜸

“희!” 합디다.

나는 “희망을 가지세요” 하고 냅다 소리 질렀습니다. 사회자가 짬도 안 주고 연달아

“망!” 합니다.

나도 바로 “망설이지 말고요”하고 받았습니다.

어? 사회자가 요것 봐라 하는 표정입니다. 또

“수” 합니다. 요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낯빛입니다. 내가 바로

“수성구로 오세요”하자 청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 좋습니다”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성”합니다. 나도 질세라

“성공합니다”하고 소리쳤더니 휘파람 부는 사람 손뼉 치는 사람 청중이 난리도 아닙니다. 나도 무사히 잘 받아넘긴 안도감으로 등줄기에 땀이 주루륵 흘렀습니다.

자, 이제 지공 선사가 누구인지 소개하겠습니다.

지공 선사는 (지)하철표 (공)짜로 (선)선물 받은 (사)사람을 점잖게 부르는 말입니다. 만 65세가 넘으면 지공 선사의 대우를 받습니다. 대사(大師)나 선사(禪師)에는 스승 사(師)를 붙이는데 지공 선사에게 스승이란 말은 좀 과하겠고, 그냥 착하게 살아왔으니 착할 선(善)字 에 선비 사(士) 字 정도는 붙여주면 좋겠다고 내 나름 의미를 넣어 지공 선사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이를 먹어 능력은 떨어지는데 지하철 표를 공짜로 주니 고마운 일입니다. 국가발전에 청춘을 다 바쳐 노력한 결과 이만큼이라도 나라가 살만해졌으니 수고했다고 예우도 해주는 셈이니 복지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지공 선사가 되면 이제 인생길도 황혼 지는 마루턱에 올랐다가 서서히 하산하는 형국입니다. 죽음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고 있지만 내색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젠 눈도 멀고 귀도 멀어지고 근력도 떨어지니 모든 게 자신이 없어집니다.

어느 날 우리 집 할망구가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혼자서 뽑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할망구라고 마누라를 비하하는 말은 아닙니다. 할은 존경의 뜻이고요 바랄 망(望) 字에 아홉 九字로 99수 넘어 살 것을 염원하는 望九(망구)라는 뜻도 있으니까요. 나도 돋보기를 쓰고 찾아보았으나 끝이 보일 듯 말 듯 하나 도무지 뽑히지가 않습니다. 아들, 딸 모두 제각각 둥지를 틀어 떠난 큰 집에 두 양주(兩主)만 동그마니 남아있으니 눈 밝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며칠을 씨름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막내딸에게 부탁해보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일요일까지 기다렸다가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딸이 뾰족한 바늘 끝으로 몇 번 끄적거리더니 금방 뽑아내는 게 아닙니까? 젊음이 좋고, 눈이 밝아 좋습니다. 귀는 멀더라도 골치 아픈 세상사 안 들으면 되겠지만 눈이라도 밝아야 우리 할망구 가시라도 뽑아줄 텐데 지공 선사를 넘어 살아보니 작년 다르고 금년 다릅니다만 순리대로 사는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 望九랑 지공 선사되어 지하절을 타고 나들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