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현기자의 문학산책] 견공(犬公)
[방종현기자의 문학산책] 견공(犬公)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2.07 07:0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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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과 매우 친합니다. 어떤 가정은 나를 반려견(伴侶犬)이라 해서 가족으로 대해주기도 한답니다. 인간은 이해관계에 따라 친하다가 멀어지기도 하지만 우리 견공은 맹목적으로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우리 견공들은 영리할 뿐 아니라 겸양도 할 줄 압니다.

우리 선조에게서 들은 말입니다만, 우리 조상 중에 영특한 이가 있었습니다. 조물주가 만물을 만들 때 우리 견공에게 앞다리 두 개에다 뒷다리를 하나만 주셨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걸음걸이는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요? 하루는 우리 선조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다리가 네 개인 가마솥을 발견했답니다. 한 곳에 꼼짝도 않고 꾹 박혀있는 가마솥이 다리를 네 개를 가진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가 봅니다.

우리 견공은 닭을 서리해가는 여우도 쫓아야 하고 주인의 안위를 위해 도둑도 지켜야 하고 할 일이 좀 많습니까? 그런데도 다리가 세 개인데 비해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자리에 서 있는 가마솥은 다리가 네 개라 화가 났겠지요. 그래서 용감한 우리 선조가 조물주를 찾아가서 따졌답니다. 논리 정연한 우리 선조의 얘기를 들으신 조물주가 듣고 보니 타당한지라 가마솥 다리 하나를 뚝 떼서 우리 선조에게 주었답니다. 그때부터 솥발은 세 개가 되었고 우리 다리는 네 개가 되었습니다.

네발로 걸으니 얼마나 고맙던지 조물주께서 주신 다리가 혹여 오줌에 더럽힐까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우리 선조께서 앞으로 소변을 볼 때 뒷다리 하나를 들고 보라고 유언으로 남겨서 지금껏 우리는 전통으로 해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염치를 아는 우리 견공이거늘 인간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상소리를 하는데도 유감이 많습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 하면 될 터인데 왜 ‘개고생’이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고생시킨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걸핏하면 개새끼라 합니다. 요새는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배웠는지 초등학생들도 그렇게 불러댑니다. 아니 내 새끼들이 얼마나 예쁜데 커가는 내 새끼들에게 화가 미칠까 걱정스럽습니다. 망나니면 그냥 망나니라 하면 될 터인데 왜 또 ‘개망나니’라 하느냐 말입니다. 아니 멀쩡한 살구를 두고 개살구는 또 뭡니까?

그뿐이면 내가 말을 안 해요. 무질서에 난장판을 일러 개판 5분 전이라 하는데, 우리 견공들은 듣기가 정말 거북합니다. 그 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쓰는 말인데 우리 견공을 빗대니 내가 억울해 죽겠어요. 내 말 한번 들어보세요. 개판 5분 전의 개판은 '열 개(開)'에 '널조각 판(板)'으로 나무 널로 된 솥뚜껑을 연다는 뜻입니다. 군대 갔다 오신 분이라면 다 알 겁니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잘하라는 경고의 뜻으로 점호 5분 전! 또는 식사시간 5분 전! 이렇게 외치지 않습니까? 6.25 사변 때 오랜 전쟁으로 지치고 먹을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때죠. 그때 취사를 큰 가마솥에 합니다. 병사들은 주위에서 진을 치고 방어를 하는데 어느 시간에 나타날지 모르는 적과 대치하고 있는 형편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많지 않은 양의 음식을 또 빨리 먹여야 하므로 이제 가마솥 뚜껑을 곧 여니 밥 먹을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개판(開板) 오 분 전!이라 외쳤대요. 개판 5분 전의 개판은 가마솥뚜껑을 의미하는 개판(開板)입니다. 그걸 우리 견공들이 난장판을 만든 것처럼 개판이라 하면 우리가 섭섭하지요.

우리 주인이 개띠라서 나는 참 좋습니다. 며칠 전 우리 주인께서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보게 우리 개띠들이 복날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생환 기념으로 술이나 한잔 나누세"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우리 주인님의 위트에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이참에 우리 개들이 견공이라는 대접을 받게 된 역사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경상도 선산 동쪽 해평 땅에 역참(驛站)의 아전(衙前) 벼슬을 하는 집에 누렁개 한 마리를 길렀답니다. 이 개가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알고, 주인의 동정을 잘 살펴 늘 주위를 떠나지 아니하였답니다. 주인이 하루는 이웃 마을에 갔다가 술에 취하여 돌아오는 길에 월파정(月波亭) 북쪽 큰 길가에서 그만 말에서 떨어져 정신없이 잠이 들었답니다. 때마침 들에 불이 나서 삽시간에 주인이 위험하게 되자 우리 선조는 놀라 수백 보나 되는 낙동강에 뛰어가서 꼬리에다 물에 적셔 와서 불을 끄고 기진맥진하여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술이 깨어 일어나 보니 개는 죽었는데 꼬리는 그을었고, 사방이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한 지라, 비로소 개가 자기를 구하고 죽었음을 깨닫고, 감동하여 우리 선조를 거두어 묻어 주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그 의로움을 기려서 그곳을 구분방(狗墳坊)이라 하니 지금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우리 조상 무덤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우리 선조에게 犬公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거나 못마땅하면 어른도 ‘개새끼’ 아이들도 ‘개새끼' 합니다. 우리 동료가 늘어나 좋기는 합니다만, 매너 없는 그런 인간들과는 동료가 되기 싫습니다. 나도 주인을 구한 우리 선조처럼 의연히 살아 견공이라 불림을 받기 원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