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우리 산하]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 이승호 기자
  • 승인 2019.10.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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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청렴한 제상 서애 류성룡을 모시고 있다

병산서원(屛山書院)(5)

병산서원 강당인 입교당 연등천정에 우물마루가 간결하면서 시원하다
병산서원 강당인 입교당 연등천정에 우물마루가 간결하면서 시원하다

지난 7월 6일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이에 대한 가치와 지정의의를 살펴본다. 이 서원은 16~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서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이어진 성리학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등재 배경은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으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렇다면 서원과 향교는 어떻게 다를까. 향교는 오늘날 국공립학교 같이 국가에서 설립했다면, 서원은 오늘날 사립학교·학원 같이 개인 혹은 유림이 설립했다고 볼 수 있다. 향교는 공자와 공자의 도를 전한 제자들을 배향했으며 서원은 우리나라의 성리학자 및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대루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병산태풍으로 낙동강물이 흙탕물이다
만대루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병산태풍으로 낙동강물이 흙탕물이다

 

병산서원은 풍산면 소재지에서 하회마을 가기 직전 왼편 비포장길 3km 지점.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에 있다. 이 서원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서애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914년 서애를 주향으로 모시는 존덕사를 설립하고 병산서원으로 되었다. 이후 그의 셋째 아들 류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 서원은 외삼문인 복례문, 만대루, 동재 명성재, 서재 경의재, 강당 입교재, 사당 존덕사, 서고인 장판각이 보편적인 서원 같이 전학후묘의 형태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만대루 앞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본뜬 앙증맞게 조그마한 인공연못 광영지와 존덕사(尊德祠) 앞의 오래된 배롱나무가 눈길을 끈다. 홍살문은 보이지 않는다.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번잡한 마을을 벗어난 산모퉁이를 돌아 앉은 곳이라 한적하다. 만대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관은 일품이다.

배롱나무로 둘러싸인 병산서원 원경
배롱나무로 둘러싸인 병산서원 원경

 

주향 류성룡(柳成龍)은 1542년 외가인 의성현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서애(西崖) , 관향은 풍산, 시호는 문충(文忠) 이다. 고향은 하회마을이다. 회재 이언적과 더불어 태어난 마을도 세계문화유산이요 모시는 서원도 세계문화유산이다.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일이다. 그에 관한 많은 일화가 전해지나, 여기서는 그의 대표 저술이라 말할 수 있는 징비록을 소개한다. 안동 국학진흥원에 있으며, 국보 제132호이다.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 즉 '지난일을 징계하여 후일의 근심 거리를 없앤다' 란 뜻이다. 16권 7책으로 구성된 임진왜란의 원인과 상황, 군국정무에 관한 문서와 기록, 류성룡 자신이 해결한 정책적 문제, 본인의 논평, 다양한 문서 기록과 객관적인 논평이 수록된 책이다. 이 책 후반부에는 이순신의 인물됨과 능력, 그와 관련된 일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그가 보는 이순신은 단순히 훌륭한 수군 지휘관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성군이었다고 평한다. 이순신이 품고 있던 백가지의 경륜 가운데 한 가지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죽었으니 실로 애석할 따름이라고 적고 있다.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남을 엿볼 수 있다. 역경의 세월을 뒤로하고 1607년(선조 40년) 5월 6일 생을 마감했다. 그의 부음이 한양에 알려지자 1000여 명의 백성들이 그가 살던 옛집에 모여 통곡하였다고 한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과 낙동강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과 낙동강

 

하회마을은 병산서원 가까이 있다. 서애 류성룡의 고향이다. 낙동강이 S자 형태로 휘돌아 흐르므로 마을 이름이 하회(河回)이다. 예천 회룡포, 영주 무섬마을, 영월 한반도지형과 함께 3면이 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물도리동 마을이다. 특색있게 성을 유(柳)자를 쓰지 않고 류(柳)자를 사용하는 풍산 류씨 집성촌이며, 경주 양동마을(여강 이씨, 월성 손씨)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한옥 마을이다. 또한 안동 권씨의 봉화 닭실마을, 의성 김씨의 안동 내앞마을과 함께 삼남(경상, 충청, 전라도)의 4대 길지라 부른다. 화산과 원지산, 남산으로 감싸 안은 마을형국은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모양인 '연화부수형(連花浮水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서애 종택 충효당, 대종가 겸암 종택 입암고택, 북촌댁, 마을 한복판 흙 돌담길 깊숙한 곳에 있는 수령 약 600여 년의 영험한 느티나무도 둘러보길 권한다. 강 건너 바위절벽이 부용대이다. 절벽을 양분하여 서애의 옥연정사와 겸암의 겸암정사, 서애의 형 겸암 류운용(1539~1601)을 모신 화천서원도 있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화회마을의 전경은 환상적이다.

 

(위)부용대 서편에 있는 류운용이 공부하던 겸암정사(아래)병산서원 사당인 존덕사 앞 수령이 오래된 배롱나무
(위)부용대 서편에 있는 류운용이 공부하던 겸암정사  (아래)병산서원 사당인 존덕사 앞 수령이 오래된 배롱나무

 

또한 이 마을에는 오랜된 민간전승 놀이인 강상유화(江上流花)와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전해온다. 병산서원 입장료는 없다. 하회마을 입장료는 성인 5천원이다. 셔틀버스비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 매표소 가기 전에는 탈박물관과 다양한 메뉴의 식당과 가게들이 있다. 

풍산 류씨 대종택 입암고택
풍산 류씨 대종택 입암고택
서애 종택 충효당, 미수 허목의 전서체이다
서애 종택 충효당, 미수 허목의 전서체이다
정겨운 느낌이 드는 하회마을 흙돌담
정겨운 느낌이 드는 하회마을 흙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