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검(變臉)
변검(變臉)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3.04.1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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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四川) 천극(川剧)의 주요 기법으로 북경의 경극(京劇), 강남의 곤극(崑劇)과 함께 중국의 3대 전통극

코로나가 발발하던 해에 정년퇴직을 맞았다. 별다른 준비와 계획이 없던 터라 평소 관심이 있는 중국어 강좌를 수강하게 됐다. 대구북구청에서 대학교에 의뢰해서 실시하는 외국어 강좌(주 2회 2시간, 12주)라서 수강료가 저렴하고 가까워서 좋았다. 중국어 초급 강좌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중급반에 들었는데 첫 학기는 발음과 성조를 따라잡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십여 명 남짓한 수강생들은 대부분 여러 해 동안 수강했거나, 현지에서 살다 온 사람도 있었다. 해가 바뀌어 두 번째 학기에는 나름대로 쓰기에 주력했다. 그럭저럭 네 학기가 지나가고 다섯째 학기는 듣기를 주로 했다. 마지막 시간에 강사분께서 영화를 준비해와서 강의실에서 같이 감상을 했다.

1995년도 중국 오천명 감독의 영화 변검(變瞼)은 중국의 전통 기예인 변검술의 명맥을 잇는 변검왕이 남장여아 구와(狗娃)에게 우여곡절 끝에 변검술을 전수해 주는 이야기다. 서민들 희로애락을 다양한 가면으로 표현하는 변검은 사천(四川) 천극(川剧)의 주요 기법으로 북경의 경극(京劇), 강남의 곤극(崑劇)과 함께 중국의 3대 전통극이다.

남아선호와 인신매매의 악습을 극복하고 변검이 경극에 융화되는 과정을 그린 중국 현대 영화의 백미다.

영화 관람 후 학교 앞 중국 식당에서 감상회 겸 종강 파티를 했다. 두 해 반, 다섯 학기 동안 마스크를 쓴 채 수업하고 헤어지고 별도의 교류나 모임이 없었던 차에 마스크를 벗고 소개가 시작되자 좌중이 확 밝아지면서 소란스러워졌다. 맨얼굴을 대하면서 서로서로 놀라고 즐거워했다. 요리를 맛보고 대화하면서 같이 식사하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완화되면서 마스크 아래 진면목(眞面目)이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반기고 놀라고 당황해하며 때로는 실망도 한다.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는 정체성을 은폐하는 도구가 되거나, 면도나 단장과 같은 귀찮은 행위들을 자연스레 회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미세먼지에다 황사까지 덮치는 봄 날씨에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마스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제2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