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삶] 정영진 관세사
[일하는 삶] 정영진 관세사
  • 정양자 기자
  • 승인 2023.03.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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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첨병으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정영진 관세법인 우양 공동대표. 정영진 제공
무역의 첨병으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정영진 관세법인 우양 공동대표. 정영진 제공

관세사라는 조금 생소한 직업. 수출입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빨리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사람. 작은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날카로운 눈빛. 작지만 당당한 관세법인 우양 정영진(68) 대표에게 관세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세사란

“관세사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국내 유일의 국가전문자격사로서 화주로부터 의뢰받아 관세사의 직무 즉 통관 업무를 수행합니다. 국가는 관세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관세사 자격을 부여하고, 관세사 자격자는 관세청장에게 등록한 후 관세사로서 통관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관세사는 납세자의 편의와 통관절차를 능률적으로 하여, 국민경제 발전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과 사회 안전을 해치는 물품의 차단에도 기여하며, 공익의 수호자로서 관세행정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수출·입 품목을 오대양 육대주로 수출하고 수입하는 일을 총괄하는 관세사. 이러한 것들이 국가별로 상세한 내용으로 통계수치가 생산되어 우리나라 정부 기관 등의 기초정책 자료가 된다. 국가 미래정책들이 관세사들의 1차적인 HS(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 작업과 70여 개의 기타 항목으로 수출입신고로 작성돼 국가정책에 반영된다.

“한국은행, 무역협회, 코트라(KOTRA),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정책연구소 등으로 배포되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전문자격사인 관세사로서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다는 정 대표의 이야기다. .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공무원으로 관세청, 구미세관, 포항세관, 대구본부세관 등에서 근무하면서 전문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익혔다.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관세사였다. 국세청의 세무사와 회계사 등과 같이 관세청의 관세사도 전문 자격사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에 접목해서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 산업 인력 공단에서 시행하는 관세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준비했다. 국가와 기업 간 중추적인 역할로 새 꿈을 펼칠 각오로 4년간 주경야독했다. 마침내 관세사 시험에 합격하고, 1995년 관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쉽지 않았지만, 1996년 11월 직원 5명으로 개인관세사무소를 개업했다. 관세사로 업무를 시작하고, 2001년 관세법인으로 전환했다. 현재 공동대표관세사로 국가와 기업 간 수출입신고의 교량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기초를 다진 공무원의 시간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관세직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1년 관세청소속 포항세관에 첫 발령을 받았다. 항만 세관의 밀수단속과 포항제철 관련업체를 담당했다.

“특히 포항공대 방사선 가속기설비 전체시스템을 통관한 것이 접니다. 현재 포항공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초석을 놓는데 저도 보태지 않았을까요?”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에서 일을 사랑하는 열정이 느껴진다.

그 후 구미세관에서 80년 중반 구미의 반도체, 전자제품 등과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의 외화획득 및 수출에 이바지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중심에서 함께 호흡했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얘기한다. 이어 대구본부세관에서 근무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같이 관세청에도 기업조사 분야가 있다, 수출입 대형 기업에 출장 하여서 기업조사 업무를 맡았다. 무역서류 전반과 회계장부 등을 검토하고, 수입 가격 조작과 가짜 상품, 외화 밀반출, 수입금지품목, 이전 가격조사, ROYALTY 가격, 허위신고, 수출과 수입 등 기업조사 업무를 했다. 국가 산업의 경제 국방군이라 여기며, 국민의 공복으로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관세사가 되기 위한 과정

“관세사 시험은 일반 시험과 특별 전형 (2000년 12월 31일 이전에 일반직 공무원인 관세 행정에 20년 이상 종사한 자)로 관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관세사 시험은 1차 시험(객관식)과 2차 시험(주관식)으로 구분하여 진행한다. 제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다음 회의 시험에만 제1차 시험이 면제된다.

관세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6개월 이상의 실무 수습을 수료하고, 관세사 등록을 한 후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실무 수습은 3주간의 기본 교육과 5개월의 현장 교육으로 이뤄진다. 기본 교육 학습 평가와 근태 평가를 통과한 후 현장 교육을 이수하게 되는 데, 현업 관세 사무소에서 현직 관세사의 지도를 받으며 현장 경험을 쌓는다.

전망

우리나라는 2004년 4월에 칠레와 최초로 FTA협정을 했다. 현재 FTA 29건 59개국 나라와 FTA 거대 체결 국가가 됐다.

“지금은 MEGA FTA시대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전쟁으로 국가 간 무역정책으로 관세사업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AI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국가 간 무역 장벽과 세계적인 경제전쟁을 생각하면 소탐대실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예를 들면 아파트에서 작은방과 큰방 간의 이동은 국세청· 변호사· 법무사 등의 업무지만, 아파트 현관 밖으로 이동은 관세사의 몫입니다.”

FTA 체결 국가가 늘어나고 있고, 무역 중심의 대한민국 경제 구조가 유지되는 한 관세사의 수요는 꾸준할 전망이다. 기업이 세무사의 도움을 받듯, 관세조사에선 관세사의 조력이 필요하다. 무역은 국가 간 이뤄지기 때문에 관세와 더불어 외환검사는 물론 밀수입 등 범칙 조사 등이 이뤄질 때도 있다. 관세사는 기업이 관세 혜택을 받기 위한 정확한 품목 분류와 원산지 인증뿐만 아니라 무역 전반에 걸친 컨설팅까지 맡고 있어, 앞으로 관세사의 역할은 한층 커질 것이다.

노사 협력의 중요성 체감

2011년 경상북도와 영천시에서 일본 자동차부품 기업을 유치할 때였다. 영천시 기업투자유치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다. 그 기업은 다국적기업으로 태국과 중국에 법인공장을 둔 다국적기업이었다. 해당 기업의 시설 장비와 공장기계 설비, 자본재 도입 수입통관료 감면 등 혜택을 줬다. 이에 기업이 성공적으로 영천 체신공단에 완공 설립되어 종업원 160명의 탄탄한 기업으로 11년간 고용 창출과 영천시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노조원들의 여러 가지 요구가 불편한 상황을 가져왔다. 급기야 지난해 연말 해당 기업은 본국으로 철수를 감행했다. 결국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관세사로서 한계를 느끼며 더욱 가슴이 아팠다. 노사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다가갔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무역이라는 전쟁터는 냉혹하고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그 현장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배움은 진행 중

“항상 모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전제될 때, 감사의 마음도 일어나며 그래야 인생이 좀 더 재미있고 진취적일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공부는 끝이 없다’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는 2015년 60세 늦은 나이에 경북대학교대학원 FTA학과에 입학했다. 만학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영어 토익을 위한 학원도 열심히 다녀 영어시험도 통과했다. 석사학위를 받고, 그 덕분에 모교 강단에서 FTA실무분야 강의하는 경험도 쌓았다. 그의 배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