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도시인 대구가 250만 인구의 선이 무너지면서 4대 도시가 되었다. 출산율 감소와 직장 관계가 주된 원인이다. 이는 비단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 인천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2020년 16.6%, 2025년에는 21.1%로 40여만 명이 노인인구다. 그만큼 노령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에서는 경제활동으로 인한 사회 참여, 건강과 소득 수준의 변화 등으로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상향 조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뒷방 늙은이로 취급받던 ‘노인’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오늘날엔 ‘시니어’라고 칭한다. 시니어들 가운데 경제활동 하는 사람, 평생 대학이나 복지관을 통해 자기 계발하는 사람, 맞벌이하는 자식들을 위해 아이를 대신 양육하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이들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다.
이렇듯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니어들 가운데, 손녀를 양육하며 즐겁게 취미활동을 하는 이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김종옥(71. 달성군 옥포읍) 씨가 바로 그분이다.
- 어떻게 해서 손녀를 돌보게 되었습니까?
▶ 남매를 두었다. 아들은 적령기에 결혼해 손자가 벌써 20대가 되었는데 딸은 늦은 결혼을 했다. 적령기에 결혼했다면 아마 중 3이나 고등학생의 자녀가 있을 나이다. 그런데 외손녀가 이제 7세로, 내년이 되어야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노산이어서인지 딸은 출산하고 이틀 만에 눈을 떴다. 겁이 났다. 외손녀도 제 엄마인 딸과 약속이라도 한 듯 이틀 만에 눈을 떴다. 자식은 부모의 전부다. 흔히 하는 말로 부모는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이다. 이틀 동안 눈을 뜨지 못했으니 지켜보는 어미로서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이러다 영영 눈을 못 뜨고 실명이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뜬 눈으로 보낸, 그야말로 지옥 같은 날이었다.
딸아이는 출산후유증인지 아프다는 말을 곧잘 했고 아이 키우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아이를 키우다가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이 발달해 검색만 하면 다 알려준다. 처음부터 잘 키우는 사람은 없다. 하나 둘 그렇게 배워가면서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몸이 아프다며 걸핏하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식이 손을 내미는데 가만있을 부모는 없다. 그러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 예전에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저는 딸아이와 달리 일찍 결혼했다. 그 당시 손위 시누이들이 대학을 나오고 9살 연상인 남편 역시 대학을 나왔으니 가정형편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건설업에 종사하던 남편이 40대 후반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살림은 기울어지고 젊은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살림만 하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코너 같은 곳을 얻어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위해 밥장사를 했다. 물론 이 일을 하기까지는 친정 언니의 도움이 컸다. 그렇게 일을 하다 십여 년 전에 언니가 이곳 옥포로 이사 오면서 저도 언니 곁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다 컸지만 친 손주를 키울 때 도와주지 못해 아들과 며느리에게 많이 미안하다. 물론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 육아하면서 힘들었던 점과 보람 있었던 점이라면?
▶ 지금은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2년 전, 코로나에 걸렸었는데 저로 인해 아이까지 코로나에 걸렸다. 일주일간 격리해야 하는데 저는 어른이니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어린 것을 어떻게 혼자 격리시켜야 하나 싶어 의사한테 울면서 매달려 아이랑 집에서 격리 한 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아이를 키울 때 누구나 겪었겠지만 아플 때 가장 힘들었다.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잘 자랐지만 감기로 밥을 못 먹고 축 늘어졌을 때 안쓰럽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딸아이는 아파트 옆 동에 산다. 가까이 살기 때문에 출근할 때 데려다주고 퇴근할 때 데려가거나 아니면 제가 그렇게 해 줄 수도 있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지내도록 한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보니 딸아이도 안심하고 일하러 다닌다.
외손녀는 고집이 센 편이다. 일하러 가고 없는데 제 엄마 집에 가겠다고 할 때면 힘들었다. 아이는 저 때문에 제 엄마를 보러 못 간다고, 그래서 제가 없어야 엄마 보러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할머니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했을 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놀랐고 많이 섭섭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엄마 보러 가겠다고 떼쓰는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얼마 전에 어버이날이었는데 아이가
‘할머니 오레오레 저 키워서 고맘슴니다 사랑해요. 오레오레 건강하세요. 고마워요.’라고 포스트잇에 써서 편지라고 주는데 기특하고 고맙고 눈물이 났다. 이런 사소한 일로 아이를 키우는 보람을 느낀다고나 할까.
저녁 8시가 되면 자고, 아침 7시면 일어나는데 잠투정은 거의 없다. 여느 집의 아이들이 보는 텔레비전은 주말에만 보고 거의 보지 않는다. 습관을 들이니 그런가보다 하며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사 와서 아파트 동 대표, 부녀회장, 선거관리위원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했고 노인 일자리 창출로 일도 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이런 활동을 모두 그만두었다. 활동하던 사람이 육아로 집에만 있으면 일반적으로 못 견뎌한다. 허나, 우리 아이 키울 때와는 달리 요즘에는 3살만 되면 어린이집과 같은 위탁기관에 아이를 보낸다. 우리 아이도 아파트 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3살부터 보냈고 2시 되면 집에 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때는 나의 시간이라 자유로웠다. 그 시간을 이용해 아파트 내에 있는 노래 교실, 탁구 교실에 신청해 참여하고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보낸다.
아파트 노인정에서 인근에 있는 강림초등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전래놀이로 제기차기, 공기놀이,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했다. 그걸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는데 이번에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이야기 할머니’로 나가게 되었다. 평소에 아이와 같이 동화책을 읽고, 읽어주다 보니 이런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 같다. 집에도 아이의 책이 많지만 아파트 내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3권이나 빌려와 읽고 연습하는데 손녀도 벌써 그 책을 여러 번 읽었다.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나도 기다려지고 설렌다.
아이 중심으로 생활패턴이 바뀌었지만 이게 내 생활이려니 하며 만족한다. 딸아이가 가깝게 살아도 혼자라면 외롭고 적적할 텐데 손녀와 둘이 사니 그런 걸 느끼지 못한다.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