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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너무 고마워
icon 장명희 기자
icon 2019-04-16 09:20:13  |  icon 조회: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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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너무 고마워

 

 나이가 들면 추억을 만끽하며 산다는 말을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여고시절 까만 후리와 치마에 흰색 칼라, 한껏 다림질로 날을 세우고 멋을 부렸던 지난날. 3이라는 직함에 어울리게 무거운 가방, 어머니의 정성어린 두 개의 도시락으로 상큼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시골 버스에 몸을 싣는다. 상냥한 버스 안내양은 문을 톡톡 -라이~~♪♬하는 목소리에 약속이나 하듯이 혼잡한 도시 거리를 향해 미끄러져 달린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새로움이 움트는 눈빛에서 목적지는 다르지만, 희망으로 단장한 출발선은 누구나 공통분모가 같다는 것을 느꼈다. 매일 등교 길에 그 시간 그 버스 안에서 누구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남자친구를 만나는 즐거움 또한 하루일과를 들뜨게 했다.

밀치고 밀치는 버스 속에서 아니나 다를까. 도시락 반찬통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좋아, 어떠하면 좋아!! 나도 모르게 얼굴이 김치 국물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얼굴 익숙한 남자 친구 검은 눈동자 사이로 김치 통이 반사되고 있었다. 꽉 낀 사람들 사이로 엎드려서 주울 수도 없었다. 지저분한 발로 반찬통을 요리조리 세워서 주워보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마음이 요동치던 중 김치 국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옆에 서있던 남자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주워주는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 길로, 개울물처럼 김치 국물이 흘러넘치고 미안함도 함께 밀려왔다. 몰래 돌아서서 닦는 뒷모습이 내 마음은 묘한 감정으로 엇갈렸다. 쑥스런 애띤 숙녀는 저만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위로 자였다. 이제 그만! 허공에서 어머니의 묵직한 목소리가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안 돼, 그만해, 너의 마음은 이런 저런 혼란스런 마음을 지워야 하는 고3이잖아. 남자 친구와 사랑이라는 말보다 교과서와 책을 더 사랑할 때야어머니의 억압하는 듯한 목소리. 조금은 고요 속의 평정을 찾았을까. 한 참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슴이 뛰는 것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항상 나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어쩌면 농부이신 아버지의 흙 묻은 손처럼, 체면 따위보다도 자식을 위해 헌신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따뜻한 봄날 햇살이 나부끼는 창 너머 남자친구의 눈과 마주쳤다. 오고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용기는 없었지만, 우리는 마음속에서 어떤 값진 신뢰감을 만들 수 있었다. 소중한 마음의 우정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남자 친구를 통해서 진정한 우정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지금도 나의 모든 일의 소중한 동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점심시간 김치반찬은 어머니의 정성과 남자친구의 고마움으로 너무 새콤달콤했고, 사랑의 기운을 씹는 행복한 노래 소리 울랄라라라였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할 때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 친구. 나에게 활력소를 얻게 해주고 숨을 고르기 위해 찾는 안식처였다. 아마도 지금 열심히 잘 살아갈 수 있고, 오랜 마음의 여운으로 남아 있는 것도 눈빛으로 보여주는 서로의 두터운 우정이 아닐까. 만나던 만나지 않던 생각만 해도 흐뭇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친구.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를 믿고 생각나게 하는 친구.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남다른 배려심이 있다면 어디가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친구야, 너무 고마워. 내가 너무 늦게 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내는 것 같아. 미안해. 수많은 시간이 나의 가슴을 메워도 더욱 잔잔히 마음속으로 밀려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아. 나도 누구에게나 너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다른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바닥이 되어주는 삶 말이야. 너처럼.

 

 

2019-04-16 09: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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