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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도 봄은 온다
icon 전용희
icon 2020-03-03 14:34:27  |  icon 조회: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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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도로에 차도 없고 인적도 끊어졌다. 서문시장도 문을 닫았고, 도심인 동성로에도 인적이 드물다. 도시 전체가 정적에 갇혀 숨죽이듯 조용하다. 오늘은 삼일절, 백여 년 전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 날이다. 오늘따라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향토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생각난다. 그때는 우리 영토가 일제 식민지로 아픔을 겼었으나,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나라 전체가 몸살이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에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고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더구나 대구가 그 중심에 있다. 코로나에 온통 대구를 빼앗겨 버렸다.

코로나 뉴스를 매일 접하면서 전염병에 대한 영화와 소설 <페스트>를 찾아보았다. 먼저 2011년에 상영된 ‘컨테이젼(Contagion)’을 컴퓨터로 보았다. 호흡기로 감염되어 온 세계로 퍼져 나가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무서운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영화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작품으로 극한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의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소설 속의 몇 문장을 인용해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페스트로부터 빠져나온 건 개개인들이 기울인 절망적이지만 단조롭고 꾸준한 노력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위협하는 굴욕을 거부하려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 성실성이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설을 통하여 대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기자 랑베르의 도피적 태도, 초월적인 존재에 기대어 해석하려는 파늘루 신부의 태도와 이 작품의 주요 주제인 반항적 태도이다. 소설에서는 페스트와의 사투에서 앞장선 사람은 의사 리외를 비롯한 평범한 개인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객인 타루는 도시에 남아 의사 리외를 찾아가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보건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페스트를 물리친 것은 잔혹한 현실에서도 놓지 않은 희망과, 절망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사람 간의 연대임을 알 수 있다.

<페스트> 착상의 기폭제는 2차 세계대전이다. 작품 속에는 페스트와 맞서 싸우다 죽어 간 사람들과 그에 맞서 싸워 이겨 낸 사람들, 희망과 기쁨 속에서 맛보는 고통과 절망이 골고루 들어 있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의지가 절망과 맞서는 길이라는 것이리라.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더라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걸음을 걷는 것만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이며 우리가 선택할 길이라는 것이다. 문학 비평가들에 의하면 페스트는 꼭 전염병만이 아닌, 대기근, 자연 재앙, 전쟁과 같이 인간의 운명에 개입되어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 가는 부조리한 모든 걸 상징한다.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소설과 닮았다.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어떤 사람은 확진자가 되어 괴롭고, 더 많은 사람은 감염되지 않기 위하여 불편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가 격리되어 감염을 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고통일 수밖에 없다. 감염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의 사투는 눈물겹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실수로 우리 인간 세계를 침범하였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으로 인정하여 주는 루시(Lucy)를 보았다. 32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인 루시도 17세에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인간의 실수로 만들어진 흑역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유명한 빌 게이츠도 인류에 대한 바이러스의 대재앙에 대하여 이미 경고하였다. 인류를 멸망시킬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고.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바이러스 아포칼립스(apocalypse: 대재앙)에 대비하여야 한다. 코로나19도 생태계가 우리 인간을 향해 던지는 경고의 사이렌일지도 모른다. 경고 메시지를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언젠가는 출현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외출도 잘할 수 없다.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적이 없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올까 피하고 다닌다. 그런데도 가까운 인적이 드문 곳에 나가서라도 봄을 느껴보자. 아파트 앞 공원에는 노란 산수유와 빨간 홍매화가 맵시를 뽐내고 있지만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것이다.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든 일과 좋은 일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법이다. 코로나로 빼앗긴 대구에도 봄은 온다.

2020-03-03 14: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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