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글마당 시니어매일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는 신문입니다. 참여하신 독자께는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봄이 오는 교정에서 가을에게 쓰는 편지
지난해 가을은 그다지 길지 않을 듯 합니다. 몹시도 더웠던 여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으로 저녁으로 쌀쌀하기 그지 없습니다. 강원도 산촌 마을과 전방 고지에는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에 고향을 떠나온 병사들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가슴은 움츠려들 듯 합니다.
이런 쌀쌀한 날씨에 가을 길을 달려온 고사리 손에 담긴 가을을 가만히 만져 봅니다. 교정에는 잎사귀 큰 미루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 운동회를 열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치장을 한 가을 소년 소녀들이 한바구니 가득 가을을 담아가을 교정을 찾아온 가을 손님들에게 가을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교실 창 너머로 이러한 가을 풍경을 감상하는 나도 어느새 가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한층 더 높아진 어느 날 아침 가을 신작로를 달려온 내 책상 위에는'오늘은 기쁨의 집'이란 예쁜 탁상용 책 한 권이 '선생님 마음 앞에 놓아 드립니다'라고 쓴 쪽지 글과 함께 어떤 여학생이 갖다 놓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 따뜻한 글들이 일년 365일을 매일 매일을 영혼이 맑은 님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돼 있었습니다. 정말 혼자서만 만나는 것이 죄가 되는 듯합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날 결심했습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 고요한 마음으로 명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소리가 맑은 한 학생이 읽어 내려가자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날이 갈수록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일을 하며 살아라. 무슨 일이어도 좋다. 다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베개에 눈물을 적셔 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이여 영혼의 향기는 고난 중에 발산됩니다." 듣는 동안에 학생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봅니다. 아주 해맑은 모습들입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저 또한 맑아진 눈으로 더한층 높이 솟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이 가을에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더 없이 행복했으면 하고 가을에게 부탁하고 싶어집니다.
2019년 3월 봄이 오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