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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추억의 밥시기’를 기억하시나요?(장광현)
icon seniormaeil
icon 2019-02-01 16:09:33  |  icon 조회: 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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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지지리도 가난했던 보릿고개 시절에 겨울철이면 물리도록 먹었던 단골음식이 ‘밥시기’ 다. 구시대의 유물 같은 이 음식은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이 지혜를 발휘해 가족들을 굶게 하지 않으려고 묘안(?)으로 만든 음식이다.

아침에는 밥, 점심은 밥시기, 저녁은 고구마, 국수... 하루 세끼를 때우는 것이 전쟁과도 같았던 그시절,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남은 밥 한그릇으로 어머니는 김치, 배추, 고구마, 국수등을 넣고 끓여 우리 4식구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셨다. 밥보다 배추와 국물이 더 많았던 밥시기, 그러나 밥시기는 가장 맛있고 아름다운 점심 밥상이었다.

음식 반찬 투정은 생각도 못했던 보릿고개 시절에 밥시기 한그릇 먹고 산길을 걸어 지게에 땔감을 한짐해서 집으로 돌아올때면 어느새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다리는 풀려 걸음조차 제대로 걷기 힘들었지만 추운 방에 군불을 지펴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오르락 내리락 그 먼 산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 겨울철 하루 일과였다.

먹을 것이 없어 너무나 배가 고팠던 그 시절 배고픔의 설움을 겪어보지 않은 지금의 세대는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모처럼 그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의 밥시기’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 밥에다 김치, 배추 겉저리, 콩나물, 수제비, 국수를 넣고 끓였다. 동네 회관에서 어르신 10여분들과 함께 김치와 무우지를 반찬으로 밥시기를 먹었다.

참 오랜만에 먹어보는 밥시기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한 요즘, 잊어버린줄 알았던 나의 미각은 시간을 40여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물리도록 먹었던 밥시기였지만 그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두 그릇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순간 고생하신 어머니의 푸른 청춘이 한없이 가엾어져 왔다. 청춘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다 바치신 안타깝고 불쌍한 어머니의 삶이 너무나 서러웠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당신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일평생 고생하시며 사셨던 분이다. 어린 시절에는 철이없어 몰랐고 결혼해서는 가정을 책임진 가장으로 바쁘게 살다보니 어머니의 푸른 청춘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숙명으로 여기고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여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시절이 눈물나도록 그리워 진다. 돌이켜보면 비록 배는 고팠지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도란도란 모여앉아 엄마가 해주시던 밥시기를 먹을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밥시기’ 는 언제나 가슴 뭉클한 그립고 보고픈 어머니다.
2019-02-01 16: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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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윤희 2019-02-12 21:37:00
<밥시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청도에서는 <갱죽>합니다. 김천에서는 <갱시기>라고 하더군요.

이화진 2019-02-10 00:22:10
"밥시기"도 많이 먹었지만 보릿고개 무렵이면 "갱시기(일명 갱죽)"도 많이 먹었죠. 겨울철이면 "무밥"이나 "조밥"도 많이 먹었죠. 갱시기나 무밥, 조밥 등을 많이 먹었던 건 쌀이 부족하여 쌀 아끼기 위해서였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음식들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 맛이 스며있는 건강식(웰빙식)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