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2019-07-04     김채영 기자
2018-06-28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시집 『선운사 동백꽃 보러갔더니』 시인생각, 2012-10-17

 

연꽃을 보면 염화미소라는 말이 생각난다.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 불교 용어다. 그래서인지 어느 사찰이든 절간 마당에 들어서면 연못이나 수반에 몇 포기의 연이 있기 마련이다. 용케 시기를 잘 맞춰 꽃이라도 보는 날에는 염불은 뒷전이고 카메라 들고 부산떨기 바쁘다. 연은 새벽녘에 개화를 시작하여 오전 10시쯤이 가장 화려하고 정오가 지나면 꽃잎을 오므린단다. 은은한 꽃향기를 맡고 싶으면 이른 아침에 가라고 조언한다. 연꽃은 관상용으로 훌륭한 식물이다. 게다가 잎과 꽃, 줄기, 뿌리, 씨앗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활용되는 귀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八割)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형(天痴)을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시 ‘자화상’의 일부분이다. 서정주 시인의 부친은 마름이었다. 시인이 자신의 삶을 형상화한 것인데 마치 오늘날 친일로 낙인 찍혀 죄인이 될 것을 예측한 것처럼 돼버렸다. 친일만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서정주에 대한 평가가 죽음과 함께 시의 업적까지 묻혀버린 형국이다. 시와 시인을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으니 당연한 결과겠으나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시는 언뜻 읽으면 모호하다. 천천히 정독을 하면 이별에 대하여 한결 성숙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하지는 말라고 달래는 어조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빌려 생각하면 어느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서로 철천지원수는 되지 말자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에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만나고 가는 바람’은 기약이 없어 쓸쓸하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지 않던가. 아무리 슬픔이 복받치는 이별일지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위로하듯이 다독거린다. 만약 지금 이 세상을 한 떨기의 연꽃으로 본다면 당신과 나, 우리는 모두 그 연꽃을 잠시 잠깐 만나고 있는 바람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