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삶] 즐거운 상상력 '&버드', 화가 박걸의 작업실

직선·곡선 어우러진 조형물 수많은 의미·감성의 집약체 “예술가에게 ‘낯섦’은 꼭 필요 지문과 같은 아우라 만들 것”

2023-05-24     유무근 기자

화가 박걸(65)의 작업실(경북 칠곡군 왜관읍) 앞에는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 있다. ‘&’이기도 하고 ‘새’처럼 보이기도 하는 상징물. 바로 &버드(앤드 버드)다. 박걸 화가는 작업실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와 같은 세련되면서도 감성적인 조각상을 만들고 싶었다. 곰곰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구상하던 그에게 ‘&’가 다가왔다. ‘직선’으로 시작해서 ‘곡선’으로 변화하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존중’, ‘대등’의 의미 품은 ‘&버드’

“&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라는 의미에는 무언가 따라야 한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지요. 하지만 &에는 ‘Human & Nature(사람과 자연)’, ‘You & Me(너와 나)’처럼 각자의 취향과 개성· 프라이버시· 정체성을 존중해 주고 ‘대등’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새’의 부리와 발을 더해서 탄생한 것이 ‘&버드’다. 이 &버드를 섬세하게 구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때 철을 가공하는 덕산기업에서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렇게 기발한 발상으로 태어난 &버드가 박걸 작가의 작업실을 지키게 되었다.

“아름다운 새, &버드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 바람은 &버드가 여러 가지 재미난 형태로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새’, &버드는 수많은 의미와 감성이 축약된 상징물입니다.”

그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집안 내력인지 손재주며 예술적 감각을 타고났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집안 어른들의 권유대로 물리 교사로 대구에서 30여 년을 근무했다.

“처음 제가 그린 것은 사람, 누드화입니다. 저는 사람의 ‘몸’에 주목했습니다. 몸은 욕망을, 정신을, 감정을 담는 그릇입니다. 또한 동시에 학대의 대상이자 성적 대상이며, 상품성을 가진 것이 몸이기도 합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이 직선인 삼각형, 사각형과 집 모양의 오각형을 만나 충돌이 이루어지고, 여러 번 오버랩 되면서 그의 그림은 ‘패턴’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 패턴은 독특하면서도 일정한 규칙성을 가진다. 10여 년 전에는 스피커 위에 철판을 올려놓고 300, 500, 700Hz로 진동수와 진폭에 따라 규칙적인 무늬가 찍히는 실험적인 ‘기계적 추상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화가는 ‘흔들기’와 ‘뿌리 내리기’를 통해 정체성 찾아가야

일평생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들도 많은데, 왜 굳이 박걸 화가는 수많은 시도를 하는 것일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면 시간이 흐르며 깊이는 생기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화가는 ‘새로운 흔들기’와 ‘뿌리 내리기’를 통해 아우라를 구축해 나가는 사람이라 여깁니다. 물론 제 몸속에 흐르는 발명가 기질도 작용합니다. 외국 여행을 통해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또 그걸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며 저는 발전해 갑니다. 사람들은 제게 ‘창의적’, ‘생경함’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만, 예술가에게 그 ‘낯섦’은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누드에서 패턴으로 활을 쏘는 사람으로 그는 여전히 ‘흔들기’를 계속하고 있다. 아직 몇 번의 흔들기가 더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화가 박걸. 흔들기를 더해보고 비로소 ‘뿌리 내리기’를 통해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자신만의 지문과 같은 아우라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한다.

“화가는 삼각형의 맨 위 꼭짓점에 위치해야 합니다. ‘주역’의 ‘계사전’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막히면 즉 뜻대로 되지 않거나 그것이 한계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함으로써 영원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안정적으로 삼각형의 중심에 있고 싶어 합니다. ‘평론가’와 ‘동료 화가’, ‘대중’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고 싶어 하는 게 보통 화가들의 마음입니다. 작품성도 조금 인정받고, 상품성도 조금 인정받고. 하지만 화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외롭고 고되더라도 삼각형의 맨 위 꼭짓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도 꾸준히

물리학을 전공한 교사답게 작년 어린이날에는 수창청춘맨숀(대구 중구 달성로)에서 ‘미술로 과학 체험하기' 프로그램에서 직접 놀이기구를 만들어 시연하며, 아이들이 시각적인 미술 체험을 통해 과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왜관 구장터 ‘벽화 그리기’에도 동참했고, ‘도시재생협동조합’을 설립해서 왜관에 팝아트를 지향하는 볼거리, 살 거리, 먹을거리, 재밋거리 가득한 카페를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회를 포함, 총 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은 1997년 결성돼 현대미술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정열적인 작품 활동과 함께 ‘스페이스129’ 등 대안공간을 운영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대구현대미술가협회’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