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9)

이직은 미흡하지요! 좀 모라지요! 하지만 세월이 차차 제 자리를 찾아 바로잡아 줄 겁니다. 암요! 누구는 인생을 들어 새벽이슬 같아서 줄줄이 꿰어 사라진다고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길지요! 전날에는 그들의 죽음이 나의 행복이라면 오늘 그들의 삶이 마음속 평안이다

2023-06-05     이원선 기자
3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마님이

“예~ 예~ 그러문입죠! 그래서 오늘은!”

“그랬군요! 그런 까닭에 두 분이 이렇게 나란히 오셨군요! 그렇지요! 인연이란 게 별건가요! 이렇게 만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인연이지요! 그렇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두 분께서는 앞으로도 인연이란 끈으로 꽤 길고도 깊게 얽히겠습니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무당이 할머니를 돌아보며

“끝순네! 아니지 이제는 그렇게 부르면 안 되겠지요! 그렇지요? 이제는 온양댁이라고 정식 호칭으로 불려 드려야겠지요! 온양댁 그간 고생한 보람이 영광으로 빛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관세음보살의 무한한 자비로 따님을 정성으로 살려내고 훌륭하고도 어여쁘게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끝이 아니지요! 이직은 미흡하지요! 좀 모라지요! 하지만 세월이 차차 제 자리를 찾아 바로잡아 줄 겁니다. 암요! 그러나 고생보다는 보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요! 보람이지요!” 하더니 다시 마님을 돌아보며

“아드님은 어떻게 마음을 좀 잡아갑니까? 당장은 몸으로 느끼기에 정월 대보름 무렵의 바람결처럼 봄도 겨울도 아닌 것 같지만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이미 봄기운이 깃들었으니까요! 오늘은 아니더라도 효도라는 것도 좀 알거구만요!” 하며 자자구구(字字句句) 잡다한 말만 늘어놓는다. 무당의 말을 듣고선 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는데 아들이 좀 달라지기는 달라진 것 같았다. 평소 집안일에는 손끝 하나 까딱하는 꼴을 못 봤다. 어미지만 퉁명스러워 본체만체하던 아들이 제법 살가워졌다는 느낌이다. 간혹 장작을 팬다며 도끼를 든다. 무거운 것도 힘들다며 들어주고 은근하게 밥도 권한다. 고기반찬도 멀다며 슬며시 마님 앞으로 밀어 놓는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무당의 말을 무한으로 듣고 있자니 속으로 조바심 이는 마님이

“오늘 저희 두 늙은이가 이렇게 청신녀님을 찾아온 뵌 것은!” 할 때 무당은

“마님께서는 무어에 그리도 바쁘신가요? 누구는 인생을 들어 새벽이슬 같아서 줄줄이 꿰어 사라진다고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길지요! 갖가지 사연으로 얼룩졌지요! 그렇게 탈도 많고 사연도 많아 소털같이 많은 날에 바쁘게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요? 가만있어도 물 흐르듯 흐르는 세월인데! 짧은 가을 햇살일 망정 아직은 한 발이나 남았는데요! 하니 좀 더 천천히 놀다가 가시죠! 두 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와의 만남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승의 연이 끊어지면 언제 또 만날까요?” 하는 무당은 남의 속도 모르고 한참이나 더 주제를 빗나간 말만 늘인다. 할머니는 이미 겪고 겪어온 터라 그런대로 견딜 만은 했지만 처음 겪는 마님은 지만 증이 일어 죽을 지경인 모양이다. 찻잔은 벌써 비었고 곁들인 과자도, 떡 쪼가리도 바닥을 보인 지 오래다. 언제 혼례 날짜를 입에 담고 날짜를 잡을까? 두 노인네가 멍하게 무당의 입만 보얗게 쳐다보는데 기약이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봉창으로 가을 햇살을 등에 업은 추녀가 그림자를 끌어 설핏 어른거린다. 그 모습에 할머니도 어느 정도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는지 예의 손수건을 찾아서는 마른 입술을 훔쳐 닦을 때다. 무당도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

“이제는 두 분께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얼추 된 것 같습니다. 그전에 여담처럼 사람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드리지요!” 하더니 식은 찻잔을 들어 입술은 축인 뒤 승낙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을 잇는다. 그때 무당은 어떤 어린아이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과거 어느 때 어떤 대감이 수족처럼 여겨 잔심부름을 시킬 요량으로 아홉 살 남짓한 사내아이를 들였다. 아이는 보기보다 영특하고 부지런하여 대감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감의 초청으로 친구가 방문했다. 그때 대감은 친구에게 자신이 들인 아이를 자랑할 겸 수시로 불려서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일삼아 시켰다. 그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던 친구가 대감에게 정색하며 오늘 당장 아이를 내보란다. 대감이 이유를 물어본즉 아이의 미간에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감도는 것으로 보아 미구에 이르면 기어이 살인할 상이란다. 이대로 계속 머물게 했다간 대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말에 대감은 하는 수 없이 친구의 청을 받아들인다. 아이를 불러서는 노잣돈을 넉넉하게 주고는 다짜고짜 나가라며 내쫓아버린다.

아이가 애걸복걸 사정을 했지만 이미 결정이 난 일이라 번복할 수 없단다. 간단하게 행장을 꾸려 미적미적 뒤를 돌아보며 집을 나선 아이는 마음속으로 진한 살기를 품었다. 대감의 친구란 이의 어쭙잖은 말 몇 마디로 인해 내쫓긴 것에 대한 앙심이었다. 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로 뚜렷하게 갈 곳이 없는 아이는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얼마를 가지 못해 길이 막혔다. 때는 장마철이라 때아니게 시냇물이 불어 난 때문이었다. 오도 가지도 못한 아이는 한가하게 물가에 쭈그려 앉았다.

그때 아이의 눈에 이상한 광경 하나가 들어왔다. 시내를 넘쳐나는 물로 인해 가장자리로 생긴 조그마한 모래톱이 점차 물에 잠겨가는 중이었다. 한데 그 모래톱으로 한 무리의 개미 떼가 갇혀서는 살길을 찾아 우왕좌왕,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물은 점점 불어나 모래톱은 곧장 잠길 태세다. 전날 같으면 한 발에 밟아 죽일 개미 떼다. 한 손으로 모래톱을 파는 것만으로도 개미 떼는 모두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오늘은 자신의 처지만 같아 왠지 개미 떼가 불쌍해 보여 살려만 주고 싶다. 그 방법으로 손으로 집어 한 마리씩 살리고자 하자니 작고 연약한 개미들이 다칠 염려가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곧 죽을 물고기지만 손에서 나는 열기로 인해 화상을 입을까 봐 물수건을 사용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고 모래톱을 양손으로 모아 통째로 옮기려 하자니 낙오자가 생길 염려가 있다. 낙오자는 그대로 물결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개미들을 무사히 옮겨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아이는 심히 고민이 깊다.

한참을 골똘하게 생각한 끝에 아이는 주위를 둘러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모래톱에 걸쳐 뭍으로 내려놓았다. 그러자 우왕좌왕하던 개미 떼는 이내 나뭇가지를 발견하고는 하늘에서 내려준 생명줄로 여겨 차례차례로 건너기 시작한다. 다투지 않고 나란히 줄지어 건너는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마지막 한 마리까지 무사히 건너 모두 목숨을 건질 때 즈음 시냇물이 모래톱을 휩쓸어 가버린다.

아이가 한 일이라곤 흔해 빠진 나무작대기 하나를 걸쳐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하찮은 행동 하나가 개미 떼의 생명줄이었다. 전날에는 그들의 죽음이 나의 행복이라면 오늘 그들의 삶이 마음속 평안이다. 문득 사미승으로 있던 어느 절간서 객승으로부터 주워들은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우리 함께 피안으로 가자, 피안에 도달하였네! 아~ 지극한 깨달음이여 영원 하라!’ 는 구절처럼 아이의 마음속 저 아래쪽으로부터 알 수 없는 한 줄, 광명의 빛줄기가 가슴께로 솟구치는 느낌이다. 한데 현실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만만치가 않다. 개미들이 무사히 건너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돌아보는 주위로 짙은 어둠 살이 몰려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소년은 다시 대감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하룻밤만 더 묶어 내일 떠나겠다는 심산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