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의 산증인 최춘해 원로 문인과의 대화

후배 문인들에게 책을 많이 읽고, 일기 쓰기를 수강생들에게는 '우리는 정으로 산다.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 계속하면 열매 맺는다' 강조 4월 하순 2억 혜암아동문학상 기부 예정

2023-03-29     유병길 기자

여백문학회(회장 은종일)는 원로 문인과의 첫 대화로 아동문학의 산증인 최춘해 선생을 모셨다. 3월 27일 10시 북랜드 회의실에서 열린 행사에는 2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장희 사무국장의 사회로 여는 시 낭송은 서정랑 시인이 최춘해 선생의 '이른 봄'을 낭송하였고, 은종일 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은 회장은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게 되어 반갑다. 먼저 바쁘신 가운데도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신 혜암 선생님께 우리 여백문학회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선생님과 대화의 시간 1부

-곽명옥 부회장입니다. 선생님의 고향과 가족관계 그리고 처음 아동문학을 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나 동기, 문학 세계관이 있으시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상주시 사벌면 덕가리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황새골, 뱀골, 풀밭골을 다니며 감, 밤, 삐삐, 진달래꽃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상주에는 아동문학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상주글짓기회가 있었는데, <동시의 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상주 아이들 글이 백일장, 신문, 잡지 등에 많이 발표되고, 글짓기 콩쿠르에서도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글짓기 지도 선생님들이 동시를 열심히 썼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글짓기 지도를 하면서 본보기 글을 제 작품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글짓기 지도 연수를 하면서 자기 작품을 써 와서 작품평도 함께 했습니다. 그때 김종상 선생과 신현득 선생은 이미 등단을 했습니다. 같은 글짓기 회원이지만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서울, 대구 등 전국 백일장에 사비로 학생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윤석중 선생이 시화전을 열고 그 작품으로 책을 냈는데 제목이 ‘동시의 마을’입니다.

아동문학은 교육성을 고려해야 하고, 꿈과 환상의 세계입니다. 장르가 동화입니다. 첫째 난해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셋째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어야 한다. 넷째 비약이 심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사랑이 담긴 내용이어야 한다. 여섯째 꿈과 환상이 담긴 내용이어야 한다.

-문성희 부회장입니다. 아동문학에 입문하실 때 선생님께 멘토 역할이나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시는지요?

▶이원수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동문학에 더 열정을 쏟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뒤에도 선생님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보답을 못한 것이 늘 빚이 되어 무거운 짐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한글문학>지에서 추천을 받은 것과 제 첫 동시집에 머리글을 받은 것이 제 문학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김종상 선생과 신현득 선생 두 분의 격려 말씀이 큰 힘이 되어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남희 이사입니다. 선생님께서 전국 아동문학 교단동인회 간사를 맡게 된 연유와 역할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아동문학회의 설립과정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의 발자취 말을 옮겨 보면, 63년 7월 14일 신현득, 오규옥, 옥미조, 하계덕 발기로 대구칠성초등학교에서 발족. 『전국 교사 아동문학회』로 가칭. 간사 신현득 당시 회원 김동극, 강청삼, 김종상, 김원기, 엄기원, 이진호, 이천규, 임교순, 허동인. 매월 1회씩 작품을 교환하고 전호 작품에 대한 각자의 평을 하기로 한다. 동인지의 명칭을 '은방울'이라고 정하였고, 회장이 없고 간사가 회무를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63년 8월 1일에 『은방울』 1호가 나오기 시작해서 신현득 간사가 『은방울』 10호를 내었다. 64년 6월 18일부터 동인회 본부를 강원도 명주군 사천초등학교로 옮기고 엄기원 회원이 간사로 64년 7월 15일에 『은방울』 11호를 내기 시작해서 『은방울』 17호를 냄.

65년 3월 16일 동인회 본부를 경북 상주군 사벌초등학교로 옮기고 간사업무를 최춘해가 맡았습니다. 65년 4월 5일에 『은방울』 18호를 내고 19호 20호에 이어서 65년 7월 1일에는 『은방울』 21호를 처음으로 인쇄판으로 발행하고, 65년 12월 1일에 『은방울』 27호도 인쇄판으로 발행했습니다. 등사판으로 낸 것은 다 없어지고 인쇄판 발행 21호와 27호만 남아 있습니다.

65년 6월에 중앙일보 최종률 문화부 기자가 내가 근무하는 사벌초등학교에 교단아동문학동인회 활동 모습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시골이라 여관이 없어서 학교 사택인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습니다. 곧 중앙일보 문화면에 전면 특집을 했습니다. 제가 3대 간사를 마치고 대구 유상덕 회원께 인계를 한 뒤에 『은방울』 동인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인지는 만 3년간 지속되다가 사라졌습니다.

대구아동문학회 창립총회는 1957년 3월 3일 원화여고 교장실에서 하였고, 이응창 교장이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58년 작품집 1호 ‘달 뜨는 마을’ 발간하였습니다. 67년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97년 제가 6대 회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68년 40주년 창립기념 특집 ‘정다운 마을’(564쪽) 발간 하였습니다. 대구아동문학회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인터넷 회보를 만들었으나 인터넷을 모르는 회원이 많아 호응이 적었습니다. 2010년 대구아동문학 반세기 ‘대구아동문학사’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현경미 시인이 최춘해 선생의 '쭉정이에 가슴 아파'를  낭송하였고, 문성희 부회장 하모니카 연주(고향의 봄, 오빠 생각, 등)를 하였다.

선생님과 대화의 시간 2부

-김계숙 이사입니다. 선생님께서는 1979년 연작시 흙」을 발표하셨습니다. 연작시 흙을 쓰시게 된 동기와 발표 후 문단의 반응과 세간의 평가는 어떠했는지요?

▶제가 ‘흙’ 연작시를 쓰게 된 동기는 79년 세계아동의 해에 문교부와 한국일보사가 공동으로 작품모집을 했는데, 제가 응모한 흙 연작 8편이 금상으로 뽑혔습니다. 금상 수상을 하고 나서 계속 흙 연작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79년 8월 15일에 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을 발간했습니다. 80년 1월 15일(화) 시사통신에 제6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자 결정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 온 최춘해씨는 문예진흥원의 출판기금 지원을 받아 지난 해 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을 낸 바 있고, 아동의 기념 전국아동문학 작품모집에서 최우수상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최춘해씨의 수상작은 연작 동시 『흙』이다. 원고료 20만 원 지급된다. (시사)

제가 ‘흙’ 연작시를 쓰는 이유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으며 흙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나도 흙의 한 부분입니다. 봄에 새싹이 돋고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흙이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심의 원초적 생각인 물활론의 눈으로 흙을 보게 되었습니다. 흙을 소재로 동시를 썼습니다. 흙은 뿌리, 어머니, 고향 등 여러 가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런 넓은 의미의 흙을 작품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입니다.

-고경아 이사입니다. 선생님께서 1998년 교직에서 퇴직하시고 나서 후진 양성을 위해 "혜암아동문학회"를 설립하셨는데, 설립 목적과 지금까지의 운영 과정 그리고 올해로 제5회를 맞이하는 '혜암아동문학상을 제정한 연유와 기금 마련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1998년에 교직에서 퇴임을 하면서, 제가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아동문학을 오래 했으니 아동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싶었습니다. 도서관 복지관 교회 등을 찾아갔으나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장소를 찾던 중 그루출판사 이은재 사장께 이야기했더니, 우리 사무실에서 하라고 했습니다. 2003년 9월에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란 이름으로 강좌를 개설, 월요일 오전반, 화요일 오후반으로 나누어 무료로 강의를 했습니다. 이은재 사장님도 넉넉하지 않은 데도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수강생이 많아서 1년 뒤 수료생이 28명이나 되었습니다. 2004년 7월 10일 혜암아동문학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제가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란 이름으로 강의를 2003년부터 만 10년하고, 강좌 이름도 '혜암아동문학 교실'로 바꿔서 물려주었습니다. 오전 강의는 안영선 선생이 오후반 강의는 정순희 선생이 맡았습니다. 교재와 강의 자료를 그대로 물려주었고, 물려받은 선생님들도 무료 봉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강의하는 분이 오전반은 정순오 선생이, 오후반은 권영욱 선생이 맡고 있고, 20기가 수강을 하고 있습니다.

혜암아동문학상은 회원들이 성금을 내서 2회 혜암아동문학 시상을 하였습니다. 제가 오천만원 기부를 하였습니다. 4월 하순 아파트를 판매 마지막 대금을 받으면 2억을 문학상 기금으로 기부하려고 합니다. 신인을 발굴하는 신인문학상을 값지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선유 편집주간입니다. 후배 문인들에게 늘 귀감이 되시는 선생님의 향후 계획이 있으시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산 것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못 읽은 것 후회가 됩니다. 책을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남의 작품을 많이 읽으면 지헤롭게 생각하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력이 생기고, 동시 동화를 많이 읽으면 굳이 작법을 배우지 않아도 작품 쓰는 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일기를 쓰면 인생관이 달라지고 문장력을 기르는데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수강생들에게 우리들의 마음 가짐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정으로 산다. 둘째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 셋째 계속하면 열매을 맺는다. 등입니다.

닫는 시 낭송은 권수아 시인이 최춘해 선생의 '천년 후의 아이들'을 낭송 하였고,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폐회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