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해당하는 공공일조권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선 도심 햇볕 없는 한겨울 인도에는 한기가 들어

2023-01-17     최성규 기자

집을 마련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항목이 일조권이다. 집의 방향을 보는 이유도 결국엔 일조권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남향을 선호한다. 남향집은 겨울에 햇빛이 잘 들어와서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남쪽은 트이고 북쪽은 산이 에워싸고 있으면 명당이라고 한다. 반대로 남쪽에 높은 산이 있으면 해가 일찍 지고 춥다.

우리나라에는 뒤쪽에 산이 있고 앞쪽에 강이 있는 동네가 많다. 약간 비탈진 동네에다가 집들도 전부 나지막하여 어느 집이라도 햇빛이 안 들어오는 집이 없다. 한겨울에도 방문 앞 마루에 앉으면 남쪽에서 쏟아지는 햇볕에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든다. 어디에도 막힘이 없는 햇살은 우리 일상을 따뜻하게 해준다. 햇빛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침이 없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시대가 바뀌어 너도나도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심의 좁은 땅덩어리에 나지막한 단독주택으로써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집의 형태가 이름하여 ‘아파트’였다. 초창기의 5층짜리 저층 아파트는 도시의 일조를 별로 침해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10층짜리 아파트가 생기더니, 이제는 3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도시를 뒤덮었다.

아파트가 높이 올라가게 되면서, 어느 동호수가 일조가 좋으냐 나쁘냐를 따진다. 조망은 둘째치더라도 우선은 일조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은 삶의 질을 저하한다. 아파트를 짓는 시공사는 통상적으로 하루 4시간의 일조권으로 확보하는 것을 최저 기준으로 삼는다. 거주자의 최소한의 밝은 삶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할까.

하지만, 공공일조권으로 넘어가 보자. 개인이 소유한 주택에서의 일조권이 아닌, 집 밖으로 나왔을 때의 도심 일조권을 공공일조권이라 하자. 대구의 일번지라 칭하는 범어네거리를 걸어보자. 지금은 한겨울이라 공공일조권을 가장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네거리 남측에 거대한 초고층 아파트가 골조를 완성하면서 햇빛을 차단한다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다. 그늘이 되어버린 길을 걷노라면 한기가 온몸을 에워싼다.

범어네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번듯한 번화가에는 대부분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너도나도 하늘 높이 키재기를 한다. 인도를 온통 그늘로 만들어버려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걷는 사람들에게는 일조권이 없다. 한겨울 그늘에서의 추위 따위는 오로지 개인의 몫일 뿐이다. 그것이 싫으면 집에 틀어박혀 살아야 한다.

인간들이 설계한 도시의 난개발이 낳은 결과는 인간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공공일조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누가 해줄 것인가. 도심을 걷는 시민들에게도 일조권이 필요하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일조권이기 때문이다. 햇빛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축복이다.

우리의 일조권을 돌리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