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4)

생때같은 아들까지 딸려서 아깝다 하질 않고 공으로 내어 주잖는가? 동네 아낙네들이 모인 모양새가 참새와 방앗간만 같다 곤하게 잠든 아기를 내려다볼 때면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고 했다

2022-12-12     이원선 기자
9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이다. 내일이다. 전줄 게 뭐에 있노! 푸닥거리 차 멍석도 깔아 놓았겠다. 기왕에 수양딸로 삼기로 한 것, 사위 내외가 올리는 첫 절도 받고 술도 한 잔 달게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데 멀쩡한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으로 울렁거린다. 괜한 무안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데

“내~ 그래 천덕꾸러기에 구박-덩어리 하나를 억지로 떠안기는 죄 닦음도 할 겸, 지난 잔치 때 못 불러 진 빚을 늦게나마 갚을 겸, 겸사겸사해서 오늘 당장에 예를 갖출 의복과 마음의 준비를 하라 일렀네! 고기 장만도 전만 못하고 술이라고는 메주 같은 솜씨에 가양주로 이제 막 한 주전자 걸렀다네! 산칸수(산간수로 1960대를 전후한 산림 보호 서기보로 산림을 훼손한 사람을 색출하는 자로서 세무서에서 파견된 밀주 단속자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놈들의 등쌀을 피해 보고자 지난 잔치 때처럼 술도가에 들려 술도 얼마간 샀다네! 만일에 대비해서 한 됫박을 사서는 연막을 피웠다네! 향기는 전날같이 그런대로 풍기는데 맛은 어떨지! 어떻게 찰지게 잘 익었을까나 모르겠네!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할 거네! 사람도 전만 못하고 상차림도 전만 못하다고 원금이 어떻고 이자가 어떻다고 따지지는 말게! 그래도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암탉으로 두어 마리는 잡았을 거구먼! 대신 딸내민지, 애물단지지 모르겠다만 하여간 내 집 살붙이지만 생때같은 아들까지 딸려서 아깝다 하질 않고 공으로 내어 주잖는가?”하는데 할머니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다가 문득 절에, 예복이라는 말에

“그럼 나도 옷이라도 네거리 차림으로 갈아입고!”하고는 일어서려는데
“자네는 그만하면 됐네! 혹 방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바뀌어서 문고리를 닫아걸면 나는 어떡하라고!”하며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데는 불가항력이다. 마지 못한 할머니가 영천댁의 안내에 따라 삽짝을 나선다. 잔걸음으로 고샅을 따라서 걷는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포승줄에 결박당한 듯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새가 기가 차다. 비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가을날 연전연패 끝에 구리산에 갇혀 초가(楚歌)를 듣는 항우(項羽)의 심정만 같아 찹찹하기가 그지없다. 슬하에 자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데 막상 눈앞으로 닥치고 보니 두렵기만 하다.

고모가 병석 턴 이래 마을로 다니고 나서는 한참이나 잊었던 딸이란 단어에 할머니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이 참인지,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 진실한 철학인지는 알 길이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런데 어째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 배로 내지른 딸아이는 악으로 버틴 세월에 개미조차 가엽게 여기지만 몸에 병이 들어 부실하다. 한데 곧장 수양딸로 받아들일 영천댁은 착하던 사람이 모질게 변해가며 마음의 병을 얻어 아프단다. 십수 년은 족히 어두운 터널을 지나와 겨우 숨을 쉴만한데 또 병치레에 병구완을 책임지란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또 어떤 약방문에 어떤 약을 써야 하는지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그러한 앞날에 대한 근심 걱정은 뒷전으로 잘 짜진 각본에 따라 못 이기는 척 동조하란다. 야속하게도 옷을 갈아입을 수조차 없단다. 돌아서고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보지만 어림없다. 뒤를 막아 청솔댁이 어느새 후미를 따르고 있다.

할머니의 어두운 마음과는 달리 아이들은 마냥 좋은가 보다. 입에 짝짝 달라붙던 임~마! 젓~마에서 형님, 형아~, 동생이란 호칭이 난무하고 있다. 입에 생경한 듯도 한데 그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 뱃구레에 힘이 들어갔는지 골목이 떠나갈 듯하여

“야~ 임마! 아니지 형아~지! 그렇지 오늘부터 인제 남이 아니 제? 친척 이제?”하는 말에 이어 아이들의 자자구구한 말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귓전에서 자글자글하다. 아이들의 호칭 정리가 왁자지껄, 다소 심각한 듯 보여도 듣는 할머니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어느새 마음으로 동조하여 주름진 얼굴 위로 웃음기가 감돈다. 가양주가 달짝지근한지 어쩐지 구수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에 따라 이야기도 열기를 더해간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구름 걷힌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 유난을 떠는 밤이 삼경으로 내쳐 달린다. 동네 아낙네들이 모인 모양새가 참새와 방앗간만 같다.

할머니가 청솔댁의 임종 내력이 궁금하여

“애~야! 어떻게 되었기에 형님은 기침도 매침도 없이 그렇게 쉬 가셨나?”

“어머님 그게 요!”하고 영천댁이 어깨를 들썩여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전에 없이 점심으로 밥 한 주발을 달게 드시고는 오수(午睡)를 즐기시려는지 늘어지게 하품 두어 자락을 남기고는 안방으로 들어간 청솔댁이라 했다, 한데 그 시간이 전에 없이 길더란다. 하마나(‘이제나 저제나’의 방언), 하마나 하다가 오후 새참 시간이 될 때까지 기침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벌써 체온이 식어가고 있더란다. 당신께서는 복을 받은 듯, 주무시는 듯 가셨다지만 그 흔한 유언 한마디가 없어 못내 서운하다는 영천댁은 김천댁이 그저 부럽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유언을 고스란히 전해 들은 김천댁은 복 받은 며느리라며 울먹거리더니

“에~고 불쌍하신 우리 어머님!”하고는 멍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다가 이마로 늘어진 애교머리를 손바닥으로 살짝 쓴다. 습관처럼 눈가를 소맷자락으로 훔친 뒤 자신도 엄연한 시어머니의 며느리인데! 사람이 살아가는 60여 년의 세월이 짧다고들 노래하여, 서산대사는 “生也一片 浮雲起(생야일편 부운기)로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 浮雲滅(사야일편 부운멸)로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니”라 하고 사람마다 달라 어떤 이는 풀잎에 맺히는 이슬이라 하고, 또 누구는 한 줄기 바람이라 하고, 문틈으로 흰말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생을 통해 별의별 일을 다 겪는 중에 당연히 맞이할 일을 두고 마음먹은바 조차 세월이 모질어 행할 수가 없었다는 영천댁은 남들처럼 대소변이라도 알뜰살뜰 정성으로 받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손자, 손자 타령으로 밤낮없이 산천을 헤매고 갖은 양밥(양법의 방언으로 귀신들에게 바치는 밥과 제물 따위)과 비방, 비책 등으로 극성일 때는 속으로 생무에 심이 박히듯 가슴속으로 증오의 심지가 내리는 듯도 했다. 한데 아들을 해산하는 순간 가슴속으로 겹겹이 싸였던 미운 정은 어디로 가고 고맙고도 감사하기가 한이 없었다고 했다. 시어머니 덕에 며느리로 당당하여 이제 진짜 어머니가 되었구나! 하는 가슴 뿌듯함에 감격의 눈물이 절로 흘렀다고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듯 땅에서 솟은 듯 품 안에서 곤하게 잠든 아기를 내려다볼 때면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고 했다. 언제고 노년으로 접어들어 근력이 떨어지면 꼭 보답해야 한다 생각했다고 했다. 한데 그 기회마저 앗아간 시어머니가 한없이 야속하다고 말하는 영천댁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 주위가 벌겋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토록 바라시던 손자를 안겨드린 것으로 마음의 위안 삼는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반년만 더 사셨더라면 둘째 손자를 안겨드릴 수 있을 텐데 뭐에 그리 바삐 가셨냐며 영천댁은 못다 한 효를 두고 여전히 미련이 남는지 가슴을 뜯으며 애달아 했다.

할머니도 하관에 이어

“취토요!”하고 방금 파헤쳐진 벌건 황토가 상주의 옷자락을 벗어나 관을 뒤덮을 때다. ‘儒人慶州金氏之棺’이라고 큼지막한 글씨가 하얗게 박히듯 쓰인 검붉은 명정 위를 좀이 먹듯 흙으로 뒤덮어갈 때 뒤편으로 의자 모양의 나무그루터기 위에 올라앉아

“성~님요! 이 세상에 내팽개치듯 홀로 남은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라 구요! 망망대해에 일엽편주 모양 남겨진 이 동~상은 외로워서 어떻게 살라 구요!”하며 가슴을 부여잡고 얼마나 눈물을 지었는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