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시니어] (186) 요양시설을 바라보는 노년세대

2022-10-05     김교환 기자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어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 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신대요

아 ... 솔잎은 뿌려서 뭐 하신대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길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고려장으로 노모가 아들 등에 업혀서 산을 오르고 있다. 죽으러 가는 줄 알면서도 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돌아갈 길에 솔잎을 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응어리진 절규를 가슴속 깊은 곳에서 토해낸다. 구슬픈 해금 소리 장단과 함께 힘든 세상살이의 애절함과 서민들의 삶을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장사익(74세)의 ‘꽃구경’ 노랫말이다. 흰 두루마기에 깊게 파인 주름, 적당히 기른 턱수염이 영락없는 순박한 시골 농부의 콘셉트로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生)노(老)병(病)사(死)를 거쳐 간다. 자연의 섭리 속에서 펼쳐지는 한갓 드라마와도 같은 인생사.... 오늘 아침 노인인구 900만에 3년 뒤 초고령사회가 된다는 뉴스를 보며 ‘현대판 고려장’ 또는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요양시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인터넷으로 떠도는 작은 요양원에서 어느 할머니가 남긴 글을 간추려서 옮겨본다.

“당신들에게 나는 초점 없는 눈을 가진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 노인으로 보이겠지? 음식을 질질 흘리고 대답도 빨리 못하고 내 뜻과 무관하게 목욕을 시킬 때도 설거지통 그릇만도 못한 내 모습에 눈물도 쏟아냈지만, 흐르는 물에 감추어져 당신들에겐 보이지 않았겠지! 음식을 그냥 먹여 주는 당신들의 눈에는 가축보다 못한 노인으로 비추어졌던가?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내 의지가 아닌 당신들의 의지대로 먹고, 아픔을 삭여야 했던 내가 누구인지 ...”

인생길의 마지막은 이같이 무의미한 삶에서부터 종말엔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연명치료에 매달려 고통 받다가 가는 허무한 임종으로 끝을 맺는다. 늙은 부모가 귀찮아 돈 몇 푼이면, 해결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요양시설로 보내어지는 부모님의 슬픈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자식들의 면전에서, 애써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는 부모님의 그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살던 곳에서 낯익은 이웃들과 함께 서로 도와가며 살기를 원한다.

따라서 인권 보장과 자립생활을 최대한 보장받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이 노인복지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요양 시설이라면 집처럼 익숙한 생활의 장이 되도록 할 수는 없을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가정과 같은 생활공간을 원한다.

늙은이들도 속에는 아직 어린애 같은 마음이 있어 가끔씩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 젊은 시절처럼 사랑도 하고 싶은 꿈도 있다. 즐거웠거나 고통스러웠던 일들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취미생활을 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나이 많다고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