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미스코리아를 통해 본 ‘미의 기준’

여성이 마르고 날씬해야 아름답다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왜 만들어 낸 것일까. 21세기에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가 그 외모 그대로 환생 한다면 과연 최고의 미녀라고 칭송 받을 수 있을까?

2021-11-30     장기성 기자

올해 ‘제65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지난주 오늘(22일) 미스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과 중국 빌리빌리(BILI BILI)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중개됐다. 대부분 한국 시청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갔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는 대회다. 올해 미인 선발대회에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숨어서 하는 걸까?

‘미’(美)란 감각적인 기쁨을 주는 특성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화(調和)의 상태라 흔히 말한다. 미의 기준은 불변하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미는 자연 속의 사물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소박한 인상으로부터, 예술작품에 대해 갖는 감동의 감흥, 혹은 인간행위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와 해석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미를 절대화하여 미인을 뽑으며, 그를 ’미인’이라고 부를까?

미인대회라고 하면 ‘미스코리아’를 떠올리게 된다. 이 선발대회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기관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미스코리아 선발의 궤적을 통해서 ‘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한번 보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대한민국의 미인대회로 1957년에 시작됐다. 미스코리아에서 입상하면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 미스 인터내셔널 등과 같은 국제 미인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미스코리아의 1등, 2등, 3등은 각각 '진선미'라고 불린다. 진(眞)은 참됨, 선(善)은 착함, 그리고 미(美)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미인대회인데 왜 미가 3위인지에 대해 의아할 수 있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영혼3분설’에 기반한 심미적 아름다움의 기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입장에서 보자면, 외적 아름다움인 미(美)보다는 참됨 즉 진리가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정의했기 때문이다.

2012

일단 선발되면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사절로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미스코리아 입상 경력을 바탕으로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대회에서 입상만 해도 좋은 집안에 시집갈 기회가 높았기 때문에 계층이동의 수단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심사과정에서 뇌물 수수 사실이 밝혀지고 대중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후보자들이 입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최고 권위 ‘미의 제전’이라는 위상이 흔들렸고, 주최사인 한국일보의 평판도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1972년부터 지상파방송에서 생중계되던 미스코리아 본선 중계방송이 2002년부터 중단되고 케이블 방송으로 전환되었다. 급기야 2019년 대회부터는 케이블 방송에서도 중계를 포기했고 지금은 오직 유튜브 온라인으로만 생중계되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중국

미스코리아가 미인대회로서의 위상의 하락세는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여성의 성 상품화 논란은 이런 미스코리아 대회의 평가 하락에 기폭제가 되었다. 가난한 여성이 확실한 신분상승을 이룰 유일한 방법이 미인대회 입상자가 되는 국가라면, 미인대회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누구든 노력하면 그럴듯한 직장을 가질 수 있다면 굳이 불안정한 미인대회를 통한 연예인의 길을 걷기 위해 돈까지 들여 미인대회에 나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미인대회의 위상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발전이 뒤쳐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지 못한 나라들이다. 인도, 베네수엘라, 필리핀에서의 미인대회 위상과 서유럽 선진국에서의 미인대회 위상이 어떤지 생각해보면 저절로 답이 나온다. 따라서 미인 대회의 입지는 앞으로 서유럽 선진국들처럼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인의 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란 점이다. 미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딱 봐도 옛날의 미인도(美人圖) 속 여인과 현재 미스코리아로 뽑힌 여성들의 외모는 현저히 다르다. 이것은 시대에 따른 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에는 굶주림에 대비해 지방을 축척하고 다산(多産)을 할 수 있는 몸매를 지닌 여성을 미인이라 하여, 절구 형에 비만한 히프, 풍만한 가슴과 배를 가진 여성들이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탄력 있는 몸매, 사과모양의 가슴,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지닌 여인들이 미인이었다. 화려하고 야한 화장이 유행했던 로마시대에는 일자 눈썹, 하얀 치아에 날씬하고 털 없는 몸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칭송 받았다. 또한, 중세 유럽에서는 순결한 여인의 모습이 미인으로 인정받아 작은 가슴과 흰 살결이 중요시 되었고, 르네상스시대에는 원뿔 모양으로 솟은 가슴과 통통한 턱, 풍만한 허벅지가 미의 기준이 되었다. 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세기말 분위기에 맞춰 핏기 없는 피부에 야윈 몸을 지닌 연인을 미인이라 여겼다.

18세기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지만 고혹적인 자태가 드러나는 이런 모습이 당시 조선의 미인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미의 기준은 점차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동양 특유의 작고 오밀조밀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서구의 크고 굵은 이목구비가 미의 기준이 되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자연(自然)미인’이 미의 기준으로 큰 영향을 미쳤지만 요즘은 의학의 힘을 빌려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게 된, 이른 바 ‘인조(人造)미인’의 아름다움도 인정하는 추세로 진화했다.

사실 미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아름답다'라는 것은 느낌을 형용하는 단어이므로 각자의 주관적 기준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잖은 여성들이 절대적 미를 추구하고 갈망한다. 이것은 비단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쌍꺼풀 있는 눈이 아름답다고 하여 작고 외꺼풀인 눈이 매체에서 사라지더니, 또 다시 최근에는 외꺼풀인 눈이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고도 한다. 하지만 모든 여성들이 천편일률적인 문화의 억압과 굴레에 종속되는 미인이 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온통 김태희와 전지현의 용모를 닮아 있다면, 이 또한 비극이요 불행이다. 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장미는 장미대로 개망초는 개망초대로 아름답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한들 온 세상이 붉은 장미로 뒤덮여 버린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중요한 것은 제비꽃과 개나리가, 장미와 수선화가 서로의 향과 빛깔을 해치지 않으면서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내세우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한결같이 스키니한 몸매를 자랑한다. 당대 문화의 굴레가 만들어놓은 억압의 한 표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