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㉓ 집념과 열정의 억척 농업인 길윤균 씨(2)

길윤균(78) 씨는 잘 사는 농촌 만들기 위해 14년간 비닐하우스 채소, 오이재배를 하였고, 그 후 20여 년은 어려운 양봉을 하며 아들딸 삼남매를 대학까지 교육시켰으며,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효심이 남다르다며 흡족해한다

2021-08-31     유병길 기자
벌통안의

1944년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오 남매 맏아들로 태어난 길윤균(78)씨. 배고픔의 고통을 극복하며 상주 중학교(8km)를 3년 동안 걸어서 다녔다. 남적리 고개를 넘어서 새마 정철 이천에 있는 선배 후배들과 같이 힘들게 등하교를 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였다. 군 복무기간 제외하고 지금까지 고향에서 결혼하여 잘 사는 농촌을 위하여 노력하며 살아 왔었다.

1980년대 윤균 씨는 동네 동생들과 같이 보다 잘 사는 농촌의 삶을 위하여 선진지 견학을 다니며 신기술을 배웠다. 86년 대나무비닐하우스를 지어 고추 재배를 시작하였으나 처음이라 힘들었다. 친동생(용균)과 같이 대관령 고랭지 고추 모를 사다 심었으나 재배기술 부족인가 수량이 적었다.

90년 저금리 농협 융자를 받아 쇠 파이프 연동 비닐하우스를 짓고 . 오이 농사를 하는 동생들과 같이 오이 농사를 시작하였다. 온풍기를 달고 겨울 오이 농사로 소득을 올리자, 오이 재배 농가 외 비닐하우스가 늘어나 오이 가지 고추 등 채소 농사로 소득을 올렸다. 벼농사보다 소득은 높았으나 비닐하우스 속의 농작업이 너무 힘들어 14년 만에 다른 소득작목을 알아보았다.

미리

2001년 벌 2통을 사서 연동 비닐하우스 터에 놓고 돌보며 벌을 산 농가에서 하나하나 배웠다. 처음에는 벌에 쏘일까? 겁도 많이 났었다. 아카시아꿀, 밤꿀, 잡화꿀 채밀의 맛을 보았다. 배운 대로 보온을 잘하여 월동 피해가 없었다. 02년 2통을 더 사 4통에서 4통을 분봉하여 8통으로 늘어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아카시아꿀,

산야의 아카시아꽃이 아카시아꿀 최대 밀 원이었다. 그때는 제주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철원까지 아카시아꽃 개화기를 따라 이동식 양봉을 하는 농가도 많았다.

 

밤꽃.

밤꽃에서 밤꿀을 뜨고 그 외 야생화에서 잡화꿀을 떴다. 꽃이 없을 때는 설탕물 사양을 하였고, 겨울에는 월동사양(벌통당 설탕 7.5kg 소요)을 하고 보온에 최선 다하였다.

농업기술센터 양봉 영농교육에 매년 참석하고, 양봉원, 대 농가를 찾아다니며 양봉 신기술을 계속 배웠다.

인공왕대에 여왕벌을 키워 빈 벌통에 강군 벌통의 소비를 1~2장 넣고 내일쯤 태어날 여왕벌을 부착시켜 분봉을 하였다. 일주일에 한번 내검을 하여 여왕벌을 제거하여 자연 분봉을 방지하였다. 여왕벌의 수명은 3~4년이나 2년째는 산란이 떨어져 매년 여왕벌을 교체한단다.

아카시사꽃.

윤균 씨는 꿀 채취를 원칙 되로 하고 있다. 4월 하순 아카시아꽃이 피고 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겨울에 사양하여 벌통에 남아있는 꿀은 채밀기로 다 빼고 아카시아꿀을 받는다. 벌집에 가득하여 수분이 날아가면 채밀기로 꿀을 채취하여 판매를 하였다. 양봉원에서 꿀 순도검사를 하여 순도가 떨어지는 꿀로 판명이 되면 그 농가의 꿀은 판매할 수가 없단다.

자동

윤균 씨 꿀은 한번 먹어본 사람은 매년 주문하고 있다. 대구 상인동에 사는 구 여사(67)는 윤균 씨 꿀을 사 먹어보고 친구들한테도 소개하여 매년 6~7말씩 십여 년 사서 먹고 있단다.

08년에 최대 180여 통이 되었다. 무리하게 더 이상은 늘리지 않고 벌통을 판매하였다. 벌에도 병해충(응애. 진드기, 등)과 말벌 방제를 하지 않으면 피해가 심하였다.

벌을

화분, 로얄젤리 대신 노동력이 다소 적게 더는 프로폴리스(벌집에 균 번식억제를 위해 벌이 만든 천연항생제) 채취에 역점을 두고 있다. 봄에 벌통 나무 뚜껑 안 벌통을 덮는 개포천 안에 프로폴리스 망을 넣어 덮으면 벌들이 벌통 안에 병균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프로폴리스를 바르게 된다.

망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벌통 안의 망을 떼어 망을 비비면 붙은 프로폴리스가 떨어진다.

 

프로폴리스

꿀 병에 프로폴리스 가루를 넣고 식용 알콜을 부어 3~4개월 아침 저녁 계속 흔들어 주면 병 위에 맑게 뜬 프로폴리스 원액을 채취할 수가 있다. 꿀 병으로도 팔고 스포이트가 있는 작은 병에 넣어 판매도 하였다.

대구 북구에 사는 고객이 모 목욕탕 여탕에서 윤균 씨 꿀이 진열된 것을 보고 사진을 찍고 주인한테 어디서 구입 하였는가? 물었는데 누가 팔아달라고 진열하였다고 얼버무렸단다. 상표를 도용한 가짜 꿀이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연락을 받은 윤균 씨 부부는 목욕탕을 찾아 부인이 들어갔으나 꿀은 없었단다. 윤균 씨 꿀이 유명하다 보니 이런 소동도 있었다. 16년 병해충 피해로 벌통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100여 통을 사육하고 있다.

이상기후의 영향인가 19년부터 올해까지 3년 동안 아카시아꽃에 꿀이 없어 벌들이 일을 안 하여 꿀을 떨 수가 없는 것이 전국적인 현실이었다. 양봉 농가가 제일 힘든 것은  자금과 노동력은 계속 투자 되어야 하는데 꿀 생산량이 없을 때이다.  서울 대구 부산 지역에 있는 단골들에게 꿀을 줄 수가 없어서 많이 미안하였단다.

체력이 달려 100여 통 사육에도 힘이 들지만, 20여 년 벌들과의 사랑, 고객들과의 맺은 정 때문에 손을 놓기가 힘이 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