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 세조길을 가다(상) : 말티재와 정이품송

아흔아홉 구비라 불리는 말티재 세조가 소나기를 피한 정이품송

2021-04-12     김정호 기자
세조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의 엄중한 시기에 방콕만 할 수는 없었다. 햇빛이 고운 일요일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세조길을 찾았다. 대구지방에는 이미 벚꽃과 진달래가 지고 없는 4월인데도 내륙인 이곳은 벚꽃, 진달래가 한창이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간 곳이 속리산 법주사와 복천암이다. 기자의 고향인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음으로 자연스럽게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세조길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안질과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요양차 다녀간 길이라고 해서 세조길로 명명되었다. 세조길은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 장재리에서 시작하여 법주사의 말사인 복천암까지의 길을 말한다.

행궁터

말티재란 이름은 세조가 법주사로 가던 중 외속리면 장재리에 있던 별궁에서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별궁은 없어지고 별궁터라는 안내 표석만 덩그러니 옛날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말티재

말티재 전망대는 정상인 보은성 위에 있다. 차에서 내려 전망대를 오른다. 코로나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린다. 마스크를 단단히 챙겨 쓰고 전망대에 오른다.

보은성

말티재는 세속에서 이르기를 아흔아홉 구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구비는 아니다. 그렇지만 구렁이가 하늘로 기어오르는 형상을 한 말티재를 승용차로 오르기에는 지금도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망대에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말티재는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다. 굽이치는 그 길을 옛사람들은 어떻게 올랐을까.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풍경이다.

말티재에서 다시 출발하여 4Km쯤 법주사 방향으로 가면 정2품송이 자리하고 있다. 50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체 높은 소나무에 경외감마저 든다. 정2품은 옛날 판서, 지금의 장관 벼슬에 해당한다. 고위관직의 지체 높으신 어른이시다. 소나무가 정2품 벼슬을 어찌 받았을까?

정2품송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하실 때 일이다. 우산 모양의 큰 소나무 아래 가지가 임금이 탄 가마에 걸릴까 염려하여 선두 행렬이 “연 걸린다”라고 크게 외치자 그 말을 알아들은 듯 가지가 스스로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렸다고 한다. 덕분에 임금이 탄 가마는 무사히 통과하였다. 세조가 요양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갈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비를 피한 나무가 또 이 소나무다. 그때 세조가 “오며 가며 너의 신세를 많이 지는구나”하고 고마워하며 이 소나무에 정2품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정2품송

정2품송의 풍채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혀 늠름하였지만 500년 풍우에 시달려 지금은 한쪽 가지가 뭉텅 잘려나간 모습이다. 제행무상이던가. 500년을 한 지리에서 지켜온 정2품송 앞에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한다.

다음 행선지인 법주사를 향해 세조길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