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명례(明禮)성당
1896년 영남 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에서는 첫 번째로 본당이 설립된 곳 복자이자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가 출생한 영적 고향 및 신앙의 원천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3번째 방인 사제 강성삼 신부가 사목하다 돌아가신 곳 경남 문화재자료 제526호로 지정된 초기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명례성당(明禮聖堂)은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변 언덕인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3번지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어 낙동강을 조망할 수있는 아름다운 성지이다 이곳은 밀양과 김해를 잇는 강나루가 있던 곳으로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다. 천주교 마산교구의 영적 고향이며 신앙의 원천이기도 하며,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가 출생한 곳으로, 1896년 설립한 마산교구의 첫번째 본당이자 영남 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다. 또한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방인 사제인 강성삼 신부가 사목하다 돌아가신 곳이다.
순교자 신석복(申錫福) 마르코는 1828년 밀양의 명례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지으면서 누룩과 소금행상을 하면서 밀양에서 김해로 나가려면 명례나루터를 건너야 했는데 이곳은 늘 사람들이 붐볐고, 박해를 피해온 교우들도 정착해서 살았는데 이들의 권면으로 신자가 됐다. 그의 신앙생활 10여년 정도 지날 무렵인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은 명례로 들이닥쳐 그의 집을 찾아낸 뒤 재산을 탈취했다. 그리고 창원 마포에 장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를 체포하여 밀양으로 압송했다.
그후 순교자의 아들인 신영순 이냐시오가 대구로 가서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부친의 유해를 찾아 모셔왔지만 박해의 여파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두려워하는 지방 유지들과 신씨 문중의 반대로 고향 땅에 안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 노루목에 안장했다. 그로부터 110여년이 지난 1975년 진영 본당 신자들은 순교자의 묘가 야산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본당 공원묘역으로 이장했다.
그후 2006년 김해 진영성당에 부임한 이제민신부가 축사로 변해버린 순교자의 생가 터를 발견한 뒤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 4월 매입한 입구의 한옥을 보수해 그해 8월 강성삼신부의 세례명을 따라 라우렌시오의 집으로 명명했다. 2008년 신석복 순교자의 생가 터 인근에 있는 명례성당을 성역화하기 위해 명례성지조성추진위원회(위원장 이제민 신부)를 설립하고 이듬해 8월부터 매주 토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교우들에게 명례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하며 5천여명의 신자들의 후원으로 성금을 모아 2010년 개인축사로 변해버린 순교자의 생가 터와 주변 일대를 매입하고 8월에 야외 돌제대를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