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떠나는 성지순례] 우리나라 천주교 신앙의 뿌리, 경북 봉화 우곡 성지

세례자 요한처럼 한국 천주교의 길을 닦은 사람 한국천주교회의 시작이자 신앙의 뿌리, 농은 홍유한

2020-08-07     강효금
우곡

 

농은 홍유한이 잠든 곳, 우곡 성지

 

우곡 성지는 경북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문수산 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막다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농은 홍유한(1726~1785)’ 우리에게 조금 낯선 이름. 우곡 성지는 그의 묘소를 품고 있다. 홍유한은 정조 임금의 외가인 ‘혜경궁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열여섯 되던 해에 성호 이익의 문하생이 되었다. 1750년경부터 이익의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하며 삶의 진리를 찾아 나섰다. 그는 유학자로 천주교의 삶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창립을 1779년으로 본다면, 그보다 30년 앞서 홍유한은 이미 신앙의 삶을 살았다.

 

농은

 

유학자로 천주교의 삶을 선택하다

 

홍유한은 '수덕자'라 불린다. 그는 정식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거나 교적에 오른 적이 없다. 천주교에 관련된 책을 읽고 창조주의 존재를 믿으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한 뒤, 그는 혼자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천주를 위해 봉헌했다. 축일표도 기도서도 없었지만 매월 7· 14· 21· 28일 칠 일째 되는 날을 주일로 정해, 그날은 세속적인 일을 그만두고 기도와 묵상으로 채웠다. 또한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는 정확한 날을 알지 못하자, 대신 밥상에 오른 가장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규칙을 삼았다.

 

‘칠극’을

 

칠극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열다

 

‘칠극’은 스페인 출신 예수회 신부인 판토하(1571~1618) 가 쓴 교리서로, 일곱 가지 죄의 씨앗인 ‘칠죄종’을 이겨내고 하느님 나라로 향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책이다. 홍유한은 세례를 받진 않았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책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데 힘썼다.

제1극 복오(伏傲): 교만을 억누르다

제2극 평투(平妬): 질투를 가라앉히다

제3극 해탐(解貪): 탐욕을 풀다

제4극 식분(熄忿): 분노를 없애다

제5극 색도(塞饕): 탐을 내어 먹고 마시는 것을 막아내다

제6극 방음(防淫): 음란함을 막아내다

제7극 책태(策怠): 게으름을 채찍질하다

 

농은

 

세례도 받지 않고 순교자도 아니었지만 한국 천주교의 시작이 되다

 

우곡 성지를 조성하는데 앞장섰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한상덕 안토니오 신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홍유한 선생은 세례를 받지 않았고 순교자도 아니에요. 신부님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신 분이 있었지요.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하신 똑같은 역할을 하신 분이 홍유한 선생이에요. 한국천주교회에서 기록은 이승훈에게서 출발하지만, 실제 출발은 홍유한 선생에게서 시작되지요. 홍유한 선생은 예수회 신부님이 쓰신 책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 후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양심적인 생활을 하면서, 양반이었지만 반상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하느님의 자녀로 보았습니다. 신자들은 하느님과 외인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나눌 줄 알아야 하지요. 그런 면에서 농은 선생은 선량하게 생활하고 모든 것을 떠날 만큼, 하느님을 가까이 한 분이었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하느님 때문에 모든 것을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분의 삶이 그러한 것들을 말해주고 있지요.”

 

농은은

 

유학자이면서

 

 

 

이 기사의 사진은 이성호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성호 작가는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개인전

2019 가톨릭 성지, 1898갤러리, 서울

2019 가톨릭 성지, CU갤러리, 대구

2017 정미소 프로젝트, 대심정미소복합문화공간, 예천

2016 空,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5 空, 갤러리 나우, 서울

2012 청도 유등축제 초대전, 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