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괜찮다! 신드럼(syndrome)

2020-05-06     조신호 기자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 모가면 물류 창고 공사 현장에 큰 불이 났다. 검은 화염 속에 38명이 죽고, 부상 입은 18명이 입원 중이다. 우레탄 인화성 물질을 옆에 두고 무모하게 용접 작업을 강행한 결과였다.

이번 화재 역시 원청과 하청의 관계, 건축 자재, 무리한 시공 과정, 행정지도 무시,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이 모든 원인을 한 가지로 압축하면, 한국인들에게 깊이 스며든 고질병, ‘괜찮다!’ 증후군(症候群;syndrome)이다. 이 병은 원칙을 지켜야 할 때, ‘괜찮다! (적당히 해도 된다.) 괜찮다!’ 라고 집단 최면을 걸어 이성을 마비시키는 나쁜 관행이다. 그 결과 십중팔구 동일 유형의 사고가 일어난다. 많은 사람이 죽어도 또 다시 ‘괜찮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전염병이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괜찮다 증후군’ 배후에는 항상 돈이라는 귀신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물류창고 화재에도, 원청과 하청의 모순 속에 돈이 숨어있고, 수준 미달의 자재와 속전속결로 강행되는 공정(工程) 과정에 사이에 돈이 숨어있고, 행정 지시와 묵살이라는 관행 그 사이에 돈이 숨어있었다. 우레탄 작업을 하면서 옆에서 동시에 용접 작업을 해도 ‘괜찮다’고 귀신이 속삭였을 것이다. ‘적당히 해도 괜찮다!’ 라는 마약 주사의 위력이 어김없이 드러난 것이다.

어떤 이는 우리 민족에게 적당히 눈가림하는 식민지 노예근성이 있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중동지역은 물론, 동남아 건설 현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발휘해 왔다. 그것이 굴지의 외국 감리 회사 덕분에 얻게 되는 결과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지키는 눈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면, 얼마나 후안무치한 처사인가? 철두철미한 관리는 해외용이고, 적당히 넘어가는 ‘괜찮다’는 국내용이라면, 이중 인격적인 모순이고, 양심 불량이다.

사람답게 사는 이들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다.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좌우명으로 “삼언십이자(三言十二字)”, 즉 3글자 4문장, 총 12글자를 크게 써놓고 늘 실천했다. ①간사한 생각을 없애고(思無邪), ②혼자 있을 때라도 언행을 조심하며(愼其獨), ③스스로에 대한 속임을 없애고(無自欺), ④사람을 대함에 불경함이 없어야(毋不敬)한다. 이중에서 무자기(毋自欺), 즉 ‘자기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에 철저해도 이중인격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가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 유산을 이어받지 못하는가? 심지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큰 산의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보지 않고, 어느 한쪽만 보는 졸렬함에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퇴계 선생은 공자라는 큰 산의 양지와 음지뿐만 아니라, 그 속 깊은 광맥을 투시하며 철저하게 실천했던 민족의 스승이었다.

이제라도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다! 라는 모순, 그 고질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로나19를 잘 이겨내는 것처럼 이 고질병도 극복하는 민족이 되면 좋겠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건설 공사와 감리를 모두 우리가 전담하면서 세계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