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도시농업] 정든 교단서 내려와 구수한 흙냄새 맡죠

노부모와 함께 시간 보내고 구슬땀 흘리며 땅 일궈 행복 가족들 먹는 채소 직접 수확

2020-02-19     최해량 기자
황순기

 

◆명퇴 후 귀향 황순기 교장

정년퇴직이 4년이나 남은 황순기(58) 교장은 올해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황 교장은 지역 교육계에서는 학교 경영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학부모들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어온 사람이다. 아직 정년이 많이 남았는데 무슨 이유로 일찍 퇴임을 하려 했을까.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어렵사리 속내를 털어 놓았다.

"100세 시대에 남들은 조금이라도 더 현직에 있기를 원하는데 왜 몇 년이나 일찍 내려오려는지 물으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자도 부모가 돌아가시고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는데 나도 노부모님이 살아계신다. 아버지가 89세이고 어머니가 81세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고 건강도 안 좋아 지셨다”며 “그래서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부부가 의논해 명퇴를 결정했다”

부모가 늙으면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요즘 세상 인심인데 ‘자식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하기 위해 학교장도 마다하다니 너무 순진한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생 이모작 설계에서 행복한 삶의 실현에 무게를 실었다. ‘땅을 일구고 땀을 흘리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향을 찾으면 구수한 흙냄새가 좋았고 죽마고우 옛 친구들을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부모가 하시던 일을 곁에서 보고 자랐기에 농사가 낯설게 느끼지 않고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평생 몸담았던 교단에서 내려오기로 마음먹고 고향집을 오가며 흙과 친구할 준비를 학교 교감 시절부터 꾸준히 해왔다.

“안동은 대구에서 오가기에는 좀 먼 거리였건만 도심을 벗어나 맑은 공기 마시다보면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고향집 안마당에 이른다”며 “부모님께 인사한 뒤 팔 걷고 나가면 바로 텃밭”이라고 했다.

그는 밭에 가족이 먹는 채소는 손수 다 심는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상추며 쑥갓, 얼갈이 배추며 열무를 철따라 심는다. 유실수도 종류별로 한두 그루씩 골고루 심었다. 매실나무,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 보리수, 그리고 머루와 다래 농사도 짓는다. 건강에 좋다는 가시오가피나무와 꾸지뽕나무도 재배해 이제는 제법 잘 어우러진 농원을 만들었다.

“지난해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으니 올해는 더 많은 과실 수확이 기대돼 웃음이 절로 나온다”며 “틈내서 가족과 함께 여행도 하면 노후가 즐겁지 않겠나”고 소박한 꿈을 말하는 황 교장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