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걸었던 불굴사와 홍주암

원효대사가 수도하고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 염원 기도한 천연석굴 홍주암, 신라 천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호국도량, 갓바위와 마주보며 음양의 조화를 이룬 약사여래입상, 보물 제429호로 지정된 불굴사삼층석탑,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2020-02-13     장희자 기자

불굴사는 경북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강학리 5)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옥희(玉熙)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건물이 500동에 이르고 암자가 12곳, 물레방아가 8대 있었으며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번창하였다,

조선 영조 12년(1736)에 큰 비가 내려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졌다. 그 뒤 송광사에서 온 어느 노승이 중건하였지만, 불굴사는 과거의 사세를 찾지 못하고 결국 쇠퇴하여 은해사의 말사로 오늘에 이른다.

절이 갑자기 쇠퇴한 이유를 전하는 설화가 있다. 조선시대 들어 유생들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승려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횡포를 부려  불굴사는 곤욕을 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잖은 선비가 찾아왔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선비는 산 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 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일러주었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들은 대로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버렸다. 이후 작은 암자만 복원하여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사찰의 역사 중, 가장 최근에 밝혀진 것으로 1948년경에 백연아 보살이 쓰러져 가는 약사전에서 공덕을 드리며 이 절을 관리했다. 보살의 외손자인 회광스님(속명 김천석)이 사찰을 이어받아  인근의 불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 나가면서 가족과 신도의 힘을 모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운하게 되면서 본당을 완공했다. 

본당과 약사전·염불당·산신각·석탑·염화실·종무소 등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는 1965년 9월 1일보물 제429호로 지정된 불굴사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2001년 4월 3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1호로 지정된 약사여래입상과 석등·부도 등이 현존한다.

이 중 삼층석탑은 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7.43 m이다. 약사여래 입상은 머리에 모양이 족두리 비슷한 장식이 있어 주목받으며, 6㎞ 떨어진 팔공산 갓바위와 마주 본다고 하여 민간에서는 영험한 불상이라는 말이 있다.

주불전인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이 없고, 1988년 인도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 있다. 불굴사가 번성했던 시절의 옛 대웅전 자리를 찾아 적멸보궁을 짓고 안에 탑을 설치하였다.

약사여래입상(문화재자료 401호)은 약사전 건물 안에 봉안되었는데, 호사가들은 약 6km 떨어진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 불굴사 약사여래입상이 서로 마주 보며, 갓바위가 양(陽)이고 약사여래입상이 음(陰)이 되어 한 쌍을 이룬다고 한다.

사찰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우측 무학산자락에는 홍주암이라는 석굴이 있는데 거기에서 원효(元曉)대사가 수도했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도 이곳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다 천신(天神)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한다.

한편 이 석굴은 지난 1976년 석굴 내부를 보수하던 중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불상 1점이 발견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선본사 갓바위가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불굴사 홍주암이다.

홍주암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물러가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