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1억 4천만 원 짜리 바나나 소동

작품의 형상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에테르 같은 언어로 존재하는 무형의 작품, 그 상징성, 그 언어가 개념미술인가?

2019-12-23     조신호 기자

세계적인 미술품 전시·판매 행사인 제18회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2019. 12.5 ~ 8)가 연일 화제였다. 그 발단은 33개국에서 참가한 269개 화랑 중, 파리의 페로탕(Perrotin) 겔러리에 전시된 한 작품이었다. 18k '황금 변기(2016)'로 유명한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지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1960- )이 만든 ‘코미디언’이라 이 작품을 한 프랑스 수집가가 12만달러(약 1억4000만원)에 구입하면서 놀라운 뉴스가 되었다. 문제의 이 ‘작품’은 그저 덕테이프(duct tape)로 벽에 바나나를 붙여놓은 형태였다. 사람들이 ‘이게 예술작품이냐’ 라고 하면서 옆에서 사진을 찍었으며, 엄청나게 비싼 바나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또 하나의 화제는 현지 시간 7일, 미국의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 1974- )가 그 바나나를 뜯어내어 먹어버린 사건이었다.

12만 달러짜리 바나나를 먹은 데이비드 다투나는 뉴욕에 가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배가 고파서 먹었다.” 이것을 “헝그리 아티스트 퍼포먼스라고 부른다” 라고 했다. 그리고 “작가에게 미안하지 않다. 예술로 대화하는 것” 이라고 자신의 행위 예술을 자랑했다. 페로탕 갤러리 측도 그를 비난하거나 고소하지 않았다.

문제의 바나나가 없어지자, 갤러리 측는 몇 분 뒤에 새로운 바나나를 벽에 붙였고, 에디션 세 점도 모두 팔아 치웠다. “중요한 건 바나나가 아닙니다. 구매자는 금방 썩어 없어질 바나나가 아니라 진품 증서를 샀습니다. 카텔란의 작품임을 입증하는 증서인데, 작품 설치에 대한 정확한 지시 사항이 들어 있습니다. 많은 개념미술 작품들이 이렇게 유통되고 전시됩니다.” 페로탕 갤러리는 바로 새 바나나를 붙여 놓았다가 곧 철거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관객들이 셀카를 찍는 등 북새통을 이루어 다른 전시물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와 나는 아트바젤 마이애미 측의 권고에 따라 결국 그날 아침 9시에 바나나 작품을 제거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렇게 기억할만한 모험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정말로 감사함을 전한다”고 여유를 보였다.

따지고 보면 갤러리 측은 아쉬울 게 없었다. 작품 ‘코미디언’은 이미 고가로 팔았고, 작품이 소멸된 사건으로 작가와 작품을 전 세계에 홍보해 주었으니 일석삼조 효과를 얻었게 되었다. 문제의 ‘코미디언’라는 작품의 ‘제작-전시-판매-파괴-재전시-철거’라는 일련의 코미디 사건에서 ‘개념예술(conceptual art)’이라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개념예술은 미술작품의 ‘물질적 측면’보다 관념성의 ‘비물질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좁게는 기호나 문자 등의 비물질에 의한 표현 양식을 말하지만, 넓게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아트처럼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형태와 대지미술(land art), 즉 사막·산악·해변·설원(雪原) 등의 넓은 땅을 파헤치거나 거기에 선을 새기고 사진에 수록하는 작품처럼 드로잉이나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는 미술 형태를 포괄한다.

페로탕 갤러리의 디렉터는 “당신도 개념예술에서 '진품증서(certificates of authenticity)'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것”입니다. 그 작품이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만들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진품증서지요. 개념 예술에서 진품 증서가 없다면, 그저 물질적 표현과 묘사에 불과할 뿐이잖아요. 결국은 진품 증서를 가져가는 것이 곧 작품 자체를 소장하는 것입니다” 라고 작품 “코미디언의 진품증서를 갖고 있다” 는 점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미술작품이 형식(작품)과 내용(개념)으로 성립되지만, 개념미술은 ‘형식’보다 ‘개념’을 중시하여, 작품의 언어적인 의미와 제작 이념인 작가의 사고 자체가 중요하다. 이러한 경향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미술 사조가 개념미술이다. 작품 '코미디'의 핵심은 테이프로 붙여 놓은 한 개의 바나나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작가의 제작 의도와 제시된 사물이 현대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언어적인 의미에 있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만사가 일장춘몽이란 말인가?”

세계에 화제가 되었던 '코미디언' 바나나는 분명 12만 달러보다 더 비싸질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 미술시장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미술'의 경향이며, 세계 미술 시장의 현주소이다. 작품의 형상은 에테르처럼 아롱거리며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언어로 존재하는 무형의 작품, 그 상징성, 그 언어가 개념미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