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의 독(毒)

소장의 다다익선은 무지렁이 병졸을 말합입니다. 그저 자신만이 적임자고 자신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긴다.

2019-09-17     이원선 기자

 

다다익선은(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초한대전((楚漢大戰:기원전 205년경에 시작된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하 유계라 칭함)이 중원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일))중 한신이 사용하였다 기록하고 있다.

유계가 관중에 입성 후 범증의 계략에 걸려 사지에 든 홍문지연에서 극적으로 탈출, 봉지로 받은 파촉((현재의 사천(四川))으로 쫓겨난다. 이후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항우가 펼쳐놓은 삼진(장한, 사마흔, 동예가 지키던 3개의 성)을 단숨에 돌파하고 중원으로 나오기에 이른다. 이에 유계는 천하를 얻은 듯 기쁨에 사로잡혀 장수들과 함께 주연을 베푼 뒤 한신의 공로를 치하할 겸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유계는 한신에게 그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는데

이보게 한신 그대의 전략과 용병술은 신출귀몰이란 말이 딱 어울려 단숨에 삼진을 돌파하다니 정말 대단하네!  그래서 말인데 만일 번쾌라면 몇 명 정도의 병사를 거느릴 수 있겠나?”

주공!  제 생각으로는 2만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만!  그렇지 그놈은 용력은 대단한데 머리가 없어!  무작정 때려 부수는 재주만 있지 지략이 없지!  흐흐 그러고 보면 이만도 차고 넘치지!  그럼 말이지 노관이라면 어떻겠나?”

삼만!  노관이 비록 재주가 좀 있다지만 삼만이면 족할 겁니다.”

노관이 삼만이라! 그렇지 그놈은 평소 꾀주머니라고 자부하지만 그릇이 작아!  오히려 삼만도 감지덕지지!”

그럼 나는 어떤가? 나라면 얼마나 통솔할 수 있겠나?”

~ 주공이라면 십만은 너끈합니다.”

십만~ 그럼 한신 자네는?”

주공 저는 다다익선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백만이든 이백만이든 도검수의 배치와 궁수의 배치를 적절하게 하며 기마병을 이용한 기습과 전군의 전진과 후진 등등 일사불란하게 운용...!”

그래 그럼 자네가 이 자리에 앉게! 그렇게 능력 있는 자네가 이 자리에 앉지 뭣 하려 능력도 재주도 없어 용렬한 나를 앉혔나?”

주공 그것이 아니라 주공의 십만은 장수를 말함이고 소장의 다다익선은 무지렁이 병졸을 말함입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주십시오!”

이 대화 이후 유계는 한신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윽고 전쟁이 끝나 천하가 통일되자 한신은 제왕에 봉해져 부귀영화를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유계는 늘 앉은 자리가 차갑기만 하다. 결국 유계는 한신을 진희와 반란을 도모하였다는 핑계를 들어 회음후로 강등하여 잡아들인다. 이후 유계가 진희의 반란을 진압하는 틈에 여황후(여치 후일의 여태후)에 의해서 처형되고 만다.

중국인들은 한신을 들어 천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기재라고 칭하지만 일개 아녀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 비운을 맞은 것이다. 어쩌면 한신의 최후는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 패권을 차지할 뜻이 없었다 할지라도 주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왕으로 있는 한 유계는 늘 불안했다. 한신이 대군을 몰아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행동으로 한신은 한때 항우 휘하의 장수 종리매를 진중에 숨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복덕을 누리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부귀영화라고 5~6년의 전쟁 끝에 얻은 공치사로 보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다. 그가 여황후에 의하여 처형되자 유계는 부인을 나무라지도 치켜세우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무언,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면 전쟁이 끝난 상태에서의 한신은 유계에게 있어서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한신의 죽음으로 여황후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에 이른다. 유계가 기원전 195년에 장락궁에서 숨을 거두자 기다렸다는 듯 여태후는 유계와 함께한 장수들의 목숨을 모조리 거두었다. 비록 제부(여동생 여수의 남편)라 할지라도 피해가지 못해 번쾌조차 비명횡사에 이른다. 이후 여치는 더 높은 곳을 향한 욕망을 드러낸다. 그녀의 욕망의 끝은 유씨가 이룬 천하통일의 대업을 여씨가 가로채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씨가 참변을 당한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그녀의 욕망은 약 15년 만에 막을 내린다. 여태후가 무작정 오르려던 자리!  그 자리는 피의 자리였고 가시방석이었다.

여태후가 권력의 정점에서 졸하자 그간 숨을 죽이던 유씨들이 대거 일어났다. 그 결과 여씨라고 보이는 족족 죽음을 면치 못했다. 15년의 영화치고는 너무 허무한 결말이다. 이후 여씨의 재기는 불가능했고 여태후는 중국 3대 악녀에 이름을 올린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사람이 있어 끝없이 오르고 싶어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나만이 적임자라 떠벌리며 권력을 탐한다. 재력도 막강하며 명예 또한 만만치가 않아 삼척동자도 알아볼 정도로 유명하다. 헌데 권력이 불만인지 주위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본인만 잘되면 만사가 무사태평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높이 오르다보니 발 아래가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 만만한 곳이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고 있는데도 말이다. 헌데도 자신만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긴다. 이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사상 2323전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남긴 것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연구와 노력 등등이 쌓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는 녹둔도 전투의 참패를 거울로 삼은 것이다. 그 패전의 불명예가 꼬리처럼 따라다니며 생각을 헝클었지만 디딤돌로 삼아 철저하게 전력을 분석하고 치밀한 작전과 전술을 펼침으로써 임하는 전쟁마다 승리한 것이다. 실로 어렵고 힘들고 두려웠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내 나라의 존망과 내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할 때 생사를 초월하여 결코 주저앉거나 좌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등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